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갸거겨… 늦깎이 학생들의 즐거운 합창
2000/2000년 06월 :
2000/06/01 00:00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자란 어린시절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행복보다 불행이 많았던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에게는 나란 존재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들을 바라시던 아버지는 내가 딸이자 쳐다보지도 않고 엄마를 많이 괴롭히셨다고 했다. 나는 태어난 죄밖에 없는데 딸이란 이유만으로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죽을 고비도 몇번 넘겼다고 너는 오래 살 거라고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중략) 지금 젊은 사람들은 35세인데도 배우지 못했다고 하면 잘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글을 몰라 배우려는 엄마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배우지 못한 엄마들을 위해 상계어머니학교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곳을 많이 지원해 주면 엄마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용기가 생길 것 같다. 배우지 못한 엄마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상계어머니학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상계 어머니학교 파이팅!
지금은 어디에 가도 자신 있고 용기가 생긴다.
나에게도 배움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김숙-
사랑하는 남편에게
그동안 아무것도 몰라 내가 “이것 써주세요” 해도 한번도 화내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너는 왜 글을 몰라”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농사지었다며 농약치지 않은 농작물을 그 멀리서, 자동차도 없는데 버스나 전철을 타고 그 무거운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박만임-
나는 아직도 답답하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는 것들이 만다. -김정임-
선생님하고 만난지가 벌써 일년이란 세월이 지났구요. 이제 금년도 한달밖에 안 남았어요. 어느새 봄이 가고 어느새 열음이 가고 가을이 지났군요. 추운 겨울이 되었습니다.
나는 왜 남이 하는 공부를 못했을가 부모한테 원망하지 말고 열심히 배워야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지만 공부가 안됩니다. 남보기는 멀쩡하지만 공부를 못했으니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그렇지만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공부가 안되요. 지금이라도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할말은 많지만 받침이 틀려서 말이 안됩니다. 그럼 선생님 안녕. -김순임-
예전에는 판잣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던 상계동. 이제는 흔적도 없이, 새건물이 들어서 있다. 올해 결혼을 앞두고 이재성 선생님은 잠시 인사를 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11명의 50~60대 어머니들의 수업 분위기는 젊은 선생님이 감당하기에는 만만찮아 보인다. 수업중에 사온 빵을 돌리는 어머니, 떠들지 말고 수업 시작하자고 투덜거리는 어머니.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수업과 그리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는 수업에 늦은 한 어머니는 가방을 풀기도 전에 앞으로 성큼성큼 나가더니 빌린 돈을 갚기도 한다. “뭣이 그리 급하다고. 있다가 주지”. “줄 건 줘야 속편하지”. 선생님이 앞에 서 있는데도 막무가내다. 그러나 선생님이 칠판에 쓰여진 글을 읽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재성 선생님의 목소리는 어찌나 우렁찬지, 일거에 분위기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나비가 춤을 춥니다, 개미가 물에 빠졌습니다….”
선생님을 따라 수줍게 읽는 어머니들의 소리는 작은 교실을 넘쳐 흘러 열린 문으로, 유리창 밖 햇살 속으로 퍼져나갔다.
상계 어머니학교는 90년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망 공부방’에서 출발했다. 공부방이 어머니학교로 탈바꿈하게 된 사연을 대략 소개하자면 어느날 자모들이 공부방으로 찾아와 “아이들만 가르치지 마시고, 우리도 배우게 해주세요”라고 했단다. 그 뜻을 이해하는 선생님들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았다. 그런데 배우고 싶었던 열망이 너무 컸던 어머니들은 직접 나서서 대학교 졸업식장을 돌며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은 돈이 100만 원이었다. 그 돈으로 월세방을 하나 마련하고, 공부방에서 분리되어 어머니 한글학교를 시작하게 된 것.
“현재 소외된 빈민이라는 개념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옛날엔 소외가 경제적인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문화적인 소외가 크죠. 조금 전 수업했던 50~60대 어머니들은 경제적으로 치자면 넉넉한 분들이 적잖아요.”
몇년 전만 해도 밤에 수업을 했다. 낮동안의 중노동으로 지친 어머니들이 진통제를 삼키면서도 수업에 빠지지 않았고, 남편과의 불화로 가출했다가도 학교를 잊지 못해 찾아온 어머니도 있다고 한다.
“소주 한잔 하고 수업 들어와 공부하겠다고 앉아 있는 어머니들도 있었고….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해요. 지금도 그 어머니들은 전화를 잊지 않고 해요. 아마 그랬던 기억 때문에 힘들어도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머니들에게 이 학교는 그 어느 학교보다도 특별한 모교이다. 공부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밤새 선생님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 학교.
어머니학교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선생님들은 모두 여성이다. 최광기 교장을 비롯하여 5명의 여성 전사들. 이곳으로 오게 된 사연들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가 빈민 여성운동에 뜻은 같았다. 시작했을 때와는 지역적 상황이 많이 달라져 선생님들은 문제의식에 부딪쳤다. 현재는 ‘빈민여성 지역공동체’라는 애초의 취지를 조금 발전시킬 계획이다. 얼마전에는 고학력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기획강좌도 열었으며, 99년에는 결식아동 대상 공부방을 시작했다. 대화 도중에도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학교의 위치를 묻기도 하고, 수업에 관한 문의전화였다.
“지역에서 ‘상계 어머니학교’가 꽤 지명도가 있나 봐요.”
“예, 오래 했으니까. 어머니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 있어요.”
꾸준히 지역 속에서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그들. 아름다움을 가꾸는 사람들이다.
광고 하나.
‘상계 어머니학교’와 ‘늘푸른 공부방’에서 컴퓨터 교육을 하고 싶은데 컴퓨터가 부족하다고 하는군요.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또 전자오락실을 맴도는 아이들을 위해 컴퓨터 수업을 시작하면 이러한 문제도 많이 해소될 것 같다는 의견이십니다. 후원해 주실 분은 02-938-2609(상계 어머니학교)로 전화해 주세요.
내가 자란 어린시절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행복보다 불행이 많았던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에게는 나란 존재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들을 바라시던 아버지는 내가 딸이자 쳐다보지도 않고 엄마를 많이 괴롭히셨다고 했다. 나는 태어난 죄밖에 없는데 딸이란 이유만으로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죽을 고비도 몇번 넘겼다고 너는 오래 살 거라고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중략) 지금 젊은 사람들은 35세인데도 배우지 못했다고 하면 잘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글을 몰라 배우려는 엄마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배우지 못한 엄마들을 위해 상계어머니학교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곳을 많이 지원해 주면 엄마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용기가 생길 것 같다. 배우지 못한 엄마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상계어머니학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상계 어머니학교 파이팅!
지금은 어디에 가도 자신 있고 용기가 생긴다.
나에게도 배움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김숙-
사랑하는 남편에게
그동안 아무것도 몰라 내가 “이것 써주세요” 해도 한번도 화내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너는 왜 글을 몰라”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농사지었다며 농약치지 않은 농작물을 그 멀리서, 자동차도 없는데 버스나 전철을 타고 그 무거운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박만임-
나는 아직도 답답하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는 것들이 만다. -김정임-
선생님하고 만난지가 벌써 일년이란 세월이 지났구요. 이제 금년도 한달밖에 안 남았어요. 어느새 봄이 가고 어느새 열음이 가고 가을이 지났군요. 추운 겨울이 되었습니다.
나는 왜 남이 하는 공부를 못했을가 부모한테 원망하지 말고 열심히 배워야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지만 공부가 안됩니다. 남보기는 멀쩡하지만 공부를 못했으니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그렇지만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공부가 안되요. 지금이라도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할말은 많지만 받침이 틀려서 말이 안됩니다. 그럼 선생님 안녕. -김순임-
예전에는 판잣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던 상계동. 이제는 흔적도 없이, 새건물이 들어서 있다. 올해 결혼을 앞두고 이재성 선생님은 잠시 인사를 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11명의 50~60대 어머니들의 수업 분위기는 젊은 선생님이 감당하기에는 만만찮아 보인다. 수업중에 사온 빵을 돌리는 어머니, 떠들지 말고 수업 시작하자고 투덜거리는 어머니.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수업과 그리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는 수업에 늦은 한 어머니는 가방을 풀기도 전에 앞으로 성큼성큼 나가더니 빌린 돈을 갚기도 한다. “뭣이 그리 급하다고. 있다가 주지”. “줄 건 줘야 속편하지”. 선생님이 앞에 서 있는데도 막무가내다. 그러나 선생님이 칠판에 쓰여진 글을 읽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재성 선생님의 목소리는 어찌나 우렁찬지, 일거에 분위기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나비가 춤을 춥니다, 개미가 물에 빠졌습니다….”
선생님을 따라 수줍게 읽는 어머니들의 소리는 작은 교실을 넘쳐 흘러 열린 문으로, 유리창 밖 햇살 속으로 퍼져나갔다.
상계 어머니학교는 90년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망 공부방’에서 출발했다. 공부방이 어머니학교로 탈바꿈하게 된 사연을 대략 소개하자면 어느날 자모들이 공부방으로 찾아와 “아이들만 가르치지 마시고, 우리도 배우게 해주세요”라고 했단다. 그 뜻을 이해하는 선생님들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았다. 그런데 배우고 싶었던 열망이 너무 컸던 어머니들은 직접 나서서 대학교 졸업식장을 돌며 커피를 팔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은 돈이 100만 원이었다. 그 돈으로 월세방을 하나 마련하고, 공부방에서 분리되어 어머니 한글학교를 시작하게 된 것.
“현재 소외된 빈민이라는 개념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옛날엔 소외가 경제적인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문화적인 소외가 크죠. 조금 전 수업했던 50~60대 어머니들은 경제적으로 치자면 넉넉한 분들이 적잖아요.”
몇년 전만 해도 밤에 수업을 했다. 낮동안의 중노동으로 지친 어머니들이 진통제를 삼키면서도 수업에 빠지지 않았고, 남편과의 불화로 가출했다가도 학교를 잊지 못해 찾아온 어머니도 있다고 한다.
“소주 한잔 하고 수업 들어와 공부하겠다고 앉아 있는 어머니들도 있었고….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해요. 지금도 그 어머니들은 전화를 잊지 않고 해요. 아마 그랬던 기억 때문에 힘들어도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머니들에게 이 학교는 그 어느 학교보다도 특별한 모교이다. 공부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밤새 선생님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 학교.
어머니학교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선생님들은 모두 여성이다. 최광기 교장을 비롯하여 5명의 여성 전사들. 이곳으로 오게 된 사연들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가 빈민 여성운동에 뜻은 같았다. 시작했을 때와는 지역적 상황이 많이 달라져 선생님들은 문제의식에 부딪쳤다. 현재는 ‘빈민여성 지역공동체’라는 애초의 취지를 조금 발전시킬 계획이다. 얼마전에는 고학력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기획강좌도 열었으며, 99년에는 결식아동 대상 공부방을 시작했다. 대화 도중에도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학교의 위치를 묻기도 하고, 수업에 관한 문의전화였다.
“지역에서 ‘상계 어머니학교’가 꽤 지명도가 있나 봐요.”
“예, 오래 했으니까. 어머니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 있어요.”
꾸준히 지역 속에서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그들. 아름다움을 가꾸는 사람들이다.
광고 하나.
‘상계 어머니학교’와 ‘늘푸른 공부방’에서 컴퓨터 교육을 하고 싶은데 컴퓨터가 부족하다고 하는군요.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또 전자오락실을 맴도는 아이들을 위해 컴퓨터 수업을 시작하면 이러한 문제도 많이 해소될 것 같다는 의견이십니다. 후원해 주실 분은 02-938-2609(상계 어머니학교)로 전화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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