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를 아십니까?』/김민웅 외 지음
『조선일보』 문제는 어쩌면 매우 단순한 것이다. 어느 독재정권도 단지 총칼(강제력)만으로 권력을 유지시킬 수는 없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피지배민중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적어도 현상타파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하게 만들 이데올로기적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없는 정통성을 분식(紛飾)해 줄 언론과 지식인들이다. 그런데 결국 독재정권이 몰락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민중들에게 역사의 발전으로 인식되고 있다면? 그렇다면 기존 독재정권에게 봉사했던 언론과 지식인 등 ‘이념적 기관’들은 마찬가지로 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순리이다. 동서고금이 마찬가지이다. 그 청산이 순조롭게 잘 되느냐 안되느냐야말로 독재시대 청산의 수준과 질을 판단하는 가늠자일 것이다. 『조선일보』 문제도 그러한 범주 안의 것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조선일보』 문제 해결은 좀처럼 간단하지 않다. 위에서 말한 ‘순리’대로라면, 『조선일보』와 같은 독재체제의 유지, 대변자(물론 『조선일보』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성을 인정(?)해주지 않을 수도 없다)는 역사와 국민에게 참회를 하고 적어도 기존과 같은 행태를 답습하지 않는 모습으로 거듭나거나, 그렇지 않다면 즉 과거와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면 그 신문은 차가운 사회적 외면 속에서 영향력의 급속한 감퇴라는 자업자득을 겪고 있어야 마땅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친일·친독재·반민족·반민주 언론의 대명사인 이 신문은, 해방 이후에도, 6월항쟁 이후에도,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심지어(?) 50년만의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에도 꿋꿋하기만 하다. 한국 민주화의 지연과 비(非)단절성, 그리고 언론계의 복잡한 현실은, 우리 사회 다른 분야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의 명쾌한 청산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정권교체 이후 초보야당 한나라당에 수차례의 사설과 칼럼을 통해 우정어린 충고를 건넨 바 있다. 어려울 때 서로 의지하는 전래의 미풍양속이야 탓할 바 못될 지 모르겠지만, 그 충고의 내용들은 한번 생각해볼 점이 있을 것 같다. 요컨대 그 내용이라면 한나라당은 우왕좌왕 하지말고 일본 자민당을 ‘벤치마킹’하여 산업화시대에 성장한 우리 사회의 ‘주류’와 ‘보수적 중산층’을 확실하게 대변하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결국 기득권세력 내지 그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여권이 향유해온 지지기반)에 기반하여 ‘세련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생존전략의 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충분한 ‘상품성’과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러한 생존전략은, 즉 과거를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대신 기본적으로 기존의 방식을 밀고나간다는 전략은 『조선일보』 자신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직 그 전략의 성공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어쨌든 현재까지는 시장점유율(판매부수)에서나 사회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조선일보』의 위세는 크게 하락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일군의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모아 묻는다. 『조선일보』가 과거에 어떠한 신문이었는지, 지금 또 어떠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지 알고 있냐고. 『조선일보』를 아느냐고. 『조선일보를 아십니까?』(김민웅 외 지음, 개마고원 펴냄)는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은 이 나라 언론개혁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방과)의 계간지 『인물과 사상』(개마고원) 제10호 발간을 기념하여 기획된 책이기도 한데, 강 교수가 그간 외롭게 펼쳐온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운동’과 출판의 언론화 작업에 대한 일단의 지식인 우군들의 화답이자, 책의 편집자가 표방한 바 “조선일보 비판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조선일보』는 무엇이 그렇게 문제인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온 10명의 필자(정확히는 9명의 개인과 1곳의 단체)가 제각기 다른 접근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한다.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돈있는 사람 돈을 내고… 하는 옛말을 떠오르게 할만큼, 이 책에선 철학과 풍자를 아는 사람은 철학과 풍자로, 역사를 아는 사람은 역사로, 경제를 아는 사람은 경제로, 문학과 문화를 아는 사람은 또 그것으로 공동의 적수에 맞서는데, 그 품세가 가히 ‘통일전선’의 형세이다.

재미 목사이자 언론인인 김민웅씨는 ‘최장집 죽이기’ 사태에서 다시 드러난 『조선일보』의 냉전적 인식(조선일보사의 호전적 태도는 차라리 ‘열전적’ 인식이라 해야겠지만)의 허위의식과 이데올로기적 오만을 준열하게 비판한다. 김민웅 씨의 글이 진중한 편이라면, 탄탄한 철학적 논리와 특유의 풍자적 문체로 최근 성가를 드높이고 있는 진중권 씨(문화평론가)의 글은 역시 재기가 넘치고 통쾌하다.

언론학자 김동민 한일장신대 신방과 교수는 일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선일보』의 일관된 “친독재 권언유착”의 역사를 고발하고, 손석춘 씨(『한겨레』 여론매체부장)는 『조선일보』의 반민중적·반민주적·반노동자적 편집행태를 최근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참고로 『조선일보』의 ‘역사적인’ 허위·왜곡보도 자료를 잘 모아놓은 것으로는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허위·왜곡보도 공대위’편 자료집(비매품/ 전화 3273-1529)이 있다).

김정란 씨(시인, 상지대 불문과 교수)는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 - 부드럽고 멍청할 것,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할 것’이라는,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글에서 자신 역시 “…『조선일보』의 특수한 언론행태를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라고 반성적 고백을 하는 한편, 『조선일보』의 문화면을 나긋나긋하고 예쁘게 장식하는 데 일조하는 작가들에게 직격탄을 발사한다. 문화평론가 노염화 씨는 얼핏 보면 비정치적일 것같은 스포츠면과 문화면, 특히 인기연재만화 「광수생각」에서 『조선일보』 색깔의 정치적 함의를 끄집어내고 그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또한 석진욱 씨(홍익대 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는 『조선일보』가 지니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경제패러다임의 문제점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모니터분과는 『조선일보』의 지역주의 조장의 실상을 각각 파헤치고 있으며, 『케이블TV가이드』(한겨레신문사 발행) 편집장 최보은 씨는 언론계 종사자로서 『조선일보』에 대한 인식을 체험담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왜 여전히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고, 또 어떻게 해야 ‘제몫’을 찾아줄 수 있을까. 전자에 대한 유시민 씨(시사칼럼니스트)의 답안은 ‘왜곡된 신문시장의 존재’이고 후자의 해결책은 자연히 ‘신문시장의 개혁과 정상화’이다. 신문시장의 불투명성, 배달시장의 낭비적·인위적 경쟁체제, 신문사들의 담합과 경쟁제한, 광고시장에서의 차별 대우 등의 불공정 거래행위 등이 그가 지적하는 신문시장의 고질적 왜곡상이다. 이러한 불공정 경쟁구조 속에서 1등을 한다고 해봐야 그게 영광일 리 없으며, 이를 시정하고서야 비로소 ‘신문시장의 점유율이 우리 국민의 (신문보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논리적·제도개혁적 대안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매스컴의 ‘장난’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국민의식’의 전반적인 향상, 그것을 가능케 하고 또 그것과 맞물려 있는 정치적·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진전, 대항·대안미디어의 도전과 실험 등이 아울러 필요함은 물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이 책으로 인해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무엇을? 그 신문만이 유독 이러한 유별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또 “지금 『조선일보』가 비록 아직도 일부이긴 하지만 지식인 대중들의 적의에 포위돼 있는 상황(최보은 씨)”이라는 것을. 이 책 출간 자체가 그 증거라는 것을.
이수강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
1999/06/01 00:00 1999/06/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437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