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말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의 부인 셰리 부스 여사가 넷째 아이를 출산했다. 이미 삼남매의 어머니인 그가 마흔 다섯인 나이로 넷째를 가졌다는 소식은 사실 임신 초기부터 뉴스거리가 되었다. 게다가 재임 기간 동안 아이를 출산한 수상은 영국 역사상 15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국민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족했다. 그런데 출산 소식 중 공식 사진에 관한 얘기는 더욱 재미있었다. 오피셜 포토는 주로 유명인사들이 일반 대중에게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해 찍는 것이다. 다이애너와 찰스가 갓 태어난 왕자를 안고 찍은 사진이나 대처수상이 손자를 안고 찍은 것이 그것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레오 블레어라고 명명된 수상의 막내 아들은 공식 사진 속에서 엄마 품에 안기고 아빠의 애정어린 눈길의 호위를 받으며 포근히 잠들어 있었다. 사진은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의 딸 메리 매카트니가 찍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메리는 유방암 퇴치를 위한 자선활동 중 셰리 부스를 알게 되었는데 그 인연으로 이번에 공식 사진사로 지정된 것이다. 메리가 찍은 열댓장 사진 중에서 공식판 1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진은 모두 미디어들이 사용료를 내고 써야 했다. 그 돈은 모두 셰리 부스가 선정한 두 시민단체와 자선단체에 보내졌다. 수상의 아들은 날 때부터 시민운동 기금조성에 참여한 것이다. 유명인의 사진을 특종으로 싣지 못해 안달인 언론에게 약간의 사용료를 받아 현명하게 사용한 셰리 부스를 보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그는 수상부인이 아니라도 충분히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다. 사실, 수상 부인이 아니었으면 더욱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런던정경대학(LSE) 법학부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한 그는 똑똑하다고 소문이 나서 흔히 같은 법률가 출신인 남편보다 훨씬 낫다는 소리를 듣는다. 남편보다 의회 진출도 사실상 먼저 시도했었다. 노동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노동당이 보수당의 위세에 눌려 있었던 시대라 결국 실패했다. 일찌감치 정치에서는 물러나 법률가로 활동에 매진한 그는 2년 전, 영국의 가장 우수한 법조인 상을 받기도 했다. 셰리 부스는 리버풀 지방의 노동계급 출신이다. 맏딸이던 셰리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란 위인은 여섯 아이와 아내를 두고 집을 나가 버렸다. 왕년의 유명한 TV배우인 아버지는 그 이후로 집에 돌아오진 않았지만 맏딸과의 관계는 좋다고 한다.

셰리 부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녀가 얼마나 유능하고 뛰어난 여성인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나라의 수상 부인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 그가 보여주는 태도가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호함이 쉬 가시지 않는 고관대작 부인들의 옷 로비 사건을 보면서 우리 고위층 사모님들의 행동과 그녀의 행동이 참으로 대조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정치인의 부인 중에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남편의 직책에 따라 자신의 입지를 매기려 하거나 저절로 그렇게 자리 매김을 당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옷 로비 같은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모자라는 요금 때문에 벌금을 문다거나, 출산한 지 이틀만에 법정에 나간다거나, 남편이 수상이 되면 당연히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을 무시하고 샌드위치와 물병을 들고 법원으로 출근하는 수상 부인, 그런 모습은 오히려 믿음직해 보였다. 셰리 부스가 다른 여성으로 하여금 수퍼우먼 콤플렉스를 갖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 반대다.

그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열성적인 한 여성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남편 덕에 얻은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개척해서 얻은 자리를 지키는 강단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현대적으로 보인다.
권은정
2000/07/01 00:00 200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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