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속의 뇌사국회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는 매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16대 국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여야는 16대 국회에 ‘정치개혁특위’를 가동하기로 합의한 상태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미 정치개혁이라는 수사에 면역이 되어 버렸다. 매번 정치권의 이전투구로 얼룩져 별 성과없이 끝나고 말아 짜증만 배가한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었다. 정치권에 대한 짜증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매번의 성과없음은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정치는 정치인들 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정치 자체는 우리 사회를 왜곡시킨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아마도 정치개혁의 당위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논의 과정을 보면 정치개혁의 문제를 정치관계법을 중심으로 접근함으로써 일반 유권자들의 이해와 참여를 저해한 측면 또한 부정할 수 없을 듯 싶다. 정치개혁 과제를 생활 속에서 접근했을 때 부딪히게 되는 불편함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침해에 대해 몇 가지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 보자.

유권자는 알고 싶다

한국의 유권자는 차라리 무권자에 가깝다. 한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고 입법제도화하는 국회가 실질적인 심의가 이뤄지는 소위원회의 속기록을 단 한 차례도 작성한 적이 없으며, 지난 99년 국정감사를 방청하려던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누가 너희에게 국회의원을 평가할 권리를 부여했느냐”라는 괴상한 논리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회의 방청을 봉쇄해 버렸다. 기록도 없고 방청도 안된다니, 김종필씨 표현을 빌리면, “도대체 무슨 나라가 이러나?”

우리 사회는 정치권과 관련한 최소한의 알권리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평소 국회를 한번이라도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 높은 벽에 위압감이나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정문에서부터 방문 목적을 밝혀야 하고, 의원회관이나 사무처는 정문이 아닌 뒷문을 이용해야 한다. 불쾌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검문대를 통과하는 것은 백분 이해한다 해도, 국회에 근무하는 사람과 사전 예약이 돼 있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가방이라도 메고 있으면 그 속을 청원경찰에게 열어서 보여줘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늘 테러위험에 시달리고 있거나 철저한 보안 속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가 보다.

회의록 작성과 방청권 문제 외에도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낙선운동을 벌였던 총선연대 자료조사팀은 15대 국회의원 출결사항을 조사하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다. 국회 사무처에 ‘국회의원 출결 사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하였으나, 국회엔 별도로 정리된 국회의원 출결사항이 없었다. 국회엔 출석부가 없다? 그래서 자원활동가들을 동원해 일주일 동안 15대 국회 4년 동안의 상임위·본회의·국정감사 등 모든 회의록에 첨부되어 있는 출석사항을 일일이 하나씩 복사했다. 그러나 회의록에 있는 출석자 명단이 그날 회의에 참석한 의원의 이름만을 죽 나열하고 있을 뿐, 회의에 결석한 의원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난감한 것은 매 회의마다의 상임위 소속의원을 확인해야만 한다는 데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국회는 워낙 자주 상임위 변경이 이뤄지고 있고, 심지어 하루사이에 A상임위에서 B상임위로, 다시 B상임위에서 A상임위로 오가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기 때문이다. 15대 국회에만 600회 이상의 상임위 변경이 있었고, 심지어 한 사람이 15회 이상 변경한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청가를 내고 불참한 경우 등을 고려할 때, 한정된 시간 안에 출결사항을 집계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선거비용 공개, 아무나 열람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국회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16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지역 선관위별로 16대 총선 후보자들이 신고한 선거비용을 열람하라고 공고했다. 그러나 그 열람공고를 보고 찾아간 참여연대 조사팀은 열람을 거부당했다. 정당이나 후보자 혹은 해당 선거구 구민이 아니면 열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 황당했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행 선거법에 의하면, 선거비용 회계자료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선관위를 직접 방문해야만 하며, 자기 지역 이외의 후보자의 것은 볼 수 없으며, 선관위의 공고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그나마도 볼 수 없다. 설사 이러한 난관(?)을 뚫고 열람을 하게 되더라도 복사가 허용되지 않는 제한적인 상태에서 눈으로 훑어 보는 수밖에 없다.

선거비용 외에도 선관위는 매년 정당의 수입지출 회계보고를 공고하고, 공고일로부터 3개월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선거비용과 마찬가지로 열람기간 동안 선관위를 직접 방문해야만 한다. 지난 2월에 공고한 99년 지구당의 수입지출 회계자료를 열람하기 위해 지역 선관위를 하나 하나 방문하면서 회계자료 공개제도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운영되어 왔는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열람기간이 거의 끝나감에도 열람신청서를 보니 우리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런걸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듯한 선관위 직원들의 반응은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했다.

도대체 선거비용 회계자료를 열람하라는 것인지, 하지 말라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이 정치자금 관련 자료를 열람하기 힘들게 할 수 있을까를 부단히 연구한 것으로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다.

각 정당이 제출한 국고보조금의 사용내역과 증빙서류를 하나하나 비교해 가며 증빙을 입증하기 힘든 것들을 일일이 필사한 후 집계를 내보니 왜 유권자의 열람을 이중 삼중으로 어렵게 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각 정당이 제출한 증빙서류의 약 70%가 지출결의서, 견적서 등 도저히 인정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고보조금이 지급된 20년 동안 정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단 한차례도 없었고, 각 정당의 회계보고를 관할하는 선관위는 허위 신고가 인정될 때 부여된 국고보조금의 삭감이나, 지급중단 등의 조치를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 선관위나 감사원은 정치권 눈치보기에 바쁘고, 회계자료의 공개는 형식적이니 정당들은 국고보조금을 자신의 쌈지돈인 양 아무런 제한없이 사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정치개혁의 핵심을 정당개혁에서 찾는다. 오너에 의해 비민주적으로 이뤄지는 공천제도의 개혁 없이는 정치개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개혁적인 국회의원들조차 공천권을 행사하는 당 지도부의 의사에 반하여 소신있는 의정활동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제 정당의 민주화에 대해 유권자가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정당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로운 정치결사체인데, 너희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라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정당의 민주화를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 근거는 정당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당의 민주화를 당당하게 요구하자

우리나라 유권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유권자 1인당 800원씩, 그리고 선거가 있을 때마다 추가로 800원씩, 동시선거가 있으면 또다시 추가로 600원씩을 각 정당에 지급하고 있다. 원하지 않더라도 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의 성인은 매년 800원을, 선거가 있는 해에는 1,600원 이상을 정당에 지원해 주고 있는 셈이다. 지난 98년 한해 동안에만 총 818억원의 국민세금이 각 정당에 지급되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정당은 국고보조금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각 정당에 지원하는 것이 정당하냐의 논란을 잠시 접는다 하더라도, 국고보조금을 지급받는 정당에게 민주적 운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국가예산으로 정당을 보조하는 것은 정당의 공적기능에 대한 지원이지, 몇몇 보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당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세금있는 곳에 권리가 있다는 것은 보편적인 원리이다.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만큼, 각 정당은 공직후보의 선출과정이라든가, 정책의 결정과정에 있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당당하게 정당의 민주화를 요구하자.
이강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
2000/07/01 00:00 200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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