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비닐하우스촌
성보네 집은 서울 송파구의 비닐하우스촌, 일명 개미마을이다. 물론 주소지를 인정해주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삼전동 아는 집에 전입신고를 하고 인근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하자 학군문제로 위장전입한다는 오해를 받아 당시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신곡초등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성보는 어린 나이에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학교에 가야 했다.

이렇듯 자녀들이 별 보고 등하교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이곳 주민들은 자녀가 취학 전에 인근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겨놓는다. 그러나 편견으로 인한 ‘소외’는 또 다른 아픔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왕따’가 그 사례다.

그런데 한술 더 떠 거주지를 숨기고픈 아이들은 교통사고율을 줄여보자는 교사들의 과잉사랑(?)으로 여지없이 벌거벗겨지고 마는 경우도 있다.

별 보며 학교 가는 아이들

비닐 하우스촌 개미마을내 방과후학교 ‘송파꿈나무학교’ 유은하 교사는 모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한명이 방과후 학교에 와서는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하는 아이들끼리 뭉쳐서 같이 등하교를 하라.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체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며 유일한 통학로에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학교가 구청이나 시경에 적극 요구하지는 못할망정 가뜩이나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친구들 앞에 노출되도록 하고, 통학로 교통사고 문제를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태도는 같은 교육자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개미마을과 화훼마을 인근에는 평화초등학교와 가원중학교, 문정중학교 등이 있는데 이곳 학교를 통학하기 위해서는 유일한 통로수단이 개미마을과 훼미리 아파트 사이에 있는 도로다. 물론 이곳은 높은 가로벽으로 가려져 있고 횡단보도는 없다. 차량소통이 그리 많지 않은 2차선 도로 좌회전 신호시 건널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다. 교통사고에 노출돼 있어 이곳 아이들의 통학로는 하루빨리 확보되어야 한다.

이모씨의 주민등록증은 몇번의 면허시험에 낙방한 사람처럼 지저분하다. 전입신고라 하면 눈감고도 서류작성을 할 정도로 이력이 난 이모씨. 마치 동사무소와 숨바꼭질 하듯 반복되는 주민등록 말소와 전입신고, 많은 주민들이 주소지를 옮겨놓은 K동사무소의 경우 이러한 주민들의 사정이 안타까워 말소신고를 하지 않고 묵인해주고 있지만 이외의 대부분의 동사무소에서는 가차없이 말소시킨다.

불안한 주소지 때문에 우편물을 제대로 받아볼 수 없어 벌금을 밥먹듯 내는 사람들도 많다.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통지서를 제때 전달받지 못해 벌금을 내는 경우는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남자라면 한두번은 겪어보았다.

몇해전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수해를 입었다. 수해를 입은 수십세대가 인근 초등학교로 피신했는데 지원물품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다. 이유는 송파구청에서 “우리는 한세대도 수해입은 곳이 없다”고 재해대책본부에 보고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은 송파구에 살아도 수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구민이었다.

전기나 수도사용도 자유롭지 못하다. 90년에 가설된 전기의 경우 임시저압용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보증금을 내고 쓰고 있고 전압도 부족하다. 전기요금고지서는 세대별로 청구되는 것이 아니고 마을당 한장씩 날라온다. 매월 한 번씩 주민 자체적으로 계산을 해서 세대별로 요금을 거둬 납부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설치된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는 수도시설도 마찬가지. 그동안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해왔는데 주민 대부분이 피부병과 알레르기에 시달려왔고 심지어 4년전에는 배모 노인이 사망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99년 1월 화훼마을 117가정이 전소되는 큰 화재사건 이후 주민들의 끈질긴 요구로 다행히 수도시설이 설치된 것이다. 물론 수도도 전기와 마찬가지로 공동수도이고 주민 자부담으로 물을 끌어 쓰고 있다. 청구서도 마을당 1장씩 공동으로 발부된다.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는 주민의 주거환경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인 이곳 비닐 하우스촌. 60, 70년대의 주거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생활 속에서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국민이면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비닐하우스촌은 무허가 건물이다. 타인 소유의 땅을 무단점유한 불법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할 자격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89년 개미마을에 둥지를 튼 주민 윤모씨(43세)는 애절하게 호소한다. “건물이 무허가지 사람도 무허가인가요.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신청도 거부당해

1980년대 후반, 재개발 붐이 일면서 개발지역 철거민들과 전월세 폭등에 의해 달동네에서 쫓겨나온 빈민층이 전국 곳곳에 사유지를 점유’해 비닐하우스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송파구의 개미마을, 화훼마을, 장지마을, 통일촌 500여 세대도 비슷한 배경으로 형성됐고 90년대 중반에 들어서 사업실패로 인한 실직자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이곳 주민들은 정부가 실제 거주지로의 주민등록 전입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소지와 거주지의 불일치로 인하여 생활보호법을 비롯한 각종의 사회복지 서비스로부터 제외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교육 및 의료혜택에 대해서도 불이익을 받아왔다.

이에 주민과 각종 종교시민사회단체에서는 주소지 찾기 운동은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 운동 등을 전개해 나아가고 있다. 지난 98년 12월에는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에서 주민과 함께 집단적으로 전입신고를 실시한 적이 있고 지난 2000년 8월 9일은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 주거연합, 참여연대 등 3개 단체가 비닐하우스촌 주민을 위해 ‘주소지 찾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동사무소가 비닐하우스촌 주민의 전입신고와 관련 “비닐하우스촌 주민이 거주하는 시설은 당초 농작물의 재배를 목적으로 설치된 원예용 시설로써 주민등록상의 주소로 지정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반려처분을 한데 따른 소송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 찾기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다. 그간 정부가 복지행정에서도 정주권 개념을 기초로 한 주민등록표에 집착해 생활보호를 실시함으로써 비닐하우스촌 주민은 생계위협속에서도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다행히 시민사회단체의 끈질긴 요구로 보건복지부는 8월 들어 “집단화된 비닐하우스촌은 지자체 스스로 주민등록 전입신고 접수 여부에 대한 다각적 검토를 거쳐 결정토록 함(주소지 설정 후 보호원칙)”이라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에 특례기준을 둬 지자체에 결정권을 의뢰한 상태다.

정주권 개념에 집착한 사회보장정책은 국민의 생존권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어두운 소외계층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공공부조의 길을 활짝 열어 복지사각지대 해소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최영선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 간사
2000/09/01 00:00 2000/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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