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걷고 내실 다져야
2000/2000년 07월 :
2000/07/01 00:00
장원 사건과 시민사회의 고민
지난 5월 28일 주말 오전에 한토막 소식이 장안의 화제를 뿌렸다.
장원 전 녹색연합 사무총장이 미성년 여대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소식이다. 이 소식은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타고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미성년 여대생과 성추행, 게다가 그 장본인이 바로 몇 달전까지 심판의 칼날을 쥐고 있던 총선연대의 간판스타라는 점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며칠 뒤 시민단체들 입장에서 보자면 더욱 심각한 또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구미총선연대 사무국장이 낙선운동을 빌미로 대상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이 사건은 시민운동권으로서는 카운터 펀치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었지만 언론의 반응은 의외로 소극적이었다. 장원 총장 사건이 여론의 도마에 오를 만큼 선정적인 요소를 골고루 갖춘 데 비해 구미총선연대 활동의 경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장원 전 총장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전 총선연대 대표단은 사건이 터진 당일 급거 모임을 갖고 “이번 사태가 도덕성을 바탕으로 일하는 시민운동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사죄했다.
사건이 터지자 즉각 장 전 총장을 제명처리한 녹색연합은 가장 많은 마음고생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 네티즌들의 엄청난 방문을 맞이한 녹색연합 홈페이지는 음란사이트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일반에게는 ‘총선연대=참여연대’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참여연대의 경우도 사건 직후부터 시민들의 항의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환경연합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그간 총선연대 활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언론들은 ‘시민운동의 도덕성’을 운운하며 장원 전총장 사건을 시민운동 전반의 문제로 매도하기에 앞장섰다. “혼자만 깨끗한 척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식 반응도 적지 않았다.
시민운동권 내부에서도 일차적인 반응은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점검장치 없이 내달려온 시민운동, 특히 총선연대를 중심으로 했던 연대활동의 틀 안에서는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많은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사람들은 시민운동의 대의 하나만을 중시하며 묵묵히 활동해온 활동가들이다. 항의전화를 받으며 “무조건 죄송하다”고 사과하던 한 여성 활동가는 앞뒤 안가리고 육두문자를 퍼붓는 시민의 목소리에 “앞으로 활동을 어떻게 해나갈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장원 전 총장이 소속돼 있던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전화통화건 만나서건 아예 모든 사람에게 먼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건으로부터 한달이 채 안된 지금, 시민운동단체들은 분위기를 다잡아 일상활동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녹색연합의 경우 요즘도 하루 10여 명의 회원수 증가세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항의전화를 걸어온 시민을 잘 설득,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예상밖의 수입’도 심심치 않게 생겼다.
녹색연합은 사건 이후 회의에 회의를 잇는 장고 끝에 몇가지 결론들을 만들어낸 듯하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좀 뜻밖인 대목들이 있다. 우선 현재 녹색연합이 처한 난국을 이끌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이 있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총선연대 활동을 정리하면서 사무총장직을 없애고 김제남 사무처장과 임삼진 사무처장의 양대 사무처장제로 바꾸었던 것에서 다시 사무총장직을 부활시키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평간사들 내부에서는 평간사 협의회를 만들자는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총선연대라는 연대활동을 통해 공동운명체가 되어버린 시민운동권 전반의 대응방침도 서서히 나오고 있다. 우선 전반에 활동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운동권 내부에 견제감시장치를 갖춰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유할 수 있는 윤리강령을 만들자는 논의도 나왔다.
이러한 논의는 지난 6월 7일 성공회대 주최로 열린 ‘NGO의 개혁운동과 개혁운동과 책임윤리’란 주제의 심포지움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개인의 잘못이 시민단체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논의에 더해 개인에게서도 사적 윤리와 공적 윤리의 영역은 엄밀히 구분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이날 핵무기 반대 캠페인을 벌였던 버트란트 러셀과 영국최고의 인권변호사 마이클 맨스필드를 예로 들며 “이들이 사생활문란이라는 개인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이들이 내세웠던 대의에 대한 평가가 손상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이중적 성윤리가 가져온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민사회단체의 현실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특히 시민단체 내부에서 성희롱 등에 대한 논의가 공론의 장으로 나온 것도 대표적인 일.
여성단체연합 남인순 사무총장은 “차제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부지불식간에 빠져 있는 이중적 성윤리의 실상을 드러내고 공론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런 논의는 6월 7일 심포지움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재미있는 것은 이날 심포지움에서도 여성 토론자와 남성 참가자들 사이에 일정한 시각의 차이가 드러났다는 점. 여연 남인순 사무총장과 가톨릭대 이영자 교수가 사건을 인권침해 차원의 성추행사건으로 규정하고 차제에 시민운동권에서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남성 참가자들은 공과 사의 영역의 엄격한 구분을 주장하고 자성의 문제, 장치마련의 문제로 보았던 것.
최근 잇달아 터진 일련의 사건들은 총선연대 이후 앞만 보고 치달려왔던 시민운동단체 내부에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소화할 대목이 적지 않다.
한편으로 장원 총장 사건이 미친 파장은 다소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총선연대 이후 전국적인 시민단체 연대체로서 논의가 진행 중이던 ‘개혁연대’ 논의에 찬물을 끼얹은 것. 당초 6월 초순경 개혁연대를 구성하기 위한 논의체를 만들려던 일각의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무산보다는 무기한 보류”라 는 게 시민단체 내부의 얘기지만 다시 개혁연대 논의를 끄집어내려면 한동안 에너지 비축기간을 거쳐야 할 듯하다. 이는 총선연대 활동기간 내내 중심적인 활동가들 중 상당수가 품고 있던 연대활동에 대한 회의와도 관련이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연대활동보다는 시민운동 내부의 내실이 중요하다는 논의가 힘을 얻은 상황이다.
시민운동을 둘러싼 이번 진통이 한국 시민운동 위에 쌓인 거품을 걷어내고 한 단계 발전을 기할 자양분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같은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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