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3월 1일 남해 미남분교 폐교, 1999년 9월 1일 금산 건천분교 폐교, 2000년 3월 1일 강릉 부연분교 폐교…. 이건 참 곤란한 노릇이었습니다. 이 땅의 사라져가는 작은 학교를 찾아나선 지 겨우 1년 남짓, 분교는 그동안에도 자꾸만 폐교되는 중이었습니다. 내가 밟고 가는 이 길이 어쩌면 이 학교, 이 아이들의 마지막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래서 은근히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고운 눈망울로 선생님을 졸망졸망 쫓아다니는 녀석들의 마음을 지켜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가끔, 아이들 몰래 하늘을 올려다 보게 했습니다. 강원도 깊은 골짝에서, 고개를 몇 개나 넘어가야 나오는 단양 끄트머리에서, 겨울이면 사슴이 내려와 몰래 날름날름 배추뿌리를 훔쳐먹기도 하는 봉화땅 어디 메에서, 오래오래 배를 기다려 겨우 가 닿은 남해의 어느 땅에서 그리고 유채꽃 일렁이는 제주도 돌하르방이 지켜주는 학교에서 그렇게 그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내가 기억 속의 그 아이들에게 위로받고 있습니다.

99년 한햇 동안 통폐합되거나 본교폐지·분교장 개편 혹은 분교 자체가 없어진 학교가 무려 927개에 이릅니다. 문을 닫은 대부분의 작은 학교들은 대부분 농어촌 외딴곳에 위치한 전교생 100명 미만의 학교입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그리 신통치 못한 이유로 들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8월 대량의 명예퇴직으로 급감한 교사 수를 해결하지 못해 고심하던 교육부가 급한 대로 학교 수부터 줄이고 보자 했지만,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비난에 갑자기 분교폐지 정책을 조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가족처럼, 형제처럼 그렇게 작은 학교에 가득 피어나 내달리던 작은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작은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

꼭 1년 전 이맘때 찾아갔던 봉화의 남회룡분교는 그때 막 폐교 이야기가 나와서 학부모나 황옥순·김선국 두 분 선생님의 마음이 불안하던 터였습니다. 추운 날씨 덕분에 가을은 건너뛴다던 거기 춘양목의 고장에서 낮에는 밭 갈고 밤이면 아이들 걱정, 학교 걱정에 잠들 줄을 모르던 이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가까운 울진지역 학교도, 남회룡의 본교인 소천초등학교에 딸린 다른 분교들도 곧잘 폐교됐단 소식이 들려오던 때였습니다. 학교가 없어지면 아이들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곳을 떠나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그 아이들을 대처에 보내 혼자 공부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여기 고랭지채소는 그나마 다른 농사보다 소득도 좋은 편인데, 농사만 알고 살던 이들을 도시로 내몰 수는 없는 일입니다.

5학년이던 주섭이의 아버지 이영모 씨는 폐교를 막아보려고 주민들 서명도 받고, 교육청도 찾아다니고 하느라 배추 씨뿌릴 시기를 아슬아슬 겨우 버텨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공부 때문에 외갓집이 있는 영주 시내로 아이를 보냈다가 삐딱해지는 주섭이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다시 집으로 데려온 경험이 있으니 더더욱 그랬겠지요. 서울에서 온 손님이라고 저를 앉혀두고 하소연을 하다가 푸념섞인 목소리로 한숨처럼 쏟아내던, “이럴 줄 알았으면 애나 많이 낳을 걸 그랬지?” 하는 소리가 귓전에 오래 맴돌았댔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주섭이 아버지 편지를 받았습니다.

“영주에서 다시 이곳으로 전학시키면서 우리 마음은 눈물을 감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고향의 분교가 폐교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마음놓고 학교에 보낸 후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지금은 행복하답니다…. 저는 올해가 지나면 초등학교 학부모를 졸업하게 됩니다. 학교를 끝까지 지켜내야지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아이, 미림이가 있습니다. 미림이는 작년까지만 해도 금산의 건천분교에 다니다가 지금은 진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입니다. 학교가 폐교되지 않았다면 10분이면 족히 등교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이제 미림이는 멀리 진산까지 1시간이 넘게 학교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미림이랑 시내, 학생이라곤 달랑 둘뿐이던 건천분교는 작년 9월 문을 닫았습니다. 한국전쟁 때 불에 활활 타버린 학교를 마을 사람들이 죄다 힘을 모아 겨우 다시 살려놓았는데, 그런 세월은 아랑곳없다는 듯 그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일부러 분교를 지원해 들어왔던 김장수 선생님은 만악초등학교, 석막초등학교에 이어 건천분교까지 폐교되는 걸 보았습니다. 체육시간이면 선생님 뒤로 달랑 꼬맹이 둘이만 ‘헛둘 헛둘’ 구령따라 뛰어오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혔다고. 그게 안쓰러워서 더없이 다정하고 인자했던 선생님이었는데요. 학교건물 입구에 오도카니 둥지를 틀었던 딱새랑도 더 이상은 함께 공부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4학년이 된 미림이는 새로운 학교에서 욕도 배웠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난생 처음 학생회장 선거란 것도 해봤습니다. 반장 선거도 해본 적이 없는 미림이가 말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허전한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다 보면 혼자 외롭게 서 있는 니가 보여. 너도 나 보고 싶지, 응…? 동물들이 학생이 되어 주었으면, 그랬으면 학교가 폐교되지 않았을 텐데…. 안녕, 사랑하는 건천학교야, 잘 있어’라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이 아이 예쁘게 잘 자랄 게 분명하지만, 김장수 선생님이랑 시내랑 그렇게 셋이서도 잘 해왔었는데요. 이제 곧 미림이는 딱새랑 함께 놀 줄도 모르는 어른이 되고 말 테지만, 자기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오래도록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미림이를 남겨두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교육부 장관을 마구 욕해 주었더랬습니다.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연변에서도 분교폐지 바람이 불고 있다 합니다. 역시 그곳도 교사 월급과 학교 유지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입니다. 그곳의 아이들은 학교가 폐교되면 우리나라와는 달라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냥 그 마을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지요. 멀리까지 보내 교육시킬 여력은 어느 가정에도 없는 것입니다. 폐교된 학교 건물에서 자연의 가르침을 받고 마을 공동체에서도 그 아이들을 길러낸다 합니다. 아주 오래 전, 학교란 말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왠지 그것도 괜찮겠다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대도시 학교로 그 아이들이 옮겨갔을 때 받을 상처와 아픔에서 눈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분교를 떠난 것은 아이들이 아닙니다. 그곳의 문을 강제로 닫을 순 있어도 그 학교를 전부 빼앗길 수는 없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의 뜻입니다. 폐교된 변산의 마포분교는 마을 공동체에서 새로운 배움터로 거듭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배움터에선 생태적인 삶을 어려서부터 배우게 될 행운의 아이들이 꼬물꼬물 자라고 있지요. 무주에선 푸른꿈고등학교가 익어가고 있고 나주 덕곡분교에선 수련도량 ‘성덕사’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두 훌륭한 공간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폐교된 분교를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만, 그보다는 아무래도 지금의 이 모습대로, 아이들이 적으면 적은 대로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게 하는 것보다는 못한 듯합니다. 국민들이 균등하게 교육받을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때 교육부는 귀기울여야 합니다. 일방적인 농어촌 작은 학교 통폐합 정책은 학부모도, 주민도, 선생님도 전부 동의하는 방향으로 다시 조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바라는 학교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다시 살아나라, 작은 학교야…! 진정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단다….
김은주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기자
2000/06/01 00:00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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