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 Ohmynews오연호 대표
2000/2000년 06월 :
2000/06/01 00:00
반미기자에서 대안미디어 운동가로
그의 손등에는 상처가 하나 남아 있다. 혹시 예전에 화염병이라도 던지다가 입은 상처가 아닐까…. 쉽게 상상했는데 알고 보니 좀 엉뚱하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것은 그의 몫이었고 그 상처는 그러니까 나무를 하다가 입은 것이란다. 나무꾼과 기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그 나무꾼 경력(?)을 신문을 만드는 데에도 십분 활용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분들은 이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시라.
아시는 분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그는 10여 년 간 몸담았던 『말』지를 그만두고 이른바 벤처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그러니까 그 말 많은 닷컴 회사인데 그렇다고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일도 역시 뉴스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름하여 ohmynews.com.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간된 인터넷 신문인데 그 독특한 발상 덕분에 이미 다른 신문과 방송에서도 한 차례씩 보도를 한 바 있다. 경찰청과 청와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세종로 사무실로 찾아가서 밥도 얻어먹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다. 우선 기본적인 호구 조사부터….
하루 접속건수가 얼마나 돼요?
“생각보다 많아요. 최고기록은 8만 5,000건, 보통은 4만 5,000건 정도 됩니다. 2월 22일 창간할 때만 해도 초창기 하루 접속건수 2,000건 정도로 예상했는데 아주 가파르게 늘어난 셈이지요.”
그 정도면 제가 보기엔 대단한 접속건수인데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리하려면 인력도 꽤 필요하겠군요?
“지금 상근직원이 14명이고 비상근이 4명입니다. 이 사람들은 대개 제가 민언련에서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강의할 때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이지요. 처음부터 뜻이 맞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비록 아직 박봉이라도 열심히 일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러면 ohmynews의 편집방향이랄까 철학이랄까 이런 건 어떤 겁니까?
“무엇보다도 기자의 문턱을 없앤다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개념이 그것이고 이른바 ‘뉴스 게릴라’ 라고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기사의 형식도 파괴했습니다. 편지형식도 좋고 전화대화 형식도 좋고 어떤 때는 내가 나를 인터뷰하는 형식의 기사도 나가지요. 또 매체간의 벽을 허문다는 것도 우리가 추구하는 겁니다. 다른 매체에 이미 종사하는 기자들도 우리에게 기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기자회원이 2,200명 가량 되는데 그중 4분의 1은 다른 매체 기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열린 진보를 내세웁니다. 보수라도 양심적이고 생산적이면 칭찬하고, 진보라도 너무 경직돼 있으면 비판합니다.”
이거 어찌 보면 아주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누군가가 이런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문제는 누가 먼저 실천하느냐가 아닌가. 내가 미네소타 대학에 있을 때 거기 유학생들끼리 하던 말이 생각난다. 학교 앞에 김밥집을 내면 장사 엄청 잘될 거라는…. 하지만 아직 아무도 그런 거 시작할 엄두를 못 낸다. 오연호 기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마 그였더라면 분명히 그 학교 앞에 김밥집을 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쿡 하고 웃었다.
“기존의 신문이나 방송 매체들은 대부분의 기사를 잃어버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적어도 잃어버렸던 기사의 절반을 찾자는 겁니다. 일상에서 나오는 기사들도 놓치지 말자는 것이지요. 이건 『말』지 하고도 다릅니다. 엄숙주의, 권위주의에서 탈피하려고 하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말』과 『한겨레』는 좀 가혹하게 말하면 이른바 386세대를 상대로, 또 그들을 팔고 있잖아요.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는 독자 가운데 70%가 대학생, 20%가 386세대, 나머지 10%는 10대들입니다. 이들은 젊고 아주 진지한 독자들이에요.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지요.”
미안한 얘기지만 머리 속에서는 계속 김밥집 생각이 맴돌고 있는데 그의 신매체론은 마치 화살을 쏘듯이 계속되는지라 일단 말머리를 돌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인터넷 신문은 언제부터 생각을 했었지요? 준비기간이 꽤 필요했을 것 같은데….
“제가 95년 미국 리젠트 대학에 유학 갔을 때 ‘매체 창간론’이란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어요. 그 수업의 과제물 중 하나가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는 계획서를 내는 것이었지요. 그때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개념을 살려서 계획을 세워 보았는데 이것이 나중에 인터넷이 실질적 무기로 자리잡으면서 결합이 된 것이지요. 99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12월에 창간 준비호를 냈으니까 준비 자체에는 긴 시간이 걸린 건 아닙니다.”
나 참…. 어떤 유학생은 수업을 들으면서도 미래의 인터넷 사업을 구상하는 데 어떤 유학생은 김밥집 구상이나 하고 있었다니….
이밥에 고기 먹고 열심히 취재하자
아까 기자 회원이 2,200명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매일 올라오는 기사량이 엄청나겠군요. 물론 모든 회원이 매일 올리는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하루에 70건 내지 140건이 올라옵니다. 이런 기사들을 우리는 생나무 기사라고 부릅니다. 산에서 바로 해온 나무를 생나무라고 하거든요. 물론 그 기사를 다 올리는 건 아닙니다. 우리 편집진이 검토를 해야지요. 명예훼손 여부라든가 사실 여부라든가 등등을 가능한 한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게재되는 기사는 잉걸 기사라고 합니다. 잉걸 나무는 이제 불이 붙어서 활활 타는 나무거든요. 이런 기사 가운데 준머릿기사도 나오고 머릿기사도 나오는 거지요.”
이 얘기였다. 나무꾼 경력이 신문 만드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물론 게재된 기사에는 원고료도 줍니다. 잉걸 뉴스는 1,000원, 준머릿기사는 5,000원, 머릿기사는 10,000원씩 지급하지요. 또 기사가 좋을 경우 독자가 클릭하는 광고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한 번 클릭에 50원이 보너스로 지급됩니다. 지금까지 기록은 3만 5,000원이었지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씩은 ‘뉴스 게릴라’상을 시상합니다. 특종이나 좋은 기사를 스물다섯 가지 정도로 뽑아서 1등을 하면 쌀, 고기 그리고 우리가 주문해서 만든 ohmynews 구두를 줍니다. 이밥에 고기 먹고 열심히 뛰어서 취재하자는 것이지요.”
정말 할말 없게 만든다. 그러더니 나한테도 한 번 신어보라면서 구두 하나를 갖다 주는데 그게 꽤 유명한 상표의 구두여서 선뜻 받지는 못하고 나중에 기사를 올려서 1등 하면 받겠다고 했다. 아무튼 이런 아이디어들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긴 그의 사무실을 들어오면서부터 그를 기자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사장이라고 불러야 하나를 잠시 고민하긴 했는데, 그는 애초부터 사업가적인 자질 역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사용자 오연호’?
직원이 모두 18명인데 노조가 생길지도 모르겠군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가 『말』지 있을 때 노조를 주동해서 만들었잖아요. 그때 『말』지 같은 곳에 무슨 노조냐 하는 말도 있었지만, 아무튼 만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디 나갔다 오는데 저희 직원들이 따로 모여서 뭔가 회의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제가 옛날에 『말』지 직원들과 노조문제로 회의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뜨끔하더라구요. 그런데 우리야 아직 시작단계이고 직원 분위기도 가족적이어서 노조가 그렇게 금방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군요.”
미국에서 영어판도 낼 것
가족적 분위기란 것과 노조란 것을 대비시키는 것부터가 벌써 자본가적 논리인 것 같은데….
“하하…. 아니에요. 벤처기업 노동자들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는 건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도 제가 사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우리만 해도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최소 열두 시간 이상 일하거든요. 다만 저는 아무리 벤처라고 해도 주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토요일 오후에는 당직자만 하나 남고 일요일엔 쉬는 걸로 했지요. 안 그러면 죽겠더라구요. 우리 독자들에게도 ‘주말엔 컴퓨터를 끕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취재현장에서 좀 멀어진다는 느낌도 있지요?
“그 부분이 제일 아쉽지요. 사실 저는 경영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해서 취재·편집에는 전체 일과중에 6분의 1정도밖에 신경을 못 쓰거든요. 나중엔 경영과 편집을 분리해서 저도 야전으로 돌아가고 싶지요.”
그러려면 회사 외형도 커져야 할 테고 독자 수도 더 늘어야 할 테고 무엇보다 수입도 늘어야 할 텐데….
“사실 첫 달을 제외하고는 조금씩 적자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리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요. 우리 주주가 10명에 자본금이 3억 원인데 2년쯤 뒤에는 상장할 계획도 있어요. 지금 계획으로는 연내에 기자 회원 1만 명, 독자 수는 15만 명 목표입니다. 아마, 잘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광고 수입 5,000만 원을 포함해서 월 매출액 1억 정도가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이 외에도 ohmynews가 이 치열한 닷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많다. ‘뉴스장터’를 개설해 돈도 더 벌어야 하고 미국에 지사를 내서 영어판을 발간한다는 계획까지…. 어찌 보면 이 많은 계획들은 의외로 쉽게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신생 닷컴치고 ohmynews만큼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단순한 소개기사 외에도 노무현 씨의 이인제 비판이라든가 국회의원 회관에서 올린 총선연대 홈페이지 게시판 욕설기사 등등 다른 매체들도 이미 ohmynews를 인용해 보도하고 있으니, 이밥에 고기 먹고 구두 밑창이 안 보일 정도로 뛰는 ‘뉴스 게릴라’들이 21세기식 뉴스미디어의 새로운 전형을 완성할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도 이럴 때 딴지 한번 거는 건 인터뷰어의 의무이기도 하다.
닷컴이 대부분 거품이라는데 혹시 망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우린 절대 안 망해요. 망할 수 없는 이유가 세 가지나 있습니다. 첫째, 깃발 들고 가는 사람이 그 행위를 즐거워하면 안 망합니다. 둘째, 이건 오연호의 발상으로 시작했지만 오연호가 없어도 굴러갑니다. 강준만 교수처럼은 안해야 된다는 생각도 합니다. 『인물과 사상』은 강준만 교수가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혼자서 너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아까 취재·편집에 많은 신경을 쓸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셋째, 비용이 굉장히 적게 듭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뉴스생산 문화의 혁명을 하고 있다고 덤비고 있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투자하는 건 돈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겁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ohmynews의 사무실에서 청와대와 경찰청이 훤히 보인다고 했는데 그때 오연호 기자와 한 얘기가 있다. 내가, “완전히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군” 했더니 그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 뜻은 서로 반대였다. 나는 ohmynews가 사정권 안에 있다는 얘기였는데 그는 그들이 ohmynews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뜻이었으니 벤처기업 하는 사람과 김밥집도 못 내는 사람의 차이가 이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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