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한국사회의 근대성
2000/2000년 09월 :
2000/09/01 00:00
『근대의 그늘』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이뤄진 8월 15일~18일 나는 북쪽의 서울 방문단 숙소였던 서울 광진구 쉐라톤워커힐 호텔에 마련된 종합 프레스센터에 있었다. 그 한 주 동안 너무도 많은 눈물을 쏟았다. 내게도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도대체 무엇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는지, 생각중이다.
그 때 한반도는 말 그대로 ‘눈물바다’가 됐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텔레비전 방송이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쉴새없이 전하자 어느 ‘N세대’는 이산가족 상봉 탓에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수 없다며 불만 섞인 글을 통신에 올려놓았다. 또 어떤 ‘N세대’는 “별것도 아닌 쇼를 연출하기 위해 국민의 혈세를 쓰는 정부”를 소리 높여 성토했다.
‘소통 불가능한 사회’. 북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가 가능한가? 2000년 8월 어느 날, 한반도 남쪽이라는 동일한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90년대 초 실존사회주의권 붕괴 뒤 한국사회엔 포스트모더니즘이 풍미하고 있다(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한국사회가 탈근대사회인가, 근대사회인가, 아니면 전근대사회인가 하는 논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아직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혹한 한낱 기자에 불과하지만, 기사를 쓰기 위해 일을 하다보면 곤란한 지경에 처할 때가 많다. 한편에선 ‘나는 나’라며 21세기형 개인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선 폭력적 재개발에 맞서 싸우는 도시빈민들의 처절한 아우성이 들린다. 세계화와 ‘시장’이 어느 새 우리의 전지전능한 새로운 신으로 군림해가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선 반세기 전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가 귓가를 맴돈다. 지난 4월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동당을 앞세운 진보적 정치세력화 노선 사이의 갈등도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기사의 내적 일관성을 확보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국가폭력, 냉전체제에 의해 본격화
도대체 한국사회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한국사회에 미만한 편의주의와 철면피한 이기주의, 완고한 가족주의는 무엇 때문인가. 사회의 연대성과 관용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근대의 그늘』(돌베개 펴냄, 2000년)이 출간됐다. 난 갈급증에 빠진 사막의 거인마냥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지은이는 이 책의 기본 문제의식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에게 ‘근대’ 또는 ‘근대성’은 무엇이었나?”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이후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에서 한발도 비켜선 적이 없던, 김 교수는 ‘한국의 독특한 근대’의 뿌리를 더듬어나가기로 작심한 것 같다. 그건 “한국의 노동현실·노사관계·노동정치의 특성은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본격화하기 이전 한국사회의 가족 계급 동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만족스럽게 해명되지 않는다”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한 때문일 터이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노사간 대립, 좀체로 기업별 노조체계와 ‘경제투쟁’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민주노조운동. 왜 그럴까?
그는 한국사회의 기원과 성격을 해명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뿌리에 대한 역사구조적 접근을 취했다. 90년대 이후 세를 얻고 있는 서구적 시민사회론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지만, 한국의 시민사회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력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와 다른 식의 사고법을 알려준다.
지은이의 문제의식은 국가폭력의 기원과 그것이 전사회적으로 구조화된 과정에 집중된다. 다들 알다시피 국가폭력의 기원은 일제의 파시즘적 식민지 지배체제다. 그러나 지은이는 국가폭력이 “냉전체제와 더불어 본격화”했다고 지적한다. “8·15 이후 좌우익 대립은 국가건설을 둘러싼 일종의 내전”이며 “한국전쟁은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그사이 ‘민족’과 ‘반민족’의 대립축은 ‘반공국민’과 ‘좌익’의 대립으로 대체됐다. 그리곤 ‘빨갱이 사냥’이 시작된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 ‘빨갱이’는 더 이상 생각이 다른 사람이 아니다. ‘박멸’해야 할 독버섯일 뿐이다. 지은이는 이 점에서 한국의 사회적 대립은 인종주의 또는 혈통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연하게도 “공공연한 국가폭력은 법규범이 관철되는 단위로서의 ‘사회의 부재’”로 나아간다.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의 세력관계, 특히 둘 사이의 합의의 기반이 극도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초헌법적 지위를 누리는 강제규범인 국가보안법은 이런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은 일제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1948년 여순사건 이후에 반국가단체의 조직, 가입, 이적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그 뒤 네 차례 개정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 즉 국가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개정 집행됨으로써 실질적인 사회적 동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법이 헌법보다 더 강하게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규율한다. 아다시피 국가보안법의 논리적 기초는 국가주의로, 사상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시민사회 도덕률의 형성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다.
“안보국가는 정당화될 수 있는 재산권이 아닌 ‘재산권 일반’을 사회주의에 대한 방어로 합리화”해왔다. 또한 ‘분단 질서하에서 재산권 절대주의, 재산만능주의, 기업활동 무조건 옹호론’이 한국사회를 규율해왔다. 반대자의 비판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단죄됐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부패와 타락을 낳는다. 민중도 닮아간다. “사람들이 학습하는 가장 중요한 도덕교과서는 정치, 즉 국가의 행동”이고 “최고의 교육자는 대통령이며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역대 대통령들은 친일인사를 재기용했고, 지속적으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전두환, 노태우, 김현철 등의 사면복권을 보고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지켜야 할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돈과 재물, 권력과 지위, 관능적 쾌락의 한국
지은이는 현대 한국인이 추구하는 세 가지 목표를 김태길을 원용해 ‘돈과 재물, 권력과 지위, 관능적 쾌락’이라고 요약한다. “한국현대사에서 30년 군부통치는 효율성과 안보가 한몸이 되어 ‘도덕’을 비웃었던 시기”였다. “정치와 돈의 논리가 법과 도덕의 논리를 능멸”해온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은이는 “한국에서 근대성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저항 공간의 소멸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적·저항적 대안의 추구는 곧 ‘죽음’, 또는 사회적 파멸을 뜻했다. 다른 한편 한국전쟁으로 봉건주의적 신분질서가 궤멸된 한국사회에서 ‘체제에 위협요소가 되지 않는’ 개인주의적 상승의 길은 완전히 열려 있었다. 이게 바로 “한국사회의 과잉 교육열의 정치사회학적 유인구조”다. 지배질서의 일원이 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관리(공무원)가 되는 것”이었다. 법학과와 정치학과, 의학과와 이공계가 유독 인기 높은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높은 교육열은 반공국가에 의해서 억제된 계급갈등의 반사적 표현”이다. ‘내가족 이기주의’는 옳고 그름을 떠나, 민중의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모순과 갈등은 그 젖줄을 한국전쟁(당시 사회세력간의 갈등과 그 결과)에 대고 있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달라진 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전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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