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대신 물을 달라
올해 인도의 일부 지방은 극심한 가뭄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목 마른 곳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었을 정도다. “우리는 술이 아니라 물을 원한다!” 물 한동이를 구하려고 먼지 날리는 들판을 가로질러 수십 리를 헤매는 여성들의 고단한 모습을 뉴스로 보는데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몇 년 전 가뭄이 계속되던 인도 동부지방의 여성들이 목이 쉬도록 함께 외치던 구호였다.

그때 문명의 뒤안에 사는 동부 오릿사 주의 부족 여성들은 아이를 안거나 들쳐업고 맨발로 터벅터벅 걸어서 주지방의 수도인 부바네스와르에 모여들었다. “우리는 술이 아니라 물을 원합니다!” ‘먹을 물보다 술을 구하기가 더 쉬운’ 오지의 여성들은 주정부에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항의했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을 술과 바꾸는 무책임한 남편을 둔 부바네스와르 슬럼의 여성들도 부족 여성들의 금주운동에 힘을 더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자무식 여성들의 ‘술 없는 세상 만들기’는 사뭇 ‘원초적’이며 호전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300명의 여성들은 막대기를 들고 시장을 돌면서 눈에 띄는 술병과 술독을 있는 대로 박살냈다. 술집과 술을 파는 가게를 때려부수고 때로 불까지 질렀다. 술주정뱅이 남자들을 기둥에 매달아 공개적인 망신을 주고 그래도 다시 술을 마시면 무거운 벌금을 부과했다. 어떤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힘을 합쳐 술에 취한 남자를 방에 가두고 며칠씩 밥을 주지 않았다. 남자가 눈물로 ‘회개’하고 백기를 든 다음에야 풀어주었다. 폭력이 가미되었지만 그건 간디 방식의 투쟁이었다.

사태를 보고 걱정이 태산이 된 많은 남자들과 술의 생산과 판매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막대한 주세의 안위가 염려되는 당국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여성들을 갖가지로 위협하였다. ‘까불면’ 성폭행을 하겠다는 저질의 협박도 그 하나였다. 그러나 여성들의 의지가 강하고 100여 개의 여성단체가 연합하자 주정부도 결국 고압적인 자세에서 한발 물러나 술보다 물이 귀한 그 오지(풀바니)에 금주령을 내리고 일선에서 활약하는 여성 이장들에게 경찰력을 보장하였다.

풀뿌리 여성들이 벌인 금주운동은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1994년에는 데칸고원에 위치한, 인구 8,000만 명을 가진 안드라 프라데시가 금주법을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이 ‘한표’를 제대로 행사하겠다고 내놓은 으름장과 ‘협상카드’의 결과였다. 그 큰 열매를 맺은 작은 씨앗도 가난한 농촌 여성들이 뿌렸다. 글을 깨치기 위해 농촌의 야학당에 모인 여성들은 글만 깨치지 않고 알코올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해악에 대하여 깨달았다.

막일로 버는 쥐꼬리만한 수입을 술값으로 날려버리는 남편들은 대개 가정을 외면하고 폭력을 일삼았다. 당연히 기아와 질병이 이어지고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까지 술 마시는 걸 배웠다. 그 절망의 끝에 여성들이 자리했다. 공동의 아픔을 깨닫고 작은 힘을 모은 농촌 여성들과 호전적인 여성단체들이 연대한 금주운동은 곧 도시와 주지방 전역으로 퍼져나가 선거를 눈앞에 둔 주정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절반의 지지가 아쉬운 주정부는 연간 4,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주세 수입을 포기하고 금주령을 선포하였다.

이윽고 다른 지방도 ‘태풍’의 영향권 안에 들었다. 1996년 7월에는 수도 델리의 인근에 위치한 하리야나 주가 전면적인 금주령을 발표하였다. 일찍이 1991년, 한 여성운동가가 147일 동안 혼자서 농성을 벌여 정부로 하여금 어떤 소도시의 술가게를 문 닫게 한 이력을 가진 지방이었다. 여성 유권자의 거센 압력에 굴복한 하리야나 주정부도 안드라 프라데시에 못지않게 엄청나게 많은 재정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남부의 여러 주지방도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금주령을 시행하였다.

이들 지방에서는 술 한병만 가지고 있어도 범법자, 술 한잔만 마셔도 경찰에 붙잡혔다. 각 검문소에는 서슬이 퍼런 경찰이 여행객의 몸과 짐을 샅샅이 뒤졌다. 인권을 말하며 대들다가는 그냥 두들겨 맞았다. 주지방에 따라 술 파는 곳과 시간을 정해놓거나 일정한 장소에서만 술을 마시게 하는 등 규정이 달랐지만 금주는 이미 큰 흐름이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1920년대 독립운동의 프로그램으로 금주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영국 식민정부에게 막대한 주세를 안겨주는 음주를 버려야 할 사회적 악습으로 여겼다.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들이 어렵사리 번 돈을 술값으로 탕진하는 것도 몹시 안타까워했다. 종교적으로 술을 멀리 하는 힌두 상층 카스트와 무슬림은 간디의 금주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비협력운동이 전개되는 동안에 수많은 술병과 술집이 깨지거나 부서졌다. 술이 이랑을 이루며 도로 위를 흘렀다.

1947년, 영국을 보내고 독립한 인도는 간디의 뜻을 놓치지 않고 전국에 금주령을 실시하였다. 그래서 1960년대까지는 금주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일부 지방정부는 주세의 수입에 눈이 어두워 알코올이 열대지방 사람들에게 주는 해악을 무시하고 금주령에 대한 단속의 손길을 늦추었다. 1980년대에는 금주운동의 지지기반이 거의 사라져서 간디가 평생을 두고 벌인 운동이 실패로 끝나는 듯이 보였다. 풀뿌리 여성들이 앞장선 금주운동이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금주운동이 모두 ‘해피 엔드’는 아니었다. 막대한 주세의 수입과 간디의 이름으로 내려온 금주라는 윤리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던 안드라 프라데시와 하리야나 주정부는 재정적자로 갈짓자 걸음을 걷다가 결국 ‘술 권하는 사회’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릿발과 같은 금주령의 뒤안에서는 밀주와 밀수라는 불법이 성행하게 마련, 인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1930년대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금주령은 조직적인 폭력과 연결되었다. 또 조잡하게 제조한 값싼 술을 마시고 수많은 사람이 건강과 목숨을 잃는 부정적인 결과도 이어졌다.

작년에 자료 수집차 안드라 프라데시 지방을 돌아보았다. 술병을 가지런히 진열한 술가게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술을 사려고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선 남자들은 모두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주류회사와 그와 유착한 정치인들과 경찰, 그리고 돈이 필요한 주정부도 그 남자들처럼 만족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러나 금주운동을 시작하고 거기에 동참했던 수많은 농촌 여성들의 웃음은 어디에 있는가.

인도에는 아직 금주를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지만 내려진 금주령을 해제하자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음주 ‘자유론’자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몸 수색이 야기하는 인권문제, 금주령을 시행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 밀주와 불법 거래로 인한 마피아 문화와 범죄의 증가, 건강을 해치는 싸구려 술의 유통, 지방정부의 만성적인 재정적자 등을 금주령 폐지의 근거로 내세운다. 차라리 주세를 받아서 어려운 여성을 돕고 가르치자는 의견도 나왔다.

아무래도 법은 사랑처럼 지키기 어려운 모양이다.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안드라 프라데시와 하리야나의 금주운동의 실패는 금주령을 시행하기는 쉽지만 개인의 술 마시는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교훈을 일러준다. 변화는 단순히 법이나 정책을 선포한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깨우치는 일이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이옥순 숭실대 사학과 강사
2000/06/01 00:00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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