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투렌
정보사회가 가속화되고 있는 21세기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인간주의란 과연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지난 50여년간 비판 사회이론 안에서 인간주의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란 구조의 강압 속에서 하루 하루의 삶을 유지해 나가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라는 견해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그러한 한계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세계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견해다. 이런 상이한 견해 중 어떤 것이 더 의미있는 시각인가를 판단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주어진 현실과 조건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자율적 의지와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의 쟁점은 적어도 사실의 과학적 판단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결코 용이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Alain Touraine)이 크게 주목받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투렌은 전후 서유럽 사회사상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온 구조주의의 반인간주의에 대항하여 인간 주체와 그 주체의 집합의지 실현으로서의 사회운동에 대한 설득력 높은 이론화를 모색해 왔다. 이러한 그의 인간주의는 인간의 의지를 무조건 특권화하려는 대중적 인간주의,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있지만 기실 그 무력감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속류 인간주의와는 자못 다르다. 진정한 인간주의란 구조와 역사의 강압적 조건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도 그 조건들을 변화시키려는 주체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부각시키려는 이념이며, 이러한 사유는 투렌 사회사상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사회이론과 행위자의 복귀

투렌의 사회학적 경력은 매우 이채롭다. 국내에 투렌의 사회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해 온 정수복 박사에 따르면 투렌은 노동사회학에서 시작하여 사회학이론으로, 그리고 다시 사회운동론으로 자신의 관심 영역을 확장하여 독자적인 사회이론 체계를 구축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68년 68운동과 그 적자라 할 수 있는 70~80년대 서유럽 신사회운동의 한가운데서 당대의 사회운동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전략을 숙고한 실천적인 지식인이기도 하다.

투렌의 사회이론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이른바 ‘행위자의 복귀’이다. 행위자의 복귀란 기존 사회이론에서 간과돼 온 주체의 사회적 능력과 역사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투렌은 사회를 공시적으로는 사회적 대립의 그물망으로서의 행위체계로, 통시적으로는 사회적 행위자들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자기생산 과정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투렌에게 주체 또는 행위자와 등가(等價)의 의미로 사용되는 사회운동은 기존의 지배에 이의를 제기하고 발전에 대한 통제를 겨냥하면서 한 집단이나 계급의 요구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운동을 지칭하는 것이자,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낳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프로그램화된 사회와 신사회운동

신사회운동에 대한 다양한 사회이론 중 투렌의 이론은 미국의 잉글하트, 이탈리아의 멜루치 이론과 함께 이른바 문화주의적 접근을 대표한다. 문화주의적 접근이란 신사회운동의 목표가 새로운 문화적 가치와 행위양식을 창출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는 시각을 지칭한다. 하지만 투렌은 신사회운동의 등장 배경으로 산업사회에서 후기산업사회로의 역동적 변화과정을 주목함으로써 소박한 문화주의적 접근을 넘어서고 있다.

신사회운동에 대한 투렌 이론의 핵심 개념은 후기산업사회 혹은 ‘프로그램화된 사회’다. 프로그램화된 사회란 산업사회에서 물질적 상품이 차지했던 중심 자리를 문화상품의 생산과 확산이 차지한 사회, 구체적으로 산업사회의 철강, 화학, 전기, 전자산업의 자리에 지식, 정보, 교육, 건강산업이 새롭게 들어선 사회를 말한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산업의 중요성은 전통적인 사회통제의 형식을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제의 기제로 대체하는 것, 다시 말해 ‘사물에 대한 관리’에서 ‘인간에 대한 지배’로의 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화된 사회의 도래가 함축하는 바는 사회를 구성하는 갈등 관계가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투렌에 따르면, 산업사회에서의 주요 갈등이 물질적 생산을 둘러싸고 노동조직을 관리하는 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갈등이었다면, 프로그램화된 사회에서의 주요 갈등은 과학과 합리성의 이름으로 사회생활의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기술관료집단과 이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민중계급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기존의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갈등 형태였다면, 신사회운동은 프로그램화된 사회에서 기술관료집단과 민중계급 사이의 대표적인 갈등 형태로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프로그램화된 사회에서의 사회통제 형태, 곧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와 관리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인 저항들이 다름아닌 신사회운동이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사회운동 가운데 투렌은 특히 여성운동, 지역운동, 반기술관료운동 등을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사회운동이 새로운 집합행동의 양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노동운동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신사회운동은 개인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추구하고, 중앙집중제를 거부하는 동시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데 그 중요한 특징이 놓여 있다. 그리하여 사회적 다원성과 통일성, 개인적 자유와 통합을 새롭게 화해시키는 것이 프로그램화된 사회 하에서의 민주주의 전략이라는 것이 투렌의 결론이다.

투렌의 기여, 투렌의 한계

신사회운동에 대한 다양한 사회이론에 대한 개인의 소견을 말하자면, 투렌의 신사회운동론은 그 개념에 걸맞는 가장 새로운 접근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대사회의 핵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산업사회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로 볼 것인가의 문제는 낡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 이슈는 사회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실천적 지향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쾌도난마식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적 구성과 착취관계를 중핵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시간은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물질적 재화의 생산이 정보의 생산으로 변모하는 산업사회의 시간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탈산업사회 혹은 프로그램화된 사회의 도래가 기존 사회운동의 주체와 목표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관찰할 수 있듯이 실로 지대하다. 투렌의 타깃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곧 그는 사회운동에 대한 당대 사회에 내재된 변화의 흐름을 주목하고 이에 상응하여 낡은 사회운동 모델과의 과감한 결별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결별은 그렇다면 타당한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21세기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 모두를 관통하는 사회운동의 두 흐름, 곧 재분배투쟁과 인정투쟁의 관계를 숙고하게 된다. 전지구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후기산업사회 사회운동의 기본 목표는 성, 계급, 인종, 세대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에 대항하여 동등한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인정투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 경제적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인정투쟁의 목표는 쉽게 성취되기 어려우며, 동시에 인정투쟁을 결여한 재분배투쟁만으로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기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다. 투렌의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그것을 개별 사회의 역사·사회적 조건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참여연대 협동처장
2000/07/01 00:00 200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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