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몰려오는 놈들, 지들이 홍콩에 대해 공헌한 것도 없으면서 거주권을 달라고? 그것들은 다 사기꾼들이야. 그런 것들은 도대체가 동정해줄 가치가 없어. 홍콩의 거지나 사기꾼들은 다 중국 본토에서 온 놈들이야.”

이 말은 홍콩 정부의 관료가 하는 말이 아니다.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십여년 전에 홍콩에 건너온 사람, 그리고 여전히 중국에 친한 친척들을 두고 있고 자기 집도 하나 가지고 있는 어느 아줌마가, ‘중국에서 온 놈들’을 ‘동정’하는 필자를 비난하며 한 말이다.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세계 최초의 실험을 하는 홍콩과 중국 사이에는, 정부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화려한 수식어와 장미빛 미래의 이면에, 이처럼 뿌리깊은 골이 패어 있다.

홍콩인의 자식이지만 홍콩에서 살 수 없다

최근 홍콩의 고등법원에서는, 작년 홍콩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홍콩인의 중국본토 자녀의 거주권문제와 관련한 심리(審理)가 열렸다. 홍콩영주민이 홍콩 외의 지역에서 낳은 중국국적 자녀는, 홍콩의 중국 반환을 결정한 1984년 중영연합성명에 의해 일찍이 홍콩거류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유독 중국본토에서 낳은 자녀의 홍콩거류권만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면서 숱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홍콩정부는 중국중앙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면서 이 중국자녀들을 중국본토에서 통제하고 그들의 거류권을 제한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계속 고안해 온 반면, 작년 1월 홍콩의 법원이 중국자녀들의 ‘승리’라 할 만큼 그들에게 전폭적으로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홍콩정부는 다시 이 판결을 사실상 전면 뒤집는 선언을 한다. 그리하여 이는, ‘일국양제’라는 이름하에 홍콩의 자치가 과연 얼마나 보장되는가, 법원의 결정이 이렇게 마음대로 번복되어도 과연 홍콩은 ‘법치’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등의 심각한 질문들을 야기하면서, 이와 관련된 논쟁들을 일년 내내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종심법원은 같은 해 12월의 관련 소송에서, 예전의 입장과 반대로 정부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다.

또 이 과정에서, 홍콩거류권을 신청하려고 중국본토에서 건너와 체류기한을 넘기고 있던 100여 명은 체포되어 구류에 처해지는데, 이 때 알몸수색을 비롯 모욕적인 대우와 언어폭력(ex. “이 놈의 중국인들은 도대체가 목욕을 안해서, 냄새나고 더러워 죽겠어. 한 달은 목욕을 안한 것같아”)을 당했다고 언론에 폭로하여 정부 차원에서 조사가 행해졌지만, 알몸수색은 수감자들의 안전을 위한 합리적이고 적법한 절차였으며 일체의 모욕적인 대우도 없었다는 발표로 마무리된다.

현재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은, 정부가 법원의 결정을 뒤집는 선언과 동시에 발표한 소위 ‘타협결정’에 관한 것이다. 홍콩의 자치·사법독립과 관련된 비난여론을 의식한 홍콩정부는, 1997년 홍콩반환 날짜로부터 1999년 1월 29일의 종심법원 판결 사이의 기간에 홍콩 ‘당국(當局)’에 거류권 ‘주장’을 한 이들에 대해서만은 특별히 원래의 종심법원 판결을 적용, 그들의 거류권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콩당국은 불분명한 내용으로 거류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코 ‘홍콩인’이 될 수 없는 ‘중국인’

중국에서 최근 홍콩거류권을 얻어 온 사람들은, 다시 ‘신이민(新移民)’이라는 범주로 묶이면서, 숱한 멸시와 공공연한 차별의 대상이 된다. 월급도 신이민이라면 더 적게 주고, 물건을 살 때 비싸다고 서툰 광동어로 한마디라도 하면, “그렇게 싼 게 좋으면 본토로 돌아가면 될 것 아냐?”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아이들은 중국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낮은 학년으로 가야 한다. 종종 다른 아이들로부터 ‘신이민’ ‘대륙놈’이라며 맞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홍콩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경멸에는, 정부에 대한 경멸과 일반사람들에 대한 경멸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정부에 대한 경멸을 이루는 주요 요소 중 하나는 ‘인권(人權)’ 문제요, 중국사람들에 대한 홍콩인의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는 ‘문화’가 없고 더럽고 아무 데나 침을 찍찍 뱉는 야만인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중국정부는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부라는 데 대한 홍콩인들의 비판적 의식이, 그 사회의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나 동료의식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에 대한 경멸과 합쳐진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천안문사건을 기념하는 집회에는 몇만 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며 ‘민주’와 ‘자유’를 외치지만, 바로 그들이 중국사람들과 중국에서 건너온 신이민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멸시하는 것이 오늘날 홍콩의 이중적인 모습이다.

‘북한사람’은 ‘우리’일 수 있을까?

중국과 대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될 때, 홍콩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정상회담 발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런 평화적인 대화방법이 중국과 대만 사이의 관계에 하나의 모범사례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홍콩인들이 중국본토인에 대해 보여주는 감정과 태도는, 한국사회와 너무나 유사한 모습들을 계속 연상시켜 주었다.

필자가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홍콩인권단체의 간사는 “당신이 홍콩거류권 문제를 연구해서, 중국여자들 보고, 홍콩남자라는 것만 보고 무턱대고 결혼해서 홍콩에 오는 게 절대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홍콩 생활이 아주 고달프고 모든 면에서 착취당할 뿐이라고 이야기좀 해줘요”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오래 전 한국에서 한참 문제가 되었던, 중국 ‘조선족’ 여자들의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조선족’들은, 결코 우리와 같은 ‘한국사람’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없고, 다만 ‘도와줘야 할’ 대상이요 심지어 사기꾼으로 묘사되어 왔다.

굶어죽어가는 북한아이들을 돕자는 데에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동의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만일 ‘우리의 도움으로’ 그렇게 살아나서 통일 후 서로 만나게 될 때, 그들이 얼마나 ‘우리’로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북한사람들’은 그렇게 ‘불쌍한 북한사람’일 때 비로소 우리의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우리와 ‘하나의 국가’를 이룬 후에는 이미 냉담과 경멸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버릴 운명일지도 모른다.

물론 중국과 홍콩 사이의 관계와 남한과 북한 사이의 관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아니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비관적이다. 중국과 홍콩 사이에는 아주 오랜 기간 계속 왕래가 있어왔고, 서로를 그렇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심지어 ‘악마’로 묘사해본 역사는 없다. 그런데도 그들 사이엔, 심지어 친척들 사이에도, 그런 단절과 경멸이 존재한다. 이제 남한과 북한 사이에도 ‘왕래’가 잦아질 것이다. 그러나 왕래가 단절을 반드시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단절은 사람들 마음 속에 있다. 그 벽은 왕래 속에서, 심지어 매일매일의 부딪침 속에서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더 견고해지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엔 언제나 무수한 선(線)들이 그어져 왔고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그어지고 있다. 그러한 선(線)들은 선 안의 이들에게 삶과 사회를 가능케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선 밖의 이들에 대해 무서운 칼날이 되어 그들을 겨누기도 한다. 다른 이들에 대한 배타적인 선긋기가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서로를 만나고 서로 합쳐지고 살아갈 동력을 만들어내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과연 존재하긴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을 화두(話頭)로 안고 있다.
장정아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 · 홍콩에서 현지조사 중
2000/07/01 00:00 2000/07/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4508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