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내부점검이 필요하다
2000/2000년 07월 :
2000/07/01 00:00
총선연대의 성과로 한껏 주목을 받았던 시민운동이 최근 장원 사태로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총선연대 대변인으로서 큰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장원의 성추행 사건은 시민운동 및 시민운동가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남겼고, 이 사건은 한두 사람의 지도자들의 잘못이 운동판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 사건은 시민운동의 성, 접대문화 등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도덕적 문제에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 주었지만, 동시에 평소 한국 시민운동이 갖고 있었던 여러 가지 내부 문제, 특히 한두 명의 전문가 스타 중심의 운영 문제, 조직운영의 관료화 문제, 언론에 대한 과도한 의존 문제 등을 한꺼번에 들춰내 주었다. 그래서 시민운동 일각에서는 한번은 터졌어야 할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그 동안 시민운동은 언론의 과도한 주목을 받아왔으며, 성과와 활동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져 선전된 감도 없지 않다. 각 언론사에서 다투어 NGO 관련 특집을 잡으면서 시민운동단체 내부의 조그마한 일들도 크게 부풀려져 보도되기도 했고,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시민운동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가 즉각 여론의 주목을 받는 즐거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론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러한 NGO 부풀리기는 지역차원에서 땀흘려 일하는 진정한 시민운동가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자본에게는 껄끄러운 민중적 이슈에 대한 배제를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시민운동가들은 종종 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주목받는 시민운동가의 결정적인 과오가 발생하자, 시민단체를 키워주던 언론이 하이에나로 돌변하는 것을 보았다. 이번의 장원 사태와 그것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이러한 자만에 대한 경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부 프로젝트의 대행업자는 아닌가?
사실 각종 언론이나 서적에서는 “21세기는 NGO의 시대다” 뭐다 하면서 떠들었고, 이 NGO 바람의 분위기 하에서 각 시민단체는 보다 엄격한 자기점검을 간과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좌파 사회학자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는 NGO가 급성장한 것은 신자유주의 엘리트들과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급진적 운동에 대한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NGO의 본질이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탈정치화시키고, 탈동원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오늘날 NGO 직원들의 역할은 자금을 확보해낼 수 있는 제안서를 잘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어떤 점에서 정부 프로젝트의 대행업자로 전락한 잘 나가는 NGO를 주로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의 비판은 한국의 NGO들에게도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난 번 총선연대 활동에서 이미 제기된 것이지만, 시민운동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시민운동은 낙선·낙천 운동의 성과에 안주하기 이전에 그 운동이 과연 한국의 정치판을 갈아치우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가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즉 시민운동이 중립성, 공정성이라는 신화에 얽매여, 민중의 정치의식화와 정치참여를 억제하려는 지배집단의 의도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지난 총선연대의 활동은 전반적으로 보아 낡은 정치를 교체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측면을 많이 갖고 있지만, 선거판을 후보의 도덕성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문제들과 과제들을 주변화시킬 위험성이 있었다는 점 또한 지적될 필요가 있다. 민중진영과의 연대를 회피하고, 핵심권력의 비위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 길들여진 시민운동이 어떠한 한계와 위험에 봉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시민운동은 더 많은 내부 점검과 반성의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일부 큰 시민단체에 국한된 문제이기는 하나, 관료화의 위험도 이제 서구 NGO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관료화는 운동가들의 대중과의 접촉의 부재, 그리고 약간의 물적인 기반의 충족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90년대까지 거리의 정치가 저항세력의 투쟁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던 시절에는 관료화는 교과서에서만 나온 이야기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몇몇 큰 시민단체는 이제 성명서 발표, 법률적인 소송, 언론에 보도자료 배포, 세미나와 공청회를 주로 하는 운동단체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활동가들은 예전이나 다름없이 열악한 조건에서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지만, 이제 그들은 조직가도 투사도 아닌 존재가 되기 시작하였다. 즉 유럽의 노동운동가들이 그러하였듯이 그들의 모습은 운동가라기보다는 점차 사무원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앞의 페트라스가 지적한 것처럼 프로젝트 기안이 중요한 업무 영역이 되면서, 어떻게 기안을 잘 해야 정부나 각종 재단에서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각종 민원사항이나 투쟁해야 할 과제를 뒤로 미루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분노보다는 차가운 계산이 이들 활동가들의 머리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운동이 사무적인 일로 변하지 않도록 시민운동의 내부 조직정비가 시급하게 되었다.
NGO도 끊임없이 상호 비판해야
한편 한국 시민운동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중앙정치 비판형 시민운동의 모습도 획기적으로 극복될 필요가 있다. 제도권 정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정치적 시민운동, 혹은 종합적 시민운동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정치 비판형 시민운동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풀뿌리 시민운동, 대중 참여적 시민운동의 도래를 점점 멀어지게 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전자의 운동방식은 아무래도 전문가의 정책적 의견에 의존하기 쉽게 일반 시민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운동 방법론과 프로그램의 개발을 뒷전으로 밀어둘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방식의 운동이 타성화 되면, 일반 시민들과 운동단체 간의 거리감은 점점 멀어질 위험성이 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운동단체가 관료조직화 될 위험성도 있다. 이들 종합적 시민운동이 일상적 삶의 영역에 곧바로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면, 실제 지역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풀뿌리 운동단체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 그들이 풀뿌리 지역운동단체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점들을 공급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운동단체 내에서 잘 나가고 혜택받는 운동과 그렇지 않은 운동이 양극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및 기업으로부터의 지원문제도 분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와 같이 열악한 조건 하에 있는 시민단체가 공공의 입장을 대변해서 일을 해 나가는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일정한 지원을 받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볼 수만은 없으며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난 총선 당시 총선연대 활동을 반대하는 정치가들이 ‘정부지원’ 운운하면서 시민단체를 비판한 예가 있었듯이 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을 때는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사업을 통해 재정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과 병행하여 재정운영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내부의 감시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난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현재와 같은 정부의 직접 지원, 프로젝트 지원방식보다는 제3의 공익재단 등을 설립하여 그 창구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나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서구 NGO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부분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한국사회가 강제하는 독특한 조건들이 NGO의 운신을 제약하고 있다. NGO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장원 사태와 같은 일은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역학관계가 대항세력에게 극히 불리하게 이루어진 상황에서 대항세력 내의 조그마한 실수도 침소봉대되어 그 조직과 운동의 근본을 뒤흔들 위험이 있다. 따라서 조직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은 극히 조심스러워야 하며, 도덕적인 차원에서도 보통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NGO가 기존의 지배질서와 기득권 구조에 길들여지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상호 비판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실 그 동안 시민운동은 언론의 과도한 주목을 받아왔으며, 성과와 활동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져 선전된 감도 없지 않다. 각 언론사에서 다투어 NGO 관련 특집을 잡으면서 시민운동단체 내부의 조그마한 일들도 크게 부풀려져 보도되기도 했고,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시민운동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가 즉각 여론의 주목을 받는 즐거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론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러한 NGO 부풀리기는 지역차원에서 땀흘려 일하는 진정한 시민운동가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자본에게는 껄끄러운 민중적 이슈에 대한 배제를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시민운동가들은 종종 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주목받는 시민운동가의 결정적인 과오가 발생하자, 시민단체를 키워주던 언론이 하이에나로 돌변하는 것을 보았다. 이번의 장원 사태와 그것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이러한 자만에 대한 경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부 프로젝트의 대행업자는 아닌가?
사실 각종 언론이나 서적에서는 “21세기는 NGO의 시대다” 뭐다 하면서 떠들었고, 이 NGO 바람의 분위기 하에서 각 시민단체는 보다 엄격한 자기점검을 간과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좌파 사회학자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는 NGO가 급성장한 것은 신자유주의 엘리트들과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급진적 운동에 대한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NGO의 본질이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탈정치화시키고, 탈동원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오늘날 NGO 직원들의 역할은 자금을 확보해낼 수 있는 제안서를 잘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어떤 점에서 정부 프로젝트의 대행업자로 전락한 잘 나가는 NGO를 주로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그의 비판은 한국의 NGO들에게도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난 번 총선연대 활동에서 이미 제기된 것이지만, 시민운동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시민운동은 낙선·낙천 운동의 성과에 안주하기 이전에 그 운동이 과연 한국의 정치판을 갈아치우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가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즉 시민운동이 중립성, 공정성이라는 신화에 얽매여, 민중의 정치의식화와 정치참여를 억제하려는 지배집단의 의도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지난 총선연대의 활동은 전반적으로 보아 낡은 정치를 교체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측면을 많이 갖고 있지만, 선거판을 후보의 도덕성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문제들과 과제들을 주변화시킬 위험성이 있었다는 점 또한 지적될 필요가 있다. 민중진영과의 연대를 회피하고, 핵심권력의 비위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 길들여진 시민운동이 어떠한 한계와 위험에 봉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시민운동은 더 많은 내부 점검과 반성의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일부 큰 시민단체에 국한된 문제이기는 하나, 관료화의 위험도 이제 서구 NGO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관료화는 운동가들의 대중과의 접촉의 부재, 그리고 약간의 물적인 기반의 충족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90년대까지 거리의 정치가 저항세력의 투쟁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던 시절에는 관료화는 교과서에서만 나온 이야기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몇몇 큰 시민단체는 이제 성명서 발표, 법률적인 소송, 언론에 보도자료 배포, 세미나와 공청회를 주로 하는 운동단체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활동가들은 예전이나 다름없이 열악한 조건에서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지만, 이제 그들은 조직가도 투사도 아닌 존재가 되기 시작하였다. 즉 유럽의 노동운동가들이 그러하였듯이 그들의 모습은 운동가라기보다는 점차 사무원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앞의 페트라스가 지적한 것처럼 프로젝트 기안이 중요한 업무 영역이 되면서, 어떻게 기안을 잘 해야 정부나 각종 재단에서 돈을 받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각종 민원사항이나 투쟁해야 할 과제를 뒤로 미루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분노보다는 차가운 계산이 이들 활동가들의 머리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운동이 사무적인 일로 변하지 않도록 시민운동의 내부 조직정비가 시급하게 되었다.
NGO도 끊임없이 상호 비판해야
한편 한국 시민운동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중앙정치 비판형 시민운동의 모습도 획기적으로 극복될 필요가 있다. 제도권 정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정치적 시민운동, 혹은 종합적 시민운동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정치 비판형 시민운동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풀뿌리 시민운동, 대중 참여적 시민운동의 도래를 점점 멀어지게 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전자의 운동방식은 아무래도 전문가의 정책적 의견에 의존하기 쉽게 일반 시민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운동 방법론과 프로그램의 개발을 뒷전으로 밀어둘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방식의 운동이 타성화 되면, 일반 시민들과 운동단체 간의 거리감은 점점 멀어질 위험성이 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운동단체가 관료조직화 될 위험성도 있다. 이들 종합적 시민운동이 일상적 삶의 영역에 곧바로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면, 실제 지역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풀뿌리 운동단체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 그들이 풀뿌리 지역운동단체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점들을 공급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운동단체 내에서 잘 나가고 혜택받는 운동과 그렇지 않은 운동이 양극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및 기업으로부터의 지원문제도 분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와 같이 열악한 조건 하에 있는 시민단체가 공공의 입장을 대변해서 일을 해 나가는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일정한 지원을 받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볼 수만은 없으며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난 총선 당시 총선연대 활동을 반대하는 정치가들이 ‘정부지원’ 운운하면서 시민단체를 비판한 예가 있었듯이 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을 때는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사업을 통해 재정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과 병행하여 재정운영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내부의 감시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난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현재와 같은 정부의 직접 지원, 프로젝트 지원방식보다는 제3의 공익재단 등을 설립하여 그 창구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함께 찾아나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서구 NGO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부분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한국사회가 강제하는 독특한 조건들이 NGO의 운신을 제약하고 있다. NGO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장원 사태와 같은 일은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역학관계가 대항세력에게 극히 불리하게 이루어진 상황에서 대항세력 내의 조그마한 실수도 침소봉대되어 그 조직과 운동의 근본을 뒤흔들 위험이 있다. 따라서 조직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은 극히 조심스러워야 하며, 도덕적인 차원에서도 보통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NGO가 기존의 지배질서와 기득권 구조에 길들여지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상호 비판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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