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예술의 전당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지나야 하는 깊은 지하도가 하나 있다. 그 예술의 전당을 자주 가는 ‘문화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잡지 ‘장 모’ 기자보다는 많이 갔을 성싶다(?). 그런데 나는 그 지하도 밑으로 내려갈 때마다 혐오기가 약간 보태진 싫증이 불쑥 올라온다. 지하도 계단 입구부터 시작해 예술의 전당 마당까지 걸어가는 그 지하도는 몇십미터 되고, 그렇기에 간단한 산책의 길이 될 수도 있다. 한데 그 몇십미터의 지하도는 마치 부도가 나서 텅 비어 있는 공장과 같이 휑하다. 방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은 그 삭막하게 방치된 공간을 일초라도 더 빨리 벗어나기 위해 잰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아마 보통의 사람이라면 명색이 예술의 전당으로 바로 통하는 지하도이니 이런저런 예술적 조형효과물 혹은 하다못해 포스터라도 붙어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런 조형물이나 눈을 즐겁게 하는 문화예술적 요소들을 보면서 예술의 전당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만약 그 지하도에 그런 게 있다면 그것은 비유컨대 예술의 전당에서 있을 본 프로그램에 앞서 관객들의 정서를 살짝 띄워놓는 전식(前食)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대일 뿐이다. 그 지하도는 회색 및 시멘트 벽으로만 완강히 도열해 있다. 그렇기에 예술의 전당에 가는 사람들은 어서 빨리 그 속을 빠져나오고 싶어할 뿐이다.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서초동이면 서울 시내에서 땅값 높기로 유명한데, 아파트 혹은 전시관 하나의 평수와 맞먹는 그 지하도 공간을 그렇게 놀리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혹여 시멘트벽 그 자체가 예술품의 하나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어떤 문화예술적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지한 나를 탓할 뿐.

예술의 전당 앞 지하도만 그런 게 아니다. 충정로 환승역, 을지로3가 환승역 등을 비롯해 서울의 많은 지하철역의 벽과 공간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지루하다. 물론 아예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광고판은 의연하게 벽에 제자리를 잡고 있다. 하루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셀 수도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루하게 걸어간다. 그곳을 지나면서 한사람 한사람이 느끼는 지루함을 모두 더하면 그 지루함의 무게와 부피는 서울 전체를 덮고도 남을 터이다.

런던의 지하철은 낡았다. 서울의 말끔한 지하철에 비하면 남루하기조차 하다. 환승역의 통로들은 마치 방공호의 교통호 같기도 하다. 하지만 ‘튜브’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런던 지하철 차량이 다니는 그 지하공간은 전혀 남루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벽은 낡았으되, 지하철역 입구부터 시작하여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의 벽, 마지막으로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지하철 공간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 같다. 각종 공연 포스터를 비롯해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는 시각적 이미지 요소들이 제모습을 뽐내면서 도열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런던 역만이 그런 게 아니라 파리의 지하철을 비롯해 문화를 일상적 감각으로 만들고 즐기는 웬만한 사회의 지하철은 대개 그렇다.

현대는 도시화의 과정이고 도시화는 동시에 지하로의 확대를 꾀해왔다. 지하공간은 그런 까닭에 도시 일상의 확대화를 가속시키는 매개이기도 하다. 때문에 지하공간의 활용 여부는 곧 도시생활의 질적 문제에 직결된다. 사적공간이야 논외로 한다하더라도 수많은 공적 지하공간, 오늘 우리가 보기로 든 예술의 전당 지하도나 지하철 등은 그런 사실과는 무관한 것처럼 방치되어 있다. 경제와 정책 혹은 행정에 문화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과 우리 사회는 그것이 결정적으로 부족하다는 진단이 이런 데서도 여실해지는 듯하다. 살가운 도회생활을 기대한다면 이런 방치된 공간의 재활용 혹은 문화적 ‘재건축’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이성욱 『한겨레』여론매체부 기자
2000/06/01 00:00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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