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님

제게 주신 ‘편지’ 잘 읽었습니다. 저로선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감사의 말씀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만, 워낙 제한된 지면이라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박 변호사님의 ‘편지’ 내용에 대해선 반론할 게 많습니다만, 그건 다른 기회로 미루고 여기선 한가지 생산적인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6월 7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NGO의 개혁운동과 책임윤리에 대한 토론회’ 관련 기사를 여러 신문에서 읽었습니다(설마 아니 이것도 신문 기사 내용이 맞는지 안 맞는지 제가 확인을 해보고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으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조희연 교수가 제기했다는,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내외적 감시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 교수의 그런 발언에서 그 어떤 불길함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 교수가 위선적(僞善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이 따로 노는 경향이 있는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조 교수가 참여연대의 ‘브레인’ 중의 한 사람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저의 씁쓸함은 우울함으로까지 바뀌더군요.

왜 그렇게 ‘체계’니 뭐니 하는 거창한 걸 좋아할까요? 박 변호사님, 제가 여태까지 참여연대와 관련해 주장했던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누구건, 잘 났건 못 났건, 운동의 현장에 나서본 사람이건 아니건, 어떤 시민운동단체에 대해 비판이나 제안을 하는 사람의 주장을 무시하지 말고 공론화하자는 게 제 주장이 아니었던가요?

그러나 박 변호사님은 워낙 바쁘셔서 참여연대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일일이 답을 주실 시간이 없습니다. 조희연 교수도 워낙 바빠서 ‘감시체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문을 쓸 시간은 있어도 그렇게 할 시간은 없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왜 그 일을 꼭 박 변호사님이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참여연대 분들은 상층부의 허락이 없이는 외부의 문제 제기에 대해 그 누구도 답을 해선 안된다는 내부 규칙이라도 갖고 있나요?

저는 ‘감시 체계’니 뭐니 하는 새로운 말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에 대한 공개적인 문제 제기는 물론 참여연대와 관련해 세상에 떠도는 모든 말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면서까지 그걸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마인드’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요? 제가 여태까지 주장했던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제 주장을 무시했던 조희연 교수가 마치 새로운 발견이라도 되는 양 ‘감시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시니, 제가 어찌 그걸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박 변호사님이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하신 걸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박 변호사님! 꼭 『월간조선』까지 상대해야겠습니까? 그렇게까지 ‘홍보’가 필요하다면, 『참여사회』를 좀 키우면 안될까요? 시민운동을 열렬히 지지한다면서도 『월간조선』은 구독해도 『참여사회』는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 무수히 많습니다. 이거 말이 됩니까?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좀 가지시면 안되겠습니까?

『참여사회』만 키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이 또한 방법이 있습니다. 신문에의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방송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안될까요? TV의 주시청시간대에 ‘시민운동 관련 프로그램’을 매일 정규 편성케 하면 큰일 나나요?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김대중정권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구요? 아니 단 한번이라도 시도는 해보셨습니까?

만약 KBS나 MBC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저부터 앞장서서 두 방송사의 사장 퇴진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겠습니다. 시민운동의 홍보를 위해 못된 극우신문까지 성역이자 금기로 간주하는 기존의 행태를 바꿔보자는 제 주장이 무어 그리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이 왜 제 주장을 외면하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무언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강준만

박원순 변호사님께

안녕하셨습니까? 이렇게 제 의견을 말씀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위로전화도 못했다고 자책하시지만 항상 변호사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은 저에게 많은 힘과 위로가 됩니다. 선거기간에 진행된 낙선운동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고 싶고, 선거 후일담도 나누고 싶지만 자리를 따로 마련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보내주신 내용에 대한 답변을 통해 저의 의견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총선의 낙선으로 인한 저의 정치적 입지의 타격을 걱정해 주셨고 이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물어오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 먼저 되묻고 싶습니다. 변호사님은 정치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치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국민들이 안도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입으로만 안도감을 주고 희망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도감과 비전의 제시는 세치 혀의 말솜씨만으로는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시대가 안고 있는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 가는 실천과 노력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입법활동, 행정의 감시가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활동에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크고 작은 민원을 통한 제도의 개선, 문제제기와 정책의 제시, 대화와 토론, 그리고 여론의 조성과 개입 등 정치인의 일상적인 활동을 밖에 있지만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와 당에서 주는 역할에 충실하고 스스로 일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과제들이 수준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국민들의 인식 속에 희망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모습이지만 지역갈등의 문제와 말과 실천이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신풍조의 문제는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 과제로 저의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하면 불리하고, 자기의 논리에 충실하면 실패하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올바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계속 역설하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것이라는 역설을 통해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부터 형성된 ‘올바른 주장과 행동은 결국 불이익을 가져온다’는 인식은 결국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은 기회주의적이고 대충대충 사는 삶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주기보다는 이로움을 주는 형국에까지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열주의와 불신풍조에 정면으로 맞서서 성공한 사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어려운 길이리라 생각됩니다. 계속 무모한 일만 생각한다고 탓하시지는 않을지 염려됩니다. 더위가 점점 다가옵니다. 몸 돌볼 여유도 없이 바쁘시겠지만 건강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임을 잊지 마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님께

지난 1월 사장님께서 벤처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신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간단한 이메일을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한번 자리를 마련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런 기회가 생겨 반가운 마음에 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벤처 사업가와는 다르게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공을 이루신 사장님의 모습은 벤처 사업가의 특징인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생각과 정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벤처 기업에 대한 육성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은 새롭게 형성되는 벤처 기업문화에 더불어 함께 가고자 하는 정신을 심고자 하는 노력으로 느껴졌습니다.

여기서는 제가 정치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말씀드리고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문화와 영역이 형성됨으로써 각광받고 부각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영역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상반된 영역의 간격이 넓어지게 되면 결국 사회적 통합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의 발달이 기존 오프라인상에 기반하고 있는 직업과 이익추구의 영역을 온라인의 영역으로 흡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조응하지 못하는 사회성원들의 소외의 문제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는 정보화의 물결은 사회적으로 세대간의 격차를 증대시키는 문제로 나타나게 되고, 이로 인해 조로(朝老)현상이 나타날 것을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역작용에 대해 우리 사회는 반드시 준비하고 소외를 극복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입니다만 앞선 영역에서 많은 경험을 하신 사장님의 의견을 들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벤처 사업가로서 정치권에 바라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첨단의 영역인 정보통신업이나 벤처 사업가들이 정치권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도 첨단의 생각과 정신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벤처 기업의 활성화에 기반할 수 있는 정치권의 노력 등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지면이 부족하여 드리지 못한 이야기는 자리를 마련해서 나누었으면 합니다. 건승하십시오.

노무현
2000/07/01 00:00 200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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