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독점에 도전장 던진 공포의 다이아몬드
2000/2000년 09월 :
2000/09/01 00:00
사례탐구 ㅣ 참여연대 조세개혁팀
시민운동은 어떻게 계획되고 진행되고 마무리되는가? 이것이 궁금하다. 수많은 전문가의 참여로 한국사회 제도개혁 등 굴지의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시민운동. 그들의 전문성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한 활동부서를 중심으로 시민운동의 전문성을 점검해본다.
지난 8월 10일 저녁 7시, 한둘의 사람들이 참여연대 제2회의실로 모여든다. 윤종훈 회계사, 하승수 변호사, 최영태 회계사, 김종화 세무사 등. 그들은 모두 참여연대 조세개혁팀(팀장 윤종훈) 멤버. 2000년 하반기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의 전망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먼저 삼성그룹 이재용 씨의 증여세 탈세사실을 국세청에 제보했으나 국세청이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는 등 미온적 태도를 보여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토론한다.
“데이터를 충분히 모아 국정감사를 활용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 하고, 이를 언론에 공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전략으로 나아가는 게 어떻다고 보십니까?”
담당간사 홍일표 씨(29세)는 삼성과의 전면전 속에서 나올법한 구상을 내놓는다. 이에 윤종훈 팀장이 거들고 나선다.
“국세청은 삼성 이재용 씨의 증여세 탈세의혹이 과세가 되냐 안되냐 그걸 자꾸 따지는데, 그건 당연히 과세해야 하는 거예요. 오히려 과세하지 않는 국세청이 직무유기 하는 것 아니냐는 방식으로 우리가 공격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차례 공방전이 벌어지다 중심가닥을 잡는다. 이렇게 하나씩 검토한 사안은 총 10건. 신용카드 공제제도에 대한 세액공제 도입여부, 부가가치세율 조정에 따른 소득재분배 효과 검증, 정부 예산편성의 복식부기문제, 공무원 연금 등의 기금운용 등 사안별로 골머리를 싸맨다.
이렇게 많은 일들은 주로 한 실행위원이 관심있는 영역을 맡아 대응하는 방식으로 푼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공적 기금·복식부기·영수증제도·지방세 관련은 최영태 회계사, 조세범처벌법·세무조사 관련은 박용대 변호사, 자동차세·면허세·납세자권익 관련은 안연환 회계사, 세무교육 및 대중활동은 윤종훈 팀장. 따라서 자신이 맡은 분야에 관해 신문스크랩, 관련사이트 웹서핑, 연구 등을 꼼꼼히 해둔다. 그래야 회의 때 다른 팀원들에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을 모두 조정·조율하고 사업기획을 짜는 사령탑은 홍일표 간사. 윤종훈 팀장과 유기적 결합관계를 맺으며 한국사회 조세개혁의 앞날을 조망하고 있다.
실무분야 전문성보다 운동의 전문성 갖춰야
1996년 관료 등 대부분의 전문가에게 독점돼 있던 조세 관련 문제에 도전장을 낸 사람들은 윤종훈·최영태·하승수·박용대. 그들은 상속세법 개정운동을 위한 연구팀으로 출발, 98년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에 대한 부가가치세 부과운동으로 활동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99년엔 자영업자 소득파악과 조세형평성 실현을 위한 조세개혁운동을 전개하면서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실시,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 폐지, 세무공무원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부여제도 폐지 등의 활동을 벌였다. 2000년엔 납세자중심의 조세제도만들기 운동을 펼치면서 자가용 자동차 면허세 폐지, 총선 후보자 납세실적 검증작업 등을 전개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저희 팀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정부가 받아들였어요. 지금껏 제기한 이슈중 해결되지 않는 게 거의 없을 정도예요. 그러나 이건 그동안 학계에서 연구 다 해놓고 실행하지 않고 있던 부분을 저희가 ‘시행하라’ 요구했던 측면이 큽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라고 한다면? 아마 난리날 겁니다. 실제 자본이득세는 부동산 혹은 은행예금 등에 모두 적용되고 있는데 유독 주식에 대해서만 과세하지 않는 건 모순입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폭탄’과 다름없어요. 전화가 불통되고, 게시판에 항의메일이 폭주하겠죠. 따라서 사회적 합의로 이런 모순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죠.”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은 ‘성명서 한 장달랑 내는 걸로 활동을 다하지 않는다’고 결의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고 활동하는 만큼 책임감도 크기 때문. 예컨대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자본이득세 부과를 주장한다면, 그에 대한 학계의 연구 보고, 외국의 사례, 경청회를 통한 관계자의 입장을 듣고, 여론이 형성되면 논리를 확보, 운동과제로 설정한 다음, 이 문제가 끝까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이런 속에서 사업의 코디네이터를 맡는 활동가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직·운영·관리·사업기획·조정·활동방향의 노정 등. 홍일표 간사가 꼽는 활동가의 전문성은 이렇다.
“활동가가 다른 실행위원들과 똑같은 실무분야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펼치는 이 조세개혁운동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느냐, 어느 방향으로 운동을 이끌고 갈 것이냐, 외적 자원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끌어와 활동에 보탬을 줄 것이냐, 타 단체와의 연대는 어떻게 할 것이냐, 언론에는 어느 수위로 홍보할 것이냐 등등의 ‘사업화’ 과정을 꿰고 있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수많은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전문성은 갖춰야겠죠.”
민주성ㆍ공평성ㆍ연대성ㆍ투명성에 입각한 활동
활동가는 활동가로서의 전문성이 필요하단다. 문제에 개입할 지점과 방식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게 무엇보다 요구된다. 아무도 제기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관계기관의 설복을 받아내는 게 활동가의 임무. 이런 활동 뒤엔 따르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아무래도 일반시민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나라곳간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회원모임이 있지만 그분들께 많은 부담을 드릴 수는 없죠. 따라서 어떻게 시민참여를 높일 것인가 하는 것도 과제입니다만, 이 부분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납세자의 정당한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사회(민주성),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간의 공평과세가 이뤄지는 사회(공평성), 정확한 소득파악에 근거한 원칙있고 투명한 세무행정이 이뤄지는 사회(투명성),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연대해 살아가는 사회(연대성)를 지향하는 참여연대 조세개혁운동. 그들은 이 네 가지 원칙을 ‘공포의 다이아몬드’라 부른다. 목표는 단순한 의미의 세제·세정 개혁이 아니라 사회복지와 재정, 나아가 경제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개혁정책 전망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2001년 민주성과 연대성에 입각한 조세개혁운동 비전을 준비중이다. 그들의 구체적 활동방식은 이렇다. “체계적으로 문제를 선정,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인력충원으로 세입문제 뿐만 아니라 세출분야까지도 개입해 국부가 어떻게 유출되는지 감시하고, 바람직한 국가재정운용의 원칙 등을 제시한다.”
특히 주요 세법개정운동은 지속된다. 비상장주식 평가방법 개정을 위한 상속·증여세법 개정, 표준소득률제도 개선을 위한 소득세법 개정, 탈세방지를 위한 조세범처벌법·조세범처벌절차법 개정, 교육세·농어촌특별세 등 목적세의 개정. 이뿐 아니라 납세자 교육활동, 연구 및 출판활동, 주요 사안에 대한 공청회 개최 및 거리캠페인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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