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은 불법?
2000/2000년 09월 :
2000/09/01 00:00
3인 3색 30일 시민운동 체험기
지난 7월부터 참여연대 사무실에는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이 활동가들과 함께 일을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동안 각국에서 교포나 유학생으로 생활하다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을 방문, 시민단체에서 자월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이번 여름 동안 5명의 유학생 및 외국인이 자원활동을 했다. 그중 세명을 만나 한국의 시민운동과 시만단체에 대한 소감을 듣는 자리를 마련해 보았다.
안희경(20세) 씨는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했으며, 현재 미국 뉴욕주 시라추스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다. 또 최훈(26세) 씨는 독일에서 태어나 마인츠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현재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피터 클로에핑(27세) 씨는 베를린에 위치한 프라이에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러시아어, 일본어를 할 수 있으며 특히 동아시아 문제에 관심이 많다.
기자 : 현재 모두들 시민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설명해주십시오.
피터 : 저는 일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과 유사점에 대해서 알고 싶었어요. 참여연대를 알게 된 것은 한 워크숍을 통해서입니다.
훈 :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스물한 살까지는 한국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어요. 아직도 많이 모르지만, 최근에 더욱 관심이 생겼습니다. 독일에서는 한국에 대해서 배우기가 무척 힘듭니다. 한국어로 된 책은 어려워서 잘 못 읽고, 독일어로 번역된 책은 거의 없죠. 그래서 친구들에게서 한국 얘기를 듣는 것에 의존했습니다. 광주항쟁과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어요. 요즘은 한국의 민주화과정에 대해서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지만 앞으로 뭐할 건지에 대해선 결정하지 않았어요. 저는 국가보안법과 국가안보에 관심이 있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NGO에는 많은 노하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실습하고 싶었어요.
피터 : 좀더 설명하자면 한국에서 남북문제와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동해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일본·북한·한국의 이해관계와 무역·안보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희경 : (웃으며) 다들 거창한 말만 하니까 나는 할 말이 없잖아? 저는 부모님이 한국 사회에 대해 공부하라고 또, 시민단체에 가보라고 권유했어요. 저는 처음에는 시민단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인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거보다는 재미있어요. SOFA나 국가보안법에 대한 관심도 많았는데, 얼마전에는 직접 SOFA개정을 촉구하는 집회에도 참석했어요. 직접 참여하면서 처음에는 시민들이 이런 불공정한 문제에 대해 개정요구를 하면 당연히 달라지는 것이 있을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 알려지고 밝혀지니까요. 그런데 쉽게 바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허망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훈 : (희경에게 질문한다) 아버지가 여기서 일하라고 권유했다고 했잖아? 예전엔 시민운동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며….
희경 : 위험하다구? 잘못 들었겠지.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이런 데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스테레오타입이 있잖아. 거대하고 큰 일만 하는 줄 알았거든. 그런 곳에 가서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두려웠다는 것이지.
훈 : 아, 그 말이었구나. 독일에서는 NGO에서 일을 하면 ‘아, 착한 사람들이 있다’ 정도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한국은 NGO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안 그래요?
피터 : 얼마 전 한국인 친구를 만나서 참여연대에서 일을 한다니까 그가 처음으로 보인 반응이 ‘그거 불법적인 일 아니야?’라고 묻는 것이었어요.
훈 :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외삼촌에게 참여연대 일을 하겠다니까 처음에는 깜짝 놀라시더라구요. 왜 하냐고, 그런 일 관심있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기자 : 그런 주위의 반응도 있었는데, 막상 참여연대에서 일을 하니까 어떤가요?
피터 :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입니다. 한국은 시민운동의 초기단계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시민단체가 하고 있는 일은 벽에다 대고 소리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죠.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그것을 증명하는 예입니다. 그런데 조금 의외인 것은 SOFA 집회에 참여했을 때 경찰이 최루탄을 쏘지 않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훈 : 피터가 놀랐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독일에서 한국이 알려진 것은 87년, 88년부터예요. 올림픽 개최 덕분이죠. 올림픽 개최국이라는 것 외에 독일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한국이 이미지화되어 있냐면 최루탄을 마구 쏘는 경찰의 모습이 떠올라요. 그리고 대학생들의 분신, 밀실에서 고문으로 죽은 운동권 학생, 뭐 이런 이미지가 굉장히 강하죠.
피터 :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유럽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한국인은 사회주의를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기자 : 여기서는 사회주의를 함부로 말하면 안돼요. 알죠? 악마와 동일시한답니다. (모두 웃음)
훈 : 독일도 예전엔 동독과 서독이 나뉘어 있었잖아요? 그러나 동독과 서독은 분단되어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한국만큼 심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마르크스를 읽으면 잡혀갔죠? 독일에서는 그런 흑백논리는 없었어요. 독일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모든 의사 표현이 가능했죠. 그런 상황은 한국과 독일이 매우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은 조금만 생각이 틀리면 뭐든지 다 빨갱이예요. 개념을 이해하기보다 나쁘다고만 생각한다는 거죠.
기자 : 한국의 시민운동을 나름대로 평가한다면?
희경 : 회원들의 참여가 적어요. 또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일들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시민들도 앉아서만 정부에 대해서 투덜거릴 뿐이지 시민운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것 같아요. SOFA개정 집회에 참석했는데, 몇십 명만 참여한 거예요. 솔직히 우리나라의 의식 수준이 의심스러웠어요. 또 시민운동이 그때그때 상황에 의해 이용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예를 들면 낙선운동 때는 지지를 하다가, 장원 사건 때는 모든 시민단체가 매도당하는 걸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어요.
피터 : 큰 단체 중심으로 시민운동이 형성되어 있죠. 물론 장단점은 있을 겁니다. 큰 단체 중심의 운동은 운동의 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긴 하지만, 작은 단체와 지방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훈 : 이곳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80년대에 사회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지금 나쁘다, 좋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사람들, 즉 사회운동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과 이곳의 활동가들과는 사회문제를 대하는 데서 접근방법이 다를 겁니다. 알게 모르게 활동가들은 반정부적인 마인드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안에 대해 정확히 검증을 하고, 판단내리기 전에 이미 반정부적인 감정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고 결론내린다는 겁니다. 거듭 말하자면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향에 대해 설명하는 겁니다. 이런 경향은 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나 같은 운동의 경험이 없는 사람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방법과 해결하는 방식에서 차이점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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