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행 따라 역사의 숨결을 찾는 시민들
2000/2000년 07월 :
2000/07/01 00:00
도시는 소비지향적이다. 도시의 모든 산업은 서비스업 중심이고, 공간 또한 보다 소비생활을 용이하게 하도록 구획되어 있다. 어찌 보면 도시는 몸집 큰 공룡같다. 도시는 근교의 수자원을 포함한 자원들을 최대한 끌어들여 식량을 대량으로 소비하고, 밤이면 이곳저곳 붉고 푸른 불을 뿜어대며, 언젠가는 소멸하고 말 것만 같다. 이 때문에 도시에서의 삶은 불안하고 소외되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훌쩍 떠나고 싶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도시를 떠나 방방곡곡 역사기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보자.
6월 17일 오후 4시. 약속한 시간에 맞춰 버스는 경북 울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0여 명의 사람들을 태운 관광버스 안은 의외로 조용했다. 다음날까지 경북 울진에 위치한 망양정, 월송정, 울진 봉평 신라비, 불영사 외에 다수의 유적지를 들르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이번 여행은 관동팔경으로 알려진 곳을 직접 답사해보는 것과 중요한 문화재이지만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잘 인정받지 못하는 지역문화재를 발굴하고 재조명해보기 위함입니다.”
국학연구소 임찬웅 사무국장의 설명이었다. 그는 매주 ‘주제가 있는 여행’을 준비하느라 너무도 바쁜 인물이다. 국학연구소에 근무한 지는 7년째 접어든다. 이렇게 그동안 국학연구소가 시민들과 직접 전국을 답사하면서 모은 기록이나 정보의 양은 방대하다. 그래서 국학연구소는 관광진흥청에서 이곳에 자문을 구할 정도로 살아 있는 정보를 기록ㆍ취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학연구소에서 이런 역사기행을 시작한 것은 1988년부터이다. 지역연구자나 역사학자 혹은 전문가와 여행을 함께 하면서 살아 있는 역사를 체험해 보자는 것이 이 여행의 취지였다. 그러다 보니 10년 이상 이 여행은 꾸준히 진행되었고, 참가자의 대부분은 회원들이다.
밤이 늦어서야 숙소에 도착해 피곤한 몸을 누이는 것부터가 우선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낯선 곳에서 보내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출발 준비를 완료했다. 이 여행에서 자못 특이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여행의 들뜸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인솔자가 말한 약속시간을 철저히 지켜 진행을 도왔다. 시간약속에 엉성한 한국인의 근성이나 빨리빨리의 흔적이 그다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하나 특이한 점은 참가자의 평균 연령이 50대인 것이다. 여느 때는 학생들도 많이 참가한다고 하지만 이날 여행만은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특유한 분위기가 배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보이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히 간직해 후세들에게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엿보였다고 할까. 실제로 인솔자의 설명 하나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수첩에 깨알처럼 적는 참가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부터 굉장히 열심히 적으시는데요.”
“나이가 들면 금방 잊어버려요. 이렇게 적은 것을 정리해 이 다음에 우리 손자손녀에게 얘기해주려고 해요.”
보기에는 40대를 조금 넘었을까 싶었는데, 딸이 대학 졸업할 나이라고 했다. 아직 할머니 소리를 듣기에는 이르지만 후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지극하다. 이런 노력들로 우리가 사는 시간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게 되리라.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에도 아무도 불평없이 계획된 일정을 따랐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있는 국보 제242호 봉평 신라비를 면전에 대했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 객토작업을 하던 중 발견되어 방치되다가 중요한 비석임이 알려져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참가자들은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방치해둔 문화재가 얼마나 많을지…. 역사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고, 지식위주로만 교육을 하니 이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공무원들도 관리태도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밖에.”
이날 함께 참여한 양봉조 씨의 말이다.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해놓은 간판에도 왜 그리 오자가 많은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얼마 전에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오자가 발견되어 수정건의를 했더니 관리인들이 오히려 귀찮아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그것이 단순히 오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재 관리의 부실한 태도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며 이 여행은 자신에게 하나의 배움터라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문화재나 유산에 대한 관심을 단순히 민족주의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손주들에게 읽어줄 거라며 일일이 깨알처럼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과 노력은 몇 가지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시간의 무게와 삶의 의미가 담겨 있다.
6월 17일 오후 4시. 약속한 시간에 맞춰 버스는 경북 울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0여 명의 사람들을 태운 관광버스 안은 의외로 조용했다. 다음날까지 경북 울진에 위치한 망양정, 월송정, 울진 봉평 신라비, 불영사 외에 다수의 유적지를 들르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이번 여행은 관동팔경으로 알려진 곳을 직접 답사해보는 것과 중요한 문화재이지만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잘 인정받지 못하는 지역문화재를 발굴하고 재조명해보기 위함입니다.”
국학연구소 임찬웅 사무국장의 설명이었다. 그는 매주 ‘주제가 있는 여행’을 준비하느라 너무도 바쁜 인물이다. 국학연구소에 근무한 지는 7년째 접어든다. 이렇게 그동안 국학연구소가 시민들과 직접 전국을 답사하면서 모은 기록이나 정보의 양은 방대하다. 그래서 국학연구소는 관광진흥청에서 이곳에 자문을 구할 정도로 살아 있는 정보를 기록ㆍ취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학연구소에서 이런 역사기행을 시작한 것은 1988년부터이다. 지역연구자나 역사학자 혹은 전문가와 여행을 함께 하면서 살아 있는 역사를 체험해 보자는 것이 이 여행의 취지였다. 그러다 보니 10년 이상 이 여행은 꾸준히 진행되었고, 참가자의 대부분은 회원들이다.
밤이 늦어서야 숙소에 도착해 피곤한 몸을 누이는 것부터가 우선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낯선 곳에서 보내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출발 준비를 완료했다. 이 여행에서 자못 특이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여행의 들뜸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인솔자가 말한 약속시간을 철저히 지켜 진행을 도왔다. 시간약속에 엉성한 한국인의 근성이나 빨리빨리의 흔적이 그다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하나 특이한 점은 참가자의 평균 연령이 50대인 것이다. 여느 때는 학생들도 많이 참가한다고 하지만 이날 여행만은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특유한 분위기가 배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보이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히 간직해 후세들에게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엿보였다고 할까. 실제로 인솔자의 설명 하나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수첩에 깨알처럼 적는 참가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부터 굉장히 열심히 적으시는데요.”
“나이가 들면 금방 잊어버려요. 이렇게 적은 것을 정리해 이 다음에 우리 손자손녀에게 얘기해주려고 해요.”
보기에는 40대를 조금 넘었을까 싶었는데, 딸이 대학 졸업할 나이라고 했다. 아직 할머니 소리를 듣기에는 이르지만 후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지극하다. 이런 노력들로 우리가 사는 시간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게 되리라.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에도 아무도 불평없이 계획된 일정을 따랐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있는 국보 제242호 봉평 신라비를 면전에 대했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 객토작업을 하던 중 발견되어 방치되다가 중요한 비석임이 알려져 국보로 지정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참가자들은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방치해둔 문화재가 얼마나 많을지…. 역사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고, 지식위주로만 교육을 하니 이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공무원들도 관리태도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밖에.”
이날 함께 참여한 양봉조 씨의 말이다.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해놓은 간판에도 왜 그리 오자가 많은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얼마 전에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오자가 발견되어 수정건의를 했더니 관리인들이 오히려 귀찮아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그것이 단순히 오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재 관리의 부실한 태도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며 이 여행은 자신에게 하나의 배움터라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문화재나 유산에 대한 관심을 단순히 민족주의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손주들에게 읽어줄 거라며 일일이 깨알처럼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과 노력은 몇 가지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시간의 무게와 삶의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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