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컴플렉스를 벗자
2000/2000년 07월 :
2000/07/01 00:00
남북 정상회담이 우리 국민들에게 준 가장 큰 충격은 미치광이 집단의 괴물수괴 정도로 인식되었던 김정일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도 보통사람이 아닌 뛰어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은 충격을 넘어서 55년 간의 불신과 반목의 장막을 거두고 신뢰의 싹을 틔우는 민족적인 감동의 주역 그 자체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로 자신감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유머감각과 패션감각으로 통일문제에 둔감한 신세대에게 마치 대중스타처럼 다가왔다. 더구나 우리 모두의 기대를 넘어선 남북공동선언에 동의함으로써 역사 속에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주도면밀함도 과시하였다. 그의 모습은 전쟁 미치광이 집단의 괴물수괴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었고, 그동안 우리가 북한에 대하여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가를 우리 스스로 일시에 깨닫게 만든 일대의 학습이었다.
남북문제가 거론될 때에 두 가지 부끄러운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린다. 회사에 다닐 때인 1979년의 일이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말을 하는 일행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김일성 배지를 찬 북한 사람들이었다. 순간 긴장이 되고 심장이 뛰었다. 난생 처음 본 북한 사람들이었다. 처음 본 북한사람이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보다는 상대는 세 명이고 나는 혼자이니 납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당시에는 해외여행을 나가는 사람들은 정보기관에서 실시하는 안보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해외에서 북한사람들이 남한사람들을 납치해 가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더 큰 일은 그 날 저녁에 일어났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호텔식당에 갔더니 비행기에서 본 북한사람들이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그 숫자가 다섯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두려움에 밥을 먹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당시에 나이지리아는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고 우리는 외교관계가 없고 무역진흥공사 지사만이 있었던 시절이다. 다음 날 무역진흥공사 지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 호텔에 북한 대사관이 있다는 것이고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납치를 당할지도 모르는데 걱정 말라고 하느냐고 했더니 그쪽에서 웃으며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얼굴 붉어지는 어리석고 황당한 일이었다.
두 번째 일은 1982년 미국 유학 시절의 일이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꼭 읽어보아야 한다며 책 한 권을 보내왔다. 모택동의 중국공산군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김산의 이야기를 기록한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g)』였다. 훗날 이 책은 번역본이 국내에서 출판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숨겨진 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에 대한 역사들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당시에 이 책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빨갱이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내가 배운 역사에는 없었다.
이 일이 있은 이후에 김일성이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북한괴뢰가 조작한 것이라고 배운 역사교육이 오히려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는 북한동포가 오히려 70년대 초까지는 우리보다 잘 살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받은 역사교육이 반쪽짜리였고 반공교육의 상당부분이 허구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일종의 혼란과 불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에 중국의 붉은 별 『Red Star of China』나 『Mao’s People』 같은 중국공산혁명에 관한 책들을 읽고서 나의 어리석음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남북문제를 보는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였다. 다만 우리 국민들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하여 비쳐진 그의 모습을 통해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제야 김정일과 북한의 국민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그 자체가 충격이었으며, 이 충격은 지금껏 북한을 일방적으로 생떼만을 쓰는 집단으로 생각해온 우리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준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행동을 계획되고 준비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하는데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만큼은 배우와 같이 계획되고 연습된 연기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평소와 전혀 다른 계획되고 준비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는 극단적인 의심을 할지라도 그의 그러한 모습은 남한의 국민들뿐 아니라 북한의 국민들에게 함께 보여준 것이므로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이번 남북공동선언이 우리가 지금 기대한 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김정일과 북쪽 국민들이 남쪽의 우리와 같이 진정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의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의 문제를 풀어갈 주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소액주주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인 1997년 초의 일이다. 학교 일로 어느 신문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학교 일에 대한 상의를 끝낸 후에 함께 방문한 동료선배 교수가 나를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고, 나는 그 신문이 소액주주운동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반응은 너무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빨갱이가 하는 일은 보도하지 않는다”는 무례하고 황당한 말을 면전에서 한 것이다. 진보좌파에서는 소액주주운동을 ‘자본가의 앞잡이 노릇’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을 때인데, 재벌들과 우파에서는 이를 ‘빨갱이가 하는 짓’이라고 매도한 것이다. 모든 사회현상을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에 끼워서 빨갱이와 자본가의 행위로밖에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우매함을 보여준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변하는 세상을 보는 생각과 판단은 과거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남북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남과 북은 서로 자기는 절대선이며 상대방은 절대악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적인 틀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제국주의의 압제에 허덕이는 남쪽의 동포를 해방시킨다는 적화통일론에 대항하여 북쪽의 동포가 굶어죽어 가는데도 더 굶고 허덕여야만 북한체제가 무너질 것이므로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는 흡수통일론이 대두된 것이었다. 빨갱이와 자본가의 이데올로기 싸움 속에서 민족분단의 역사적 슬픔과 고통이 실종되어 왔던 것이다. 냉전의 역사가 무너졌는데도 남과 북은 과거의 역사 속에 자신들을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남북공동선언에서 특히 눈길을 끈 두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는 남북공동체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민족경제에 대한 언급이다. 남북연합체와 남북연방제 중에서 어느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방안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일 뿐 아니라 당장의 핵심사안이 아니다. 핵심은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입장을 버리고 상대를 실체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북쪽에서는 적화통일을 포기한 것이고, 남쪽에서는 흡수통일을 포기한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포기선언을 서로 상대방에게 했다는 의미보다는 각자 자기 국민을 상대로 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두 체제를 서로 인정할 뿐 아니라 북한은 북한 국민들에게 그리고 남한은 남한 국민들에게 서로가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공동선언은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70년대 초까지는 남북한의 경제력이 엇비슷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경제분야에서 남한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불균형이 현실이다. 따라서 북한이 남한이 지난 30년간 이룬 고도성장을 하고 남한이 오늘 상태로 정체되어 있어도 남북의 경제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남한이 북한의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북한의 발전이 다시 남한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상승적인 협력관계를 추구한다면 남북의 균형발전을 넘어서서 통일된 남북이 함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단선적인 상호주의를 버리고 우리가 먼저 하나를 주고 둘을 주고 열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둘을, 넷을, 그리고 스물을 만들어 내어 온 민족이 함께 잘살게 되면 그것이 새로운 민족경제의 상호주의인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남과 북을 과거의 역사에서 해방시키고 변하는 세상으로 뛰쳐나오게 한 일대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북한의 국민들에게 미제국주의의 앞잡이에서 통일의 역군으로 변모한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과 남한의 국민들에게 괴물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은 이데올로기의 틀과 과거 역사의 굴레를 벗어 던진 우리 민족의 새로운 두 모습을 대변한 것이었다. 이것은 빨갱이와 자본가의 세상에서 새로운 한민족의 세상으로 가는 첫 걸음인 것이다.
남북문제가 거론될 때에 두 가지 부끄러운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린다. 회사에 다닐 때인 1979년의 일이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로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말을 하는 일행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김일성 배지를 찬 북한 사람들이었다. 순간 긴장이 되고 심장이 뛰었다. 난생 처음 본 북한 사람들이었다. 처음 본 북한사람이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보다는 상대는 세 명이고 나는 혼자이니 납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당시에는 해외여행을 나가는 사람들은 정보기관에서 실시하는 안보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해외에서 북한사람들이 남한사람들을 납치해 가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더 큰 일은 그 날 저녁에 일어났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호텔식당에 갔더니 비행기에서 본 북한사람들이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그 숫자가 다섯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두려움에 밥을 먹지 않고 방으로 돌아왔다. 당시에 나이지리아는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고 우리는 외교관계가 없고 무역진흥공사 지사만이 있었던 시절이다. 다음 날 무역진흥공사 지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 호텔에 북한 대사관이 있다는 것이고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납치를 당할지도 모르는데 걱정 말라고 하느냐고 했더니 그쪽에서 웃으며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얼굴 붉어지는 어리석고 황당한 일이었다.
두 번째 일은 1982년 미국 유학 시절의 일이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꼭 읽어보아야 한다며 책 한 권을 보내왔다. 모택동의 중국공산군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김산의 이야기를 기록한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g)』였다. 훗날 이 책은 번역본이 국내에서 출판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숨겨진 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에 대한 역사들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당시에 이 책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빨갱이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내가 배운 역사에는 없었다.
이 일이 있은 이후에 김일성이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북한괴뢰가 조작한 것이라고 배운 역사교육이 오히려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는 북한동포가 오히려 70년대 초까지는 우리보다 잘 살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받은 역사교육이 반쪽짜리였고 반공교육의 상당부분이 허구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일종의 혼란과 불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에 중국의 붉은 별 『Red Star of China』나 『Mao’s People』 같은 중국공산혁명에 관한 책들을 읽고서 나의 어리석음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남북문제를 보는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였다. 다만 우리 국민들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하여 비쳐진 그의 모습을 통해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제야 김정일과 북한의 국민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그 자체가 충격이었으며, 이 충격은 지금껏 북한을 일방적으로 생떼만을 쓰는 집단으로 생각해온 우리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준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행동을 계획되고 준비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하는데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만큼은 배우와 같이 계획되고 연습된 연기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평소와 전혀 다른 계획되고 준비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는 극단적인 의심을 할지라도 그의 그러한 모습은 남한의 국민들뿐 아니라 북한의 국민들에게 함께 보여준 것이므로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이번 남북공동선언이 우리가 지금 기대한 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김정일과 북쪽 국민들이 남쪽의 우리와 같이 진정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의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의 문제를 풀어갈 주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소액주주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인 1997년 초의 일이다. 학교 일로 어느 신문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학교 일에 대한 상의를 끝낸 후에 함께 방문한 동료선배 교수가 나를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고, 나는 그 신문이 소액주주운동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반응은 너무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빨갱이가 하는 일은 보도하지 않는다”는 무례하고 황당한 말을 면전에서 한 것이다. 진보좌파에서는 소액주주운동을 ‘자본가의 앞잡이 노릇’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을 때인데, 재벌들과 우파에서는 이를 ‘빨갱이가 하는 짓’이라고 매도한 것이다. 모든 사회현상을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에 끼워서 빨갱이와 자본가의 행위로밖에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우매함을 보여준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변하는 세상을 보는 생각과 판단은 과거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남북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남과 북은 서로 자기는 절대선이며 상대방은 절대악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적인 틀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제국주의의 압제에 허덕이는 남쪽의 동포를 해방시킨다는 적화통일론에 대항하여 북쪽의 동포가 굶어죽어 가는데도 더 굶고 허덕여야만 북한체제가 무너질 것이므로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는 흡수통일론이 대두된 것이었다. 빨갱이와 자본가의 이데올로기 싸움 속에서 민족분단의 역사적 슬픔과 고통이 실종되어 왔던 것이다. 냉전의 역사가 무너졌는데도 남과 북은 과거의 역사 속에 자신들을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남북공동선언에서 특히 눈길을 끈 두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는 남북공동체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민족경제에 대한 언급이다. 남북연합체와 남북연방제 중에서 어느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방안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일 뿐 아니라 당장의 핵심사안이 아니다. 핵심은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입장을 버리고 상대를 실체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북쪽에서는 적화통일을 포기한 것이고, 남쪽에서는 흡수통일을 포기한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포기선언을 서로 상대방에게 했다는 의미보다는 각자 자기 국민을 상대로 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두 체제를 서로 인정할 뿐 아니라 북한은 북한 국민들에게 그리고 남한은 남한 국민들에게 서로가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공동선언은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70년대 초까지는 남북한의 경제력이 엇비슷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경제분야에서 남한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불균형이 현실이다. 따라서 북한이 남한이 지난 30년간 이룬 고도성장을 하고 남한이 오늘 상태로 정체되어 있어도 남북의 경제력이 균형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남한이 북한의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북한의 발전이 다시 남한의 발전을 가속화시키는 상승적인 협력관계를 추구한다면 남북의 균형발전을 넘어서서 통일된 남북이 함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단선적인 상호주의를 버리고 우리가 먼저 하나를 주고 둘을 주고 열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둘을, 넷을, 그리고 스물을 만들어 내어 온 민족이 함께 잘살게 되면 그것이 새로운 민족경제의 상호주의인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남과 북을 과거의 역사에서 해방시키고 변하는 세상으로 뛰쳐나오게 한 일대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북한의 국민들에게 미제국주의의 앞잡이에서 통일의 역군으로 변모한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과 남한의 국민들에게 괴물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은 이데올로기의 틀과 과거 역사의 굴레를 벗어 던진 우리 민족의 새로운 두 모습을 대변한 것이었다. 이것은 빨갱이와 자본가의 세상에서 새로운 한민족의 세상으로 가는 첫 걸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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