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세계체제와 반체제운동
이매뉴얼 월러스타인(Immanuel Wallerstein)은 매우 독특한 사회이론가이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것은 개인의 이력과 이론적 시각, 두 가지 의미에서 모두 그러하다. 그는 1968년 ‘68혁명’으로부터 커다란 지적 세례를 받은, 미국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사회학자이자, 동시에 세계체제론이란 독창적이면서도 다소 도발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1974년 『자본주의 세계체제』 1권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월러스타인은 이후 『자본주의 세계체제』 2권과 3권, 『역사적 자본주의』, 『반체제운동』,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자유주의 이후』, 그리고 최근 『유토피스틱스』 등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아왔다. ‘반체제운동’은 1989년 동료인 홉킨스, 아리기와 함께 발표한 책의 제목이자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월러스타인의 정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반체제운동

월러스타인은 이른바 자본주의 세계체제 이론가로 알려지고 있다. 이 세계체제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본주의를 일국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사회체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16세기에 서유럽에서 등장하여 전지구적으로 팽창한, 단일한 경제분업과 복수의 다양한 정치체제로 이루어진 세계체제라는 것이다.

세계체제론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이러한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이제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역사적 사회체제의 하나로 본다는 점이다. 여기서 ‘역사적’이라 함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탄생·확장·종말 생애주기를 갖고 있는, 즉 탄생하고 발전하며 내부모순이 격화되어 구조적 위기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결국 그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체제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서유럽에서 시작하여 전지구적으로 팽창한 공간적 체제이자, 시간적 출발점과 종착점을 갖고 있는 역사적 체제라는 것이 월러스타인의 주장이다. 이러한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보아 크게 네 단계를 걸쳐 변화되어 왔다. 그 첫번째 단계가 유럽 세계경제가 등장한 농업자본주의 시대(1450~1640)라면, 두번째 단계는 유럽 세계경제가 공고화된 중상주의 시대(1640~1815)이다. 이어 세번째 단계는 유럽 세계경제가 전지구화된 산업자본주의 시대(1815~1917)이며, 마지막 단계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공고화되고 있는 1917년 이후의 당대 자본주의이다.

구좌파의 반체제운동과 신좌파의 반체제운동

반체제운동이란 이러한 역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낳은, 억압적 사회체제에 대한 저항을 총칭한다. 역사적으로 19세기에 시작한 노동·사회주의 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반체제운동의 효시였다. 이 두 운동은 가장 중요한 목표를 국가권력의 장악에 두고 혁명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민중을 동원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기실 유사한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세계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이러한 구좌파의 반체제운동은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경제 안에서의 국가주의적 전략이 갖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주의적 전략의 한계란 이 구좌파 반체제운동의 목표가 일국적 차원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결국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1968년 이후 전지구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첫째, 동서간의 군사력 균형이 1968년 이래 크게 변화하지 않았으나 동과 서 모두 남쪽 국가들을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었다. 둘째, 1968년 이후 지배적 지위집단(연장자 세대, 남성, 다수인종 집단)에 대응하여 종속적 지위집단(연소자 세대, 여성, 소수민족 집단)의 힘이 상대적으로 증대되었다. 셋째, 자본의 질적 유동성이 증대함에 따라 핵심부에서는 노동운동이 약화된 반면 주변부에서는 노동운동이 강화되었다. 넷째,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힘이 증대되었는데, 특히 남유럽(포르투갈·그리스·스페인), 동아시아(필리핀·한국), 라틴아메리카(브라질·아르헨티나)에서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저항이 활성화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와 구좌파 반체제운동의 한계와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변동은 새로운 반체제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을 촉발시켰다. 구체적으로, 1960년대 미국의 인권·학생운동, 유럽과 제3세계의 학생·노동운동, 1970년대 이후 환경·평화·여성운동 등을 포괄하는 이른바 신사회운동들이 그 사례들이다. 월러스타인에 따르면 이 새로운 반체제운동의 역사적 기원은 1968년 서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난 68혁명에 있다. 널리 지적되듯이 자율과 연대를 사회운동의 새로운 원리로 적극 부각시킨 68혁명은 기존 사회민주주의와 국가사회주의의 사회구조 및 헤게모니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자,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거대한 예행연습’이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반체제운동은 구래의 반체제운동에 내재된 권력의 집중화와 관료제의 증대를 비판함으로써 부르주아 독재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부터의 적극적인 이탈과 대항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반체제운동의 조건과 한계

이 새로운 반체제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월러스타인은 주장한다. 먼저, 반체제운동은 국가권력의 획득을 통해 사회변혁을 성취하려 했던 과거의 국가주의적 전략을 전면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국가권력은 현존하는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다시 정당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간주되어야 한다. 둘째, 반체제운동 진영은 새로운 민주적 연대 형성을 모색해야 한다. 곧 각 구성집단은 복잡하더라도 민주적 구조를 갖추어야 하며, 한 집단의 권리가 다른 집단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 비통일적 집단연대의 조직화에 주력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과 연대가 성취된다면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창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월러스타인은 전망하고 있다.

월러스타인의 이러한 반체제운동론이 신사회운동론에 기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반체제운동론은 신사회운동의 부상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변화와 연관시켜 파악함으로써 신사회운동에 대한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월러스타인이 반체제제운동의 한계와 전망을 세계체제적 차원에서 탐색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해석과 전망은 신사회운동을 문화적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문화주의적 설명을 보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월러스타인이 제시하는 전세계적 집단행동, 곧 자유·평등·연대를 위한 새로운 반체제운동의 미래는 그가 예견하는 것보다 훨씬 비관적인 듯하다. 무엇보다도 이 운동들의 전략이 아직 구체화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미래에 관한 대안적인 설계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의 세계화가 공고화되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사회적 갈등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국민국가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체제운동들의 연대는 시기상조의 기대일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반체제적 저항이 사회적 해방으로 전화되는 데는 아직도 많은 중간 단계들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월러스타인은 최근 저작 『유토피스틱스』에서 환상으로서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가능성 있는 대안으로서의 유토피스틱스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를 탐색하고 있다.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민주적 대안 패러다임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 그것은 모든 신사회운동론의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2000/06/01 00:00 2000/06/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4548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