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 양, 가장 먼저 열심히 싸운 그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메달을 건 것도 축하해요. 아마 난 올림픽에 참가하러 가는 선수단의 사진에서 초현 양을 먼저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초현 양이 누구인지 몰랐지요. 하지만 신문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초현 양의 사진을 기쁜 마음으로 봤답니다. 반짝이는 눈 때문에 이름이 초롱이라 해도 썩 잘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신문에서는 경기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얼마나 열심히 경기에 임했는지도 얘기해 주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가슴 뿌듯하게 만든 것은 초현 양이 “결과에 만족한다”라고 한 말이었어요. 어쩌면 이리도 큰마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어른보다 낫구나. 분명히 주위에는 금메달을 놓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원통하게 여긴 어른들이 많았을 텐데.

그런데 다시 신문을 펼쳤더니 초현 양 어머니의 우시는 모습이 실려 있었어요. 아마 장한 딸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었을 거예요. 우리네 엄마들은 감격을 눈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 있으니까요. 그리고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더욱 눈물을 쏟으셨겠지요. 아버지께서 병상에서라도 장한 딸의 어깨를 두드려 주실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오늘 내가 초현 양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 영전에 금메달을 바치기로 결심했었다”는 기사를 보고 혹시 금메달을 따지 못해 크게 실망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고 병상에서 오래 고생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은메달이라서 실망하셨을까요? 분명히 초현 양의 아버지께서는 ‘장한 우리 초현이!’라고 하셨을 거예요. 금메달을 땄어도, 아니 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아버지가 초현 양을 자랑스러워하시는 데에는 차이가 없으셨을 거예요. 국가 대표 선수로 만인의 스포츠 잔치인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셨을 거라고 난 믿어 의심치 않아요.

복숭아빛 뺨을 가진 초현 양,

금메달이 아니라서 실망하시는 어른들을 많이 보아 왔겠지요? 조금만 더 열심히 하지 그랬냐,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시는 어른들도 있으시지요? 그리고 신문들은 꼭 이런 표현을 쓰고 있지요. ‘아깝게 놓친 금’.

올림픽이라는 바다에는 금메달만 있나요? 시상대에는 금메달리스트 자리만 있나요? 아무도 금을 놓친 게 아니에요. 누구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초현 양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다만 어쩌다 보니 은메달을 잡았고, 혹은 동메달을 손에 넣은 거지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그 넓은 스포츠의 대양에 뛰노는 젊은 친구들, 더 많은 사람들이 메달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성취와 자기완성을 위해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런 친구들에게는 메달의 빛깔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요.

우리 사회가 유별나게 최고만을 위하고, 1등만을 인정하는 사회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많은 사람들은 1등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요. 그래서 저마다 1등을 하겠다고, 나의 1등을 위협하는 존재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살아가고 있지요. 사람 사이의 인정도, 우정도, 사랑도 그냥 스러지는 불빛이 되고 마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어요. 안타깝게.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1등 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럼 1등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는 1등, 이기는 것말고도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 하늘의 별처럼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그렇지요?

초현 양에게 힘차고 따스한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1등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일 거예요. 이기는 것이 기쁜 일이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열심히 겨루고 그 결과에 만족하는 자세가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 건강하고 정직한 삶을 만드는 축이 되는 거지요. 메달의 종류를 기억하는 사람들보다 진정한 스포츠 우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답니다.

그러니, 금메달을 위해서라면 울지 말아요.
권은정
2000/10/01 00:00 2000/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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