원주한지문화제
문화적 토대가 척박한 한국 사회. 그러나 바위 틈에도 뿌리를 박고 자라는 풀 한 포기가 있듯, 지역 문화 발굴과 부흥을 위한 사람들의 노력도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다. 그것도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원주한지문화제'. 이는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시민들이 어우러져 만든 작품이었다. 그 승리의 현장으로 가보자.

원주로 출발하는 새벽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원주도 비가 오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원주한지문화제는 9월 2일부터 6일까지인데 그 날은 폐막식이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다. 원주에 도착해 졸린 눈을 비비고 창밖을 보았더니, 하늘이 창창하다.

문화제가 열리는 치악예술관으로 향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더니 야외에 줄지어 늘어선 천막들이 눈에 띈다. 이 천막들은 ‘한지체험마당’이다.

“여기서는 한지로 탈을 만들어보는 체험을 합니다.”

전날 학생들이 만들어 말려놓은 탈의 뒷정리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원복규 씨(48세)는 “오후에 아이들이 찾으러 오면 돌려줄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지 탈 만들기’ 체험마당에는 원복규 씨 외에도 서너 명의 자원봉사자가 더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었으나 이제까지 방법과 장을 찾지 못했다”며 한지문화제에 참여해 너무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며칠 동안 밤늦게 집에 갔죠. 애들 밥도 못 차려줘서 미안하다고 생각했는데 ‘뭐 그럴 때도 있지, 오히려 엄마가 좋은 일 한다’며 가족들이 격려해줘요.” 옆에 있던 정민자 씨(43세)가 한마디 거들었다. 정민자 씨의 말에 이어 옆에서들 며칠동안 밤늦게까지 문화제에 참여하느라 “몸이 피곤하다”, “전날 밤에는 피곤해 밥도 안 먹고 잤다”는 등 투정을 부리는 듯한 말들을 쏟아낸다. 물론 그 말에는 자신들이 참가한 문화제에 대한 자긍심이 깔려 있었다. 원주한지문화제에 대해 물어봤더니 “이 문화제말고도 다른 문화제도 있어요. 치악제도 있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아이구, 뭐 그런 데는 먹자판, 놀자판이지. 그런 데하곤 달라요. 전통적으로 유명했던 원주 한지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이보다도 더 잘 공부할 수 있는 데가 없죠. 그리고 자기가 직접 참여해서 한지로 뭐든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행사가 있잖아요.”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지역문화제

체험마당에는 탈만들기 외에 한지뜨기, 제기만들기, 한지염색하기, 판화찍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지뜨기’ 마당에는 한복차림의 장인이 닥섬유가 풀어져 있는 물에서 한지를 뜨는 방법을 직접 선보이고 있었다. 구경꾼들도 그의 코치를 받아가며 시도해보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슬금슬금 유연하게 발을 움직여야지… 쉽지 않아.” 전문가의 손길을 흉내내지만 역시 구경꾼이 뜬 한지는 한쪽 귀퉁이가 잘려 있었다.

한지는 신라시대부터 중국에까지 알려져 일등 수입품목으로 꼽힐 만큼 유명했다. 우리 한지의 특징은 질기고 빛이 고와 중국 송나라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종이가 먹을 먹는 품이 고려지만큼 겸손한 종이가 송나라 천지에는 없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특히 원주한지는 닥나무가 자랄 수 있는 천혜의 기후조건 때문에 한지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그러나 펄프를 원료로 한 서양종이가 양산되면서 한지는 서서히 잊혀지게 되었다.

‘원주한지문화제2000’의 주제는 ‘천년의 숨결, 우리의 얼굴’이다. 잃어버린 자랑스런 우리의 얼굴, 즉 문화적 정체성을 찾자는 취지이다. 그 작업이 원주참여자치센터의 활동가들에 의해 시작됐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나머지 부분이 채워진 것이다. 원주한지문화제는 올해 2회를 맞는다. 한지를 통해서 그들이 찾으려고 했던 얼굴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선경 씨(원주한지문화제위원회 기획위원장)를 만나 들을 수 있었다.

“예산감시운동, 판공비 공개운동 등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지역에서 하는 시민운동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죠. 지역운동에 대해 고민하다가 일제시대 때부터 원주에서 살고 있는 지역 어른 400여 명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자기가 사는 원주라는 지역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원주 하면 한지이다”라고 말했다. 91년까지만 해도 원주에는 한지공장이 13~15개나 되었지만, 현재는 두 군데 공장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지의 본고장’인 원주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네 명의 활동가들이 생각해낸 것은 한지를 통해 지역민들과 만나는 축제였다. 그러나 이들에겐 그만한 돈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도, 한지에 대한 전문적 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2억5,000만 원 예산과 1,100여 명의 자원봉사자를 만들어냈다. 9월에 행사를 치르기 위해 세 명의 활동가들은 한여름에 더위와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일을 했다. 이들이 한지를 다시 되찾자는 제안을 하자 원주 출신의 사회인사들, 지역 대학, 시민들, 강원도와 원주시의 관공서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문화제에서 특히 눈길을 끈 행사는 첫날 있었던 ‘한지패션쇼’였다. 원주 출신인 모델라인 이재연 대표가 연출을 맡고, 상지영서대학 의상학과에서 참가했다. 한지로 의상을 만든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겠지만 “한지는 천년 이상 보존될 만큼 질기기 때문에 웨딩드레스를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이 화려한 패션쇼는 작년에만 해도 세계 50개 국의 방송사로 송출되었다. “지역 시민단체가 주도해 지역 관청, 지역 대학, 지역민, 지역 기업이 하나가 되는 이런 문화제는 보기 드물죠”라는 것이 이선경 기획위원장의 설명이다.

잃어버린 우리의 얼굴을 찾아서

전시회을 둘러보면서 실감한 것은 한지로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실로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종이에서 의상, 생활용품, 인형, 액서사리,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이날 행사장에는 다채로운 작품들이 선보였다. 앞으로 한지문화제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한지로 이용할 수 있는 분야를 넓히고 응용하여 한지 테마관광산업화 및 한지 테마파크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미아 방지를 위해 이름표를 만들어 드립니다.”

중·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한쪽에서는 일렬로 서서 외치고, 한쪽에서는 이름표를 만들어 어린이들 가슴에 달아주고 있다. 이름표 달아주기, 체험마당 도우미, 전시실 안내, 환경 도우미까지 모든 것이 자원봉사자들의 조직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강원도청소년자원봉사센터에서 나온 학생들이다.

“상업적이지 않죠. 다른 행사장이었으면 술판, 먹자판인데, 보세요, 아이스크림 장사꾼조차 없잖아요. 문화제라는 이름에 걸맞죠. 깨끗하고, 질서정연하고 순수하게 문화를 즐기고, 아이들이 와서 배울 수 있고… 이런 점이 다른 문화제와 다른 것 같아요.” 행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인 저녁 무렵, 자녀와 함께 행사에 참여한 송미애 씨(37세)가 전하는 참가소감이었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2000/10/01 00:00 2000/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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