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민운동 두번째는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이다. 이 단체는 주로 일본 전역에 있는 시민단체에 정보공개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센터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NPO대학에서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할 계획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지난 1999년 5월 7일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는 오랜 진통 끝에 정보공개법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오랫동안 수많은 시민단체와 언론이 요구해 온 정보공개법 제정이 드디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정보공개법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이하 ‘시민운동’) 관계자들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었다. 20여 년에 걸친 이들의 활동이 일본 정보공개법 제정의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법 제정을 위한 ‘시민운동’의 역사

‘정보공개법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은 1980년 3월 29일 자유인권협회, 주부연합회, 일본소비자연맹 등이 주도해 결성한 시민운동 단체이다. 결성 당시에 ‘시민운동’이 표방한 것은 ‘알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정보공개법의 제정과 정보공개의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운동’이었다. ‘시민운동’이 결성된 배경에는 록히드 사건 등의 정치부패, 세금낭비, 각종 유해식품이나 약품으로 인한 피해, 공해문제 등이 정부와 관료의 정보독점에 의해 은폐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즉, 정보 비공개의 벽을 깸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의 손에 정보를 돌려주고, 이를 통해 밀실행정으로 인한 폐해를 없애보자는 것이 ‘시민운동’의 결성 배경이었던 것이다.

‘시민운동’은 결성후인 1981년 1월에 정보공개와 관련된 시민운동의 기본이념이 되는 ‘정보공개 권리선언’과 ‘정보공개 8원칙’을 발표했다. ‘정보공개 권리선언’은 시민에게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선언하였고, ‘정보공개 8원칙’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정보가 공개대상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런 가운데 1982년 야마가타현 카나야마정에서 최초의 정보공개조례가 만들어지고, 카나가와현·시이타마현·도쿄도 등으로 조례제정이 확대되면서 정보공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시민운동’은 한편으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정보공개법 제정운동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자치 차원에서의 조례제정운동과 조례를 활용한 정보공개운동을 벌여나갔다. ‘시민운동’은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에 강사를 파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전국적인 정보교류 사업을 벌임으로써 지역에서의 정보공개운동이 활성화되게 하는 데도 기여했다.

한편 중앙정부 차원의 정보공개법은 장기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가, 1993년 6월 참의원에서 ‘행정정보 공개법안’이 야당 6개파(사회, 공명, 민사, 사민련, 민혁련, 일본신당)에 의해 공동제안 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후 사민당 중심의 연립정권이 수립되면서, ‘행정정보 공개법’의 제정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94년 10월에 설치된 행정개혁위원회 내에 ‘행정정보 공개부회’가 설치되었고, 1996년 11월에는 ‘정보공개법 요강안’이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요강안의 작성작업에는 ‘시민운동’에 소속된 변호사가 참여했고, 그 외에도 ‘시민운동’은 지방자치단체의 정보공개조례 운용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정리하여 전문부회에 자료로 제공했다. 한편 노동단체, 경제단체를 포함한 단체들이 ‘정보공개법 제정추진회의’를 만들었고, PL법(제조물책임법)을 추진했던 소비자 단체들이 ‘정보공개법 추진 네트워크’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정보공개법 제정운동에 들어갔다. 이와 같은 시민단체들의 노력에 의해 1999년 5월 정보공개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고, 2001년 4월부터 실시될 예정으로 있다.

‘시민운동’의 조직과 활동내용

‘시민운동’은 정보공개라는 단일한 의제를 다뤄온 시민단체다. ‘시민운동’은, 연간 5,000엔을 내는 정회원과 연간 3,000엔을 내는 소식지 회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 회원의 숫자는 약 360명 가량이다.

‘시민운동’은 정보공개법 제정운동을 벌여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시민단체나 개인들에 대해 조언하고 정보공개 아이템을 잡아주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최근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즈오케(지방자치단체가 불필요한 땅을 사서 오랫동안 묵혀두는 것)’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도 ‘시민운동’에서 조언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시민운동’의 역할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정보공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센터의 역할인 것이다. 그리고 시범적인 아이템에 대해 일종의 테스트를 거쳐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산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민운동’은 「좋은 조례를 만들기 위한 자료집」 「정보공개 사례 100선」 등의 자료들을 출간하여 각 지역의 시민단체나 개인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시민운동’은 정보공개법이 통과된 이후에는 명칭에서 ‘법’자를 빼내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으로 단체이름을 변경했다. 정보공개법이 이미 제정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법을 활용하여 행정과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운동의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에서 NPO법이 제정됨에 따라 1999년 12월에는 ‘정보공개 클리어링 하우스’라는 특정활동 비영리법인을 설립하여, 출판ㆍ연수사업을 전문적으로 벌이기로 했다.

일본의 정보공개 운동이 주는 시사점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정보공개법이 시행되지 않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의하여 정보공개 운동을 벌이고 있는 수많은 시민단체와 개인들이 존재한다. 세금의 사용을 감시하는 시민 옴부즈맨 이외에도 환경, 교육 등의 여러 분야에서 정보공개 운동을 벌이는 시민그룹들이 있다. 환경분야에서는 골프장 농약사용, 원자력 발전소 사고은폐 등과 관련된 정보공개 사례가 있었고, 위생이나 교육분야에서도 정보공개 청구를 활용한 사례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2001년 4월부터 중앙차원에서의 정보공개법이 시행되기 시작하면, 일본의 정보공개 운동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1998년부터 정보공개법이 시행되고 있다. 대상기관도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학교, 사회복지시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정보공개를 주로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많이 논의해 왔다. 그러나 정보공개 제도는 시민이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기본 전제조건이다. 스스로를 통치해야 할 국민이 통치의 내용에 대해 알 수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보공개는 시민운동의 모든 분야에서, 그리고 모든 지역의 시민운동에서 적극 활용해야 하는 제도이다. 일본은 정보공개법을 만드는 데 20년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한국에서는 비교적 손쉬운 과정을 통해 정보공개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법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정보공개 제도의 활용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행정감시 영역뿐만 아니라 환경, 교육, 소비자 등의 모든 영역에서 정보공개 제도가 활용돼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감시’의 차원이 아니라, 행정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책수립의 기초자료들까지 공개받아 정책에 대한 평가와 대안제시에 이르러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보공개에 대한 관료들의 폐쇄적 태도를 깨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또한 정보공개는 시민참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보공개 청구는 시민들이 직접 활용하기 쉬운 제도이면서도 매우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에서 시도하고 있는 사례 하나를 든다면, 고등학교 입시제도에 관한 정보공개 청구가 있다. 일본에서도 지난 몇년간 입시제도가 점수중시에서 학생의 다양성, 개성을 종합 평가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데, 그 평가기준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카나가와현의 시민단체들이 운영하는 NPO대학이라는 교육프로그램에서는 수강생들이 주체가 되어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한다.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시민들로 하여금 정보공개 청구를 하게 해서 각 고등학교의 평가기준을 정보공개 받은 후에, 그 문제점을 분석해서 대안까지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정보공개를 통해 시민들을 참여의 주체로 만들어내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제도를 바꾸겠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다. “정부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려면, 국민이 정부의 활동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비밀만큼 민주주의를 감소시키는 것은 없다.”(클라크)
하승수 변호사 ·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2000/06/01 00:00 2000/06/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455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