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화 말하기 전에

통일이 민족의 소원이라고들 한다. 통일이 싫다고 나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남과 북 어디에도 없다. 남에서 살건 북에서 살건, 잘살건 못살건, 권력을 잡고 있던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건, 있건 없건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한단다. 여론조사를 해도 항상 70% 이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주변 4강(개인적으로 이 말은 정말로 싫은 표현이다. 주변이 강이면 남북은 약인가?)은 물론이고 전세계 어느 나라의 그 누구도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그 누구도 통일을 반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은커녕 최소한 남북간에 인상쓰는 일이라도 그만 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희한한 일이다.

정상회담이 개최된다고 한다. 분단 반세기 만이다.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북은 남을 미제 식민지로 그리고 남의 지도자를 괴수로, 남은 북한 전체주의 독재국가로 그리고 지도자는 테러리스트 두목으로 50년 동안 욕해왔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로가 욕을 그만하고 인상도 그만 쓰는 것일까? 물론 “나는 그렇게 욕하고 인상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욕하는 분위기는 소수의 분단 기득권(?)자와 변화를 외면하는 일부 극보수주의자들의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정상회담이 대단한 뉴스거리임이 분명하고, 그러할 가치는 충분하다. 그래서 늘 그러하듯이 남쪽 사회는 ‘유행성’으로 북한, 남북관계, 통일문제가 관심의 초점이다. 덕분에 갑자기 나같이 최소한 대외적으로나마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도 바빠진다. 원고 청탁도 많아지고 늘 콧대가 높은 언론인도 전화해서 한 수 부탁한다. 사실 나는 북한문화를 주로 팔고 사는 사람인데, 그동안은 남북관계는 늘 통일정책이니 체제통합이니 대남전략이니 국제질서니 하는 정치학 혹은 국제정치학 하는 사람들이 말아먹고 있어서 북한문제에서도 늘상 변두리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이른바 유화적인 분위기가 남쪽사회에서 생겨나더니 한때 주사파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던 문제지역(?)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영화제가 개최되고, 상업방송과 공영방송에서 여전히 보안법상 이적 표현물인 북한영화를 상영하는 등 북한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남북 최고 지도자가 만난다고 하니 사회 문화교류가 갑자기 중심부로 진출하였다. 문화를 통한 상호이해 확대가 화해협력과 통일로 가는 오작교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남북문화의 만남이 반드시 ‘상호이해 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북쪽 영화배우 한 명 알지 못하고, 소설 한 편 읽어본 적이 없고, 무엇보다 자신이 북쪽문화에 완벽히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북쪽문화와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우는 <남북의 창>이나 <통일전망대>와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북을 이해하기보다는 북을 깔보고, 북쪽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풍조가 확산된 것에서 이미 경험한 바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북한문화를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다. 황당한 질문에 뻔한 답 같지만 특별한 방법은 없다. 최소한 북한문화의 기본을 공부하는 수밖에.

북남문화의 기본

북쪽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부추기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북한을 봉건제 국가니, 신정국가니, 가부장제 국가니, 병영국가니 왕조니라고 표현하는 말들이다. 현상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표현들이 전혀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북한은 덜 떨어진, 혹은 괴이한 그렇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국가 혹은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산업화된 체제이고 분명히 근대국가이다. 그리고 비록 냉혹한 국제현실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증명되어 버렸지만 발전전략 혹은 산업화 전략으로 사회주의를 채택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북쪽체제나 국가 그리고 북쪽 사람들을 이해하는 핵심 단어는 ‘사회주의’이다. 이것은 남쪽체제와 사람들 그리고 삶을 지배하는 핵심이 ‘자본주의’인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북한 문화의 기본은 사회주의이고 남한문화의 기본은 자본주의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문화는 당연히 체제이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사회주의 체제가 생산양식의 사적소유를 반대하기 때문에 당연히 시장이나 상품도 부정된다. 재산축적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돈이나 땅과 같은 물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일하게끔 꼬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정신이나 명분 혹은 명예와 같이 윤리적 차원에서 사회구성원들을 부추긴다. 따라서 북쪽문화에서는 상품성이 배제되고, 남쪽문화에서는 상품성이 핵심이 된다. 또한 개인의 발전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남쪽은 문화의 출발이 개인이고, 공동체를 우선하는 북쪽에서는 집단이 문화의 시작이 된다. 이와 더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차이 가운데 하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윤리적으로 사람들을 꼬여내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예술이라는 점이다. 즉, 북쪽의 문화 특히 문학예술은 정치적 선전선동을 첫 번째 목표로 한다. 이를테면 남쪽에서 ‘북의 문학예술이 지나치게 선전 선동적인 것이 문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남쪽 기준에서 맞는 말일 수 있으나, 북쪽 기준에서 보면 틀린 말이 된다.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선전 선동적이므로 훌륭한 작품인 것이다.

북쪽문화가 정치적 역할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뒤집어 말한다면 문화가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제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지배집단의 성격에 따라 문화의 성격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쪽은 문화는 김일성 유일 지배체제가 굳건해짐에 따라 김일성 집안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항일유격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령형상 문학과 항일혁명 문학이 대두되었다. 반면에 남쪽문화는 상품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적 조건이나 맥락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에 정보화 사회의 진전에 따라 테크노 음악이 관심을 끌고,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문화의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것이 한 예가 된다. 또한 북쪽의 문화는 정치구조 특히 정치적 지배집단의 중요한 관심 대상인 동시에 직접 관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남쪽 문화는 지배집단의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며, 문화에 대한 통제도 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사회의 자율적 규제로 이루어진다. 원칙적으로.

문화가 사회적 산물이라면 사회가 변화하는 한 문화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흔히 북쪽은 하나도 안 변한다고 우기는 사람이 많지만,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변화하지 않는 사회체제는 하나도 없다. 사회변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는 산업화이다. 비록 이념적 차이로 인하여 발전전략은 차이가 있었으나 북이나 남 모두 산업화 혹은 근대화를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의 속도와 정도는 차이가 있었으며, 산업화의 구체적인 전략도 차이가 있었다. 북은 주체의 기치 하에 자생적인 산업화를 추구하였으며, 남은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산업화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까지는 북한의 산업화가 보다 효과적이었지만 이후에는 남한의 산업화가 보다 효율적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 과정에서 남쪽에서는 해외문화의 급속한 유입이 심화되고 문화변동 급속히 이루어졌고, 최근 급속한 정보화의 진전은 문화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변화의 폭도 확대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에 북쪽문화는 해외문화에 배타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상대적으로 전통적 민족문화가 여전히 일정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문화변동의 속도와 폭도 작다고 할 수 있다.

남북문화의 다른 꼴과 닮은꼴

분단 이후 남북문화를 성격 지은 것은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라는 정치이념과 각각이 추진한 산업화 혹은 근대화이다. 그리고 북은 정치상황이, 남은 사회발전의 수준이 문화변동 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의 기본적인 성격도 다르지만 사안별로 보아도 남북문화는 적지 않게 다르다.

문화의 자리: 북에서는 기본적으로 문화 그리고 문학예술의 사회적 위상이 높다. 최초의 헌법에서부터 문화관련 조항이 있었으며, 문화와 문학예술을 당이 직접 관할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도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 김정일이 영화광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개인적 취향 때문에 영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모두 영화평을 썼고 이는 사회주의 국가 최고지도자의 기본 업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문화관련 종사자들의 대우나 사회적 지위도 높다. 반면에 남쪽에서 문화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최근 풍납토성 문제에서도 드러났듯이 경제논리가 먼저이고, 다음이 정치논리이다. 문화는 여가이다. 1990년대에 문화부가 공식 발족하였으며, 1987년 헌법에 비로소 문화관련 조항이 삽입되었다. 인기스타를 꿈꾸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중연예인은 ‘딴따라’로서 사회적 지위는 낮다.

문화의 종류: 문화의 다양성 차원에서 남쪽은 북한을 압도한다. 같은 장르 안에서 남한은 종류나 조류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노래를 보면 성악과 대중가요로 나뉘어지며 대중가요 안에서도 뽕짝에서부터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이 공존한다. 반면에 북쪽은 상품경제를 기반으로하는 대중가요는 개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주체사실주의를 미학의 기본으로 삼는 북쪽에서 추상화나 추상조각이 설 자리가 없다. 반면에 정치적 선전선동을 주된 역할로 삼기 때문에 정치적 상징물은 북쪽에 많다. 또한 사회주의적 삶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주의를 실천하고 과시할 수 있는 집단체조(매스게임) 같은 장르는 북이 독보적으로 발전시킨 분야이다. 또한 독특한 형식의 노래극이라고 할 수 있는 가극도 북한의 대표적인 문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집합체조 · 가극 · 연극 등 공연문화 장르가 발전되었고, 출연인물이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도 북쪽문화의 특징이다.

문화 만들기와 즐기기: 문화를 만드는 것이 사회구성원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남북에 차이가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문화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은 남북이 마찬가지이지만 일반 사람들의 창작을 정책차원에서 관심을 더욱 기울이는 것은 북쪽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에 국가가 직접 관여하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북은 상대적으로 일반 사람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의 주안점이 두어진다. 반면에 남에서는 최근 문화복지에 관심이 많아졌으나 기본적으로 문화정책의 초점은 창작지원 등 전문문학 예술인들에게 모아진다. 따라서 보통사람이 문화 전문인으로 될 가능성도 북한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인이 직장의 소조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업 예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예술적 소양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전문인으로 양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의미한다. 남쪽에서는 예술적 소양 더하기 부모의 능력 및 관심이 필요하지만.

민족문화 vs 전통문화: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다’는 북한 헌법의 문화조항의 하나이다. 그리고 김일성은 민족문화에 대한 ‘허무주의’와 ‘복고주의’를 모두 경계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북에서는 민족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현실 사회주의에 접합시키려는 시도를 하여 왔다. 전통악기를 개량하여 재창조한 ‘옥류금’이 대표적인 예가 되며, 관현악에서 서양악기와 개량악기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그러나 과거 봉건적 지배층에 기여한 문화적 요소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배격된다. 따라서 선택적으로 기존 문화를 받아들이고 현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의 민족문화가 남에서는 전통문화이다. 남의 전통문화는 시간적인 의미가 강하다. 즉, 과거 특정시기에 있었던 문화라는 것인데 현재성과는 다소 동떨어진 말이다. 따라서 남의 전통문화는 보존이라는 차원의 접근이다. 현대문화와의 어울림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지만 대신에 원형의 보존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또한 선택에서 커다란 차별이 없다. 그러나 북은 민족문화에 대하여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고, 최근에는 관심의 정도가 더욱 커진 반면, 남의 경우는 1970년대 유신시대 한국적 민주화를 주창하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비로소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외래문화와 고유문화: 북이 자랑하는 것은 자력갱생이고 주체이다. 따라서 고유의 문화창달에 관심이 깊다. 반면에 해외의존적 경제건설과 ‘세계화’를 강조하는 남에서는 해외문화의 도입에 적극적이다. 더욱이 폐쇄적인 정보전달 체제(북)와 개방적인 정보전달 체제(남)의 차이는 문화의 고유성의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이 언어이다. 북은 배타적으로 한글 중심의 고유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하는 반면 남의 언어는 ‘세계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있다.

그래도 같은 것: 사실 문화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문화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문화의 차원이 여러 가지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문화의 여러 차원 가운데 어떤 것은 변화에 민감하고 어떤 것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래서 오그번이라는 사람이 문화요소들의 변화 차이를 가지고 문화지체(cultural lag) 이론을 주장하였다. 남북의 문화도 마찬가지인데 오랜 동안 공유하고 있었던 의식구조 특히 심층의식이나 가족관 등은 이념의 차이나 산업화 과정에서도 더디게 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별로 미래지향적이지는 않지만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구조라고 할 수 있다. 남이나 북이나 남아선호는 여전하며, 양육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여 가사노동의 담당자를 여성으로 삼는 성차별적 분업구조도 비슷하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배타적 지역정서도 북과 남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또한 가무음곡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도 계속되고 있어, 남북사람들이 만나면 술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쉽게 친해지기도 한다.

북남문화 만날 때

의외로 북남사람과 만날 때, 심리적으로 경계심을 갖는 것은 남쪽 사람들이다. 현재는 여러모로 북쪽 사람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쪽 사람들이 경계심을 갖는 것은 그동안 북쪽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군사훈련도 받는 등 무서운 사람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북쪽에서는 남쪽의 문제는 ‘미제국주의’ 문제이고, ‘식민지 노예 상태에서 신음하는’ 보통의 남쪽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북쪽에서 가르친 것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만남의 자세가 그렇다는 것이다. 더욱이 남쪽에서는 제국주의 문화론의 영향으로 자신들의 문화마저도 깔보는 경향이 있다(예를 들면, 재미있게 본 미국영화에 대한 평 → “재미있다”; 재미있게 본 한국영화에 대한 평 → “재미있게 만들었다”). 사실 문제는 북과 남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으나 문화는 통일도 아니고 통합도 아니고 공존이다. 이질성의 극복과 동질성 회복의 논리는 틀린 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진짜 중요한 것은 북과 남의 문화를 순서 짓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면 북한문화를 많이 몰라도 쉽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이우영 서강대 강사
2000/06/01 00:00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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