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할만한 작은 만남의 장소, 김옥길기념관
1999/1999년 04월 :
1999/04/01 00:00
기념할만한 작은 만남의 장소, 김옥길기념관
사람이나 사건, 어떤 대상이든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세우는 건축물들은 일반적으로 그 건물 자체를 상징화하거나 건물 안에 기념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건축의도를 표현하는 게 보통이다. 그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기념하는 대상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매개 수단은 상징화된 건축물 자체이고 때로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직접적인 상징물이나 흔적을 배치함으로써 주위를 환기시킨다. 이렇게 기념관 건축에는 기억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시적 장치물이나 흔적을 보여주면서 직접 인지가 가능하게 하는 감각의 원리를 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김옥길기념관’(설계: 김인철/아르키움건축)은 이름만 기념관일 뿐 이곳에 기념공간이 따로 마련된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일반적 통념으로 굳이 나눠보자면 기념관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1, 2층에 있는 커피숍과 지하의 작은 집회장이 이 건물 내부 시설의 전부이다. 김옥길 선생이 생전에 생활했던 살림집 자리에 지어졌다는 점과 건물 전면에 부조로 양각되어 붙어 있는 선생의 ‘동상’ 외에는 누가 보아도 고인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나 장치물, 하다못해 그이의 유품 한 가지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모두들 그 건물을 김옥길기념관이라고 부른다.
건축주인 김동길 박사는 애초에 건축가에게 ‘차를 마시며 그림을 보고 때로는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는 것으로 족하다’고 의도를 전달했다. 그 주문부터가 이 기념관이 예사 기념관과 성격을 달리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지만 그것을 실체화시킨 건축가의 손길 역시 의뢰인의 생각을 잘 담아냈다. 건축면적이 20평도 채 안 되고 지하까지 합한 연면적이 60평 남짓한 작은 기념관 안에 기념성의 프로그램을 거창하게 들일 수도 없었겠지만 개인을 기념하는 공간의 역할을 일반적으로 흔히 떠올리는 통념에 국한시키지 않은 것은 음미할 만하다. 김옥길이라는 인물의 생전의 업적에 대한 평가 등은 차치하고라도 한 개인을 기리는 기념공간을 건축적으로 더듬어 보는 일은 건축의 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안팎 구분 없이 공간이 잠시 머무는 곳
김옥길기념관은 연세대 캠퍼스 동쪽 울타리에 접해 있는 김동길 박사의 집과 나란히 붙어 있다. 김동길 박사는 누이인 김옥길 선생 생전에 오랫동안 이웃해 살았다. 김 박사의 살림집이자 태평양시대위원회 사무실로 쓰이는 주택 앞의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세워진 김옥길기념관은 노출콘크리트와 유리만을 재료로 쓴 군더더기 없이 단순 명쾌한 형태가 우선 시선을 끌어 모은다. 높이와 폭을 달리하며 여러 켜로 반복되는 콘크리트 판벽이 정교하게 마무리된 노출공법으로 세워져 있고 그 판벽들 사이로 나 있는 틈은 투명한 유리가 막고 있다. 길에 면한 판벽들은 창 하나 없이 수직을 강조하며 리듬감 있게 서서히 튀어 나왔다가 다시 뒤로 물러서 있어, 문학적으로 풀이하자면 마치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정형시의 운율을 느끼게 한다. 길에서 정면으로 보면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판벽들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바로 지붕과 일체화되면서 마당에 면한 안채 쪽에서 하나의 벽으로 통합된다. 이 형태는 배경으로 받치고 있는 야산의 지형에도 적절히 조응하면서 자연스런 지붕의 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듯, 내외부의 경계와 영역을 없애 일체화시키듯 건물을 짓는 방식도 일체식이다. 보통 두개 층 이상의 건축물은 한층 한층 콘크리트를 타설해 구조를 쌓아 가는 것이 원칙인데 이 기념관 벽체는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한번에 콘크리트를 부어 쌓아 올렸다. 이는 콘크리트를 타설 하고 거푸집을 떼어낸 후 치장재료를 덧씌우지 않고 콘크리트 덩어리 그대로를 노출시켜 그 자체가 마감공사의 끝이 되게 한 공법을 쓴 탓도 있다. 벽과 만나는 유리면은 보통의 방법대로 창틀 같은 프레임을 만들지 않고 바로 벽에 이어 붙이는 독특한 공법으로 이뤄져 있다. 두 가지 재료가 만나더라도 건물이 군더더기 없이 일체화되어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세심한 공법이 쓰인 탓이다. 더 이상의 어떤 손질도 가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솔직하고 투명한 건축물을 위한 선택인 셈이다. 밋밋한 콘크리트로 닫혀 있으되 투명한 유리를 통해 밖으로 열어놓은 공간 구성은 바로 건축물의 기능과 일치한다. 그것은 당초 건축주가 기대했던 것처럼 소박한 모임의 장소로서의 공간기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런 단순미와 솔직한 표현은 내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부 역시 겉으로 노출된 콘크리트를 그대로 두어 더 이상의 마감재료를 붙이지 않았다. 뼈대만 있는 건물인 셈이다. 건물 안으로 들면 이 작은 건물의 콘크리트 판벽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은 오히려 시원하게 열린 유리면으로 해서 그나마 건물 안에 들어와 있음을 인식시키는 요소로만 읽힌다. 그만큼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어 안에 있어도 밖의 풍경과 동화되는 공간의 드라마틱한 감성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안팎의 재료를 동일하게 하고 건물의 벽체가 만들어내는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닫을 곳은 콘크리트로 철저히 닫고 열어놓을 곳은 투명한 유리로 완전히 열어 건물을 대하는 사람들이 안팎의 경계를 굳이 의식할 필요가 없게 한 건축기법을 동원한 건축가의 의도 때문이다. 어떤 평자들은 이를 미니멀한 건축이라고 말한다. 양식 혹은 형식상의 건축기법이 어디에 속하든 이 기념관은 단순함과 투명함을 통해 건축이 그 주변을 이루는 여러 환경을 억누르거나 흥분하여 반응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그것은 기념관이라고 해놓고 그 기능을 공간 안에 특별히 따로 마련하지 않은 이 건축물의 이용 프로그램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건축가는 ‘(이 기념관의 건축적 형태는) 공간의 확보가 아닌 공간의 머무름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마련하기 위해 막힘과 열림이 직교하는 반복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업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어떤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든, 건축물이 공간을 한정하고 경계를 지음으로써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존재가 아니라 ‘이웃한 환경과 더불어 존재하는 사회구성 인자의 한 단편이며 공동체 공간의 하나’라는 건축가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고도 명쾌한 건축적 장치로 외부공간을 내부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내외부 공간의 경계감을 최소화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건축공간의 사회적 공유라는 개념을 통해 기념관의 또 다른 모습으로 옮아 온 결과이기도 하다. 기념관이되 그 성격을 일상의 통념에 국한시키지 않으려는 건축주의 소박한 생각과 이를 건축의 사회적 공유로 치환한 건축가의 건강한 정신이 김옥길기념관에는 잘 담겨 있다. 또한 이 기념관을 짓는 데 참여했던 인부들의 이름을 벽 한쪽에 새겨 놓은 것이나 건축가의 ‘크레딧’을 도장 찍듯 한쪽 벽에 박아 놓은 것도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는 대목이다. 이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그 책임까지도 떠안겠다는 자신있는 표현인 것이다. 건강한 사회란 바로 이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드래내는 떳떳한 개인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가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옥길기념관은 건축주의 의도대로 생전의 고인과 연을 맺었던 지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그네들은 이곳을 찾으면서 당초 있었던 옛집에 대한 기억과 고인과 함께 했던 날들에 대한 추억을, 때로는 막힌 벽을 응시하며 때로는 밖으로 훤히 개방된 유리면을 통해 ‘투명한 기억’으로 더듬어 볼 것이다. 이런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장소는 기념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인을 추억하기 마땅한 기념관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이 유형의 물체를 통하기보다 우리네 마음속에 공유된 기억을 서로 나누는 것이 더 값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기념관이 시간의 간극을 초월해 공간을 공유하며 일상을 통해 함께 하는 장소로서 기능한다면 그것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연스런 생활공간이 될 수도 있다. 생활과 더불어 존재할 수 있는 건축공간은 사람에게 친화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념을 위한 공간은 여러 형태로 존재하겠지만 어떤 것이든 현실의 생활과 격리된 박제화된 기념 공간은 죽은 공간이 되기가 쉽다. 김옥길기념관은 이를 잘 극복하고 있다.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늘 사용하고 즐기면서 고인을 생각할 수 있는 장소야말로 기념의 뜻을 극명하게 일상화하는 것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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