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압적 군사문화 웅변하는 전쟁기념관
도시의 환경을 평가하는 데는 나무가 우거진 녹지의 확보 문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서울의 경우 도시의 허파 구실을 하는 녹지는 고궁과 남산 그리고 용산 등지가 있다. 용산이 다른 지역과 달리 녹지로 남아 있는 것은 이곳이 군부대가 주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산에서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주한미군기지가 넓게 장악하고 있는 군사지역이라는 점이다.

용산의 미군기지는 외국의 한반도 침략의 상징적 장소로 되어 있다. 그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때 몽고군 통감부에 의해 점령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후방병참시설 기지로, 임오군란 때는 청군의 주둔지로, 일제 강점기 때는 총독부의 조선군 총사령부가 있었으며 그 이후는 미 보병 7사단 기지로, 6·25 이후에는 지금까지 줄곧 미8군이 주둔하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도심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땅이 외국군의 주둔지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용산은 한반도의 군사 요지인 셈이다. 용산을 장악하고 있는 미군기지는 지도상에서 보면 그 모양이 개(어떤 이들은 셰퍼드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가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 섬뜩하기까지 하다.

반미운동이 거셌던 1980년대 후반 이후 이곳은 약간의 변화를 맞는다. 미군기지의 반환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우선 한강변쪽의 주한미군 전용 골프장이 우리 정부의 손으로 넘어와 시민가족공원으로 바뀌었다. 삼각지에서 이태원으로 통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국방부와 마주 보고 서 있던 육군본부도 옮겨졌다. 바로 이 육군본부 자리에 전쟁기념관이 세워졌다.

전쟁기념관은 김영삼정권 중반에 준공되었지만 건립 계획이 마련된 것은 6공인 노태우정권 때의 일이다. 전두환정권의 왜곡된 민족주의로 포장된 통치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독립기념관에 이은 군부정권의 전형적 상징화의 산물인 셈이다. 이 기념관의 건립사업은 예비역 장교들이 주축이 된 단체가 주관해서 추진했다. 군부의 절대적 권력을 상징하는 이 전쟁기념관은 국방부와 서로 정면으로 마주보며 ‘형님, 아우’를 부르는 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군사정권의 유물이 된 전쟁기념관

1,000억 원의 비용을 들여 지상 4층 지하 2층에 연면적 2만 6,000여 평의 규모로 지은 이 기념관은 전면에 거대한 원형광장을 두고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며 돌로 외부를 치장한 건물이 광장 좌우로 긴 팔을 벌리고 늘어 서 있는 회랑과 붙어 있다. 이 회랑은 기념관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꾸며주는 인공 호수에까지 뻗어 있다. 이처럼 건물이 ‘디귿자’형으로 에워싸고 있는 원형광장(바닥은 마치 국방부의 휘장처럼 도안되어 있다)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왜소해지고 건물의 위용에 압도당한다. 건축물의 권위적인 위계에 굴복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듯 넓은 광장과 힘있게 뻗은 회랑, 그리고 본 건물인 전시장 부분이 절대적인 대칭으로 안정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물의 배치와 형태는 절대권력의 상징인 전제주의 국가에서 흔히 보는 형식이다. 어떤 것을 기념한다는 건축물이 지니게 되는 상징성과 위엄성은 다분히 권위적이고 절대적인 형태로 표현되어왔다. 서구 중세의 전제군주시대 건축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독일의 히틀러 집권기의 베를린광장계획이나 구 소련의 소비에트궁전계획 등은 권력자의 권위와 대중에게 군림하는 힘의 상징을 표현하는 건축물의 표본이다. 전쟁기념관의 형식이 이를 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태생적인 배경이 바로 군부에 의한 상징성을 내세우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립 계획이 발표될 때부터 이견이 많았고, 기념관이라는 이름만 가지고도 기념관이냐, 추모관이냐, 박물관이냐 하는 논란이 많았던 건물이기도 하다.

이 기념관은 영문으로는 ‘War Me-morial’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메모리얼’이라면 전시보다 추모의 성격이 더 가깝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은 날개처럼 앞으로 뻗어 나와 있는 양쪽의 회랑(이곳에는 납골당처럼 구획되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실내공간이 전시장이다. ‘메모리얼’은 대개 사람들의 접근이 친숙한 배치와 규모로 방문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추모의 마음에 젖도록 하는 건축적 장치와 공간 구성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랑스 파리의 시테섬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건물이 없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입구를 따라 지하로 들어가면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수용소에서 희생된 20만 명의 영령들을 기리는 추모의 장이다. 이곳은 거창한 공간이나 시설이 장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관람과 전시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정신성에 호소하는 감동의 다이너미즘을 주는 공간이다. 미국 워싱턴의 넓은 공원(몰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위치한 베트남 전쟁기념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유학생의 설계로 조성된 이 기념관도 건물은 없다. 워싱턴 몰의 보행자 길옆에 둔덕을 따라 지형을 그대로 살려 두고 벽을 만들어 그 벽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깨알같이 새겨 넣은 것이 기념관의 전부이다.

전쟁을 희화화하고 반전 메시지도 없어

이 두 기념관은 무엇을 기념하는 곳이며 어떻게 그 공간을 만들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기념관은 전쟁 자체의 기념이 아니라 전쟁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며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우고 전쟁이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를 경고함으로써 반전의 이념과 인간 존엄의 마음을 가다듬는 계몽과 정신교육 장소로서의 성격이 부각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기념관의 건립 목적이 “조상의 호국정신과 위국 헌신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추모하는 전당이자, 전쟁의 교훈을 일깨우는 사회교육의 장”(팸플릿 안내문)이 되게 하는 것이었으면 우선 전쟁의 참혹함을 경계하고 인간 생명의 존귀함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을 염두에 둔 기념관의 모습을 갖출 일이다. 그러나 전쟁기념관의 모습을 살펴보면 거대하고 권위적인 규모와 형태가 관람객들을 압도하고 주눅이 들게 할뿐 추모의 마음을 주고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장소로는 미흡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애초부터 이 기념관은 ‘전쟁의 교훈과 추모’가 목적이 아니라 군부에 의한 ‘군사문화’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립 주체가 정부 기관이 아니라 퇴역장교들이 만든 단체였다는 것도 그런 개연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기념관의 공간 프로그램에서도 잘 드러난다. 넓은 공간을 할애해서 군사문화를 과시하듯 전쟁에 쓰이는 장비 등 전시물을 백화점 식으로 늘어놓고 줄지어 관람하게 한 공간 꾸미기는 박물관 등 전시장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더욱이 전쟁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꾸민 공간은 가상 전투를 관람자가 직접 경험하는 곳으로 전쟁 실황 장면을 묘사하는 스피커의 귀를 찢는 소리와 화약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워 섬뜩한 기분을 갖게 한다. 이곳은 마치 놀이동산의 어린이 오락시설처럼 꾸며져 있어 전쟁을 희화화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걸프전이나 코소보 사태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리와 같이 전쟁을 재미로 인식하게 만드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서 전쟁의 교훈을 심게 한다는 것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쟁은 인간에게 가까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수많은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의 폐해와 경각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물며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전쟁에 대한 정서는 어느 것보다 큰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곧 통일이라는 민족정신과도 맞물려 있다. 전쟁기념관이 당초의 건립 목적을 살려 추모와 교훈의 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군사문화의 태를 벗고 통일의 의지를 심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호국의 달 6월, 전쟁기념관을 돌아보며 기념관 부지 구석에 세워져 있는, 남과 북의 형제가 부둥켜안고 있는 조형물이 말해주듯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그날을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주연 월간 『건축인POAR』주간·건축비평가
1999/06/01 00:00 1999/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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