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제도로 일궈가는 맞춤건강 서비스
2001/2001년 09월 :
2001/09/01 00:00
환경과 생명을 중시하는 안산의료생활협동조합
지역운동 차원에서 벌어지는 생협은 이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무엇보다 최근엔 특성화된 생협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00년 4월 창립한 안산의료생협을 방문해 보자.
“…우리가 설립하고자 하는 병원은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병원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자신과 이웃이 건강을 누리도록 실천하는 병원이다.…”
작년 4월 창립된 안산의료생활협동조합(이사장 김수인, 이하 안산의료생협)의 설립취지문이다. 안산의료생협은 경기 안성과 인천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의료생협이다. 이곳은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란 점에서 병원에서 의료생협으로 전환한 인천, 안성의 의료생협과 그 출발점이 다르다.
10년 전 시작된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과 동의학민방연구회가 안산의료생협의 모태이다. 생활협동조합법이 제정되기 전, 안산천 상류 보존 녹지 지역에 대규모 도축장을 비밀리에 건설하려던 계획을 주민들의 힘으로 저지했던 환경모임과 전통 민간요법 강좌 등 예방의학에 관심을 가졌던 동의학민방연구회가 함께 생명과 환경이라는 이름의 한의원을 연 적이 있었다. 지금은 민간요법이 대체의학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지만 당시는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생명과 환경 한의원은 2년 만에 폐업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의 경험은 의료생협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외국인노동자와 실업자에겐 진료비 ‘세일’
생협은 모든 대중이 의료의 주인이며 의학과 건강에 관한 지식이 의학 전공자에게 독점되고 있는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의료인은 물론 지역민이 함께 예방의학에 관심을 갖고 실천할 수 있는 시설을 함께 운영하는 생활공동체이다.
“우리가 강토를 보전하고 환경을 지키는 것은 후손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건강을 지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건강을 위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죠.”
김수인 이사장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활동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병원은 치료보다는 질병예방활동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산의료생협에서는 건강 증진을 위한 여러 가지 소모임, 건강산행 등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현재 안산의료생협의 조합원은 670여 세대, 출자금은 4600만 원. 안산의료생협은 새안산의원(원장 이재광)·한의원(원장 조승일)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진료비는 일반의원과 같지만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70%, 실업자에게는 50%를 깎아주고 있다. 노인, 장애인들에게 좀 더 편하고 친근한 병원이 되도록 애쓰고 있으며 조합원 대상 방문 진료와 주치의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방문 진료라고 해서 진료비를 더 받는 건 물론 아니다.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건강검진도 이른바 ‘맞춤 검진’이다. 일반 의원에서처럼 무조건 모든 검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치의가 검진대상자와 충분히 상담한 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검진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검진비는 4만 원부터.
새안산의원·한의원은 협진 병원이다. 하지만 서로의 영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올바른 협진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의원은 의원으로부터 X-Ray 도움을 받고 의원은 요통 등의 치료에 한의원의 도움을 받는 수준이다. 지금으로선 협진보다도 장비와 의료진 확충이 더 시급한 실정이다.
이재광 원장이나 조승일 원장은 새안산의원·한의원을 개원하기 전에 이미 개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안산의료생협 추진 소식을 듣고는 흔쾌히 동참했다.
“개업 초창기에 힘들었습니다. 작년 의사회에서 파업을 할 때 저희는 문을 닫을 수가 없었어요. 의사가 주인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는 없었던 거죠.” 그때부터 의사회와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고 이들은 의사회의 의료수가 인상 방안 등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힘든 시기에 그들에게 힘이 된 일이 있었다. 복통으로 병원을 찾아다니던 한 지역주민이 천신만고 끝에 새안산의원을 찾아내 다행히 치료를 받았다며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진료대에 누웠을 때 형광등이 가물거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명기기업을 하는 남편에게 부탁해 두 병원의 형광등을 모두 갈아주었던 것이다.
주민과 의료인이 만들어가는 의료공동체
새안산의원·한의원의 하루 평균 진료인원은 의원의 경우 50여 명, 한의원은 30여 명이다. 조합원의 의원이용률은 30%밖에 되지 않지만 인천이나 안성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멀리 살고 있는 조합원들이 아플 때 굳이 안산까지 찾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한다.
“질병이 생기기 이전에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료생협의 목적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방보건활동을 합니다. 지금은 건강생활 체조교실이나 건강증진을 위한 소모임 활동 등을 하고 있지만, 9월에 처음 열리는 보건학교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의료자원봉사자로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우세옥 보건예방실장은 전문의료진만으로는 건강검진과 방문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원에게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안산의료생협은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검사기기 등을 갖춰 성인병 검진을 실시하고 더 나아가 의료생협의 궁극적 목표인 주치의 사업을 실시해 나갈 계획이다. 지역주민의 주치의로서 평생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속적인 예방과 관리를 하는 것이 바로 주치의 사업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생협은 일본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이다. 일본은 의료생협수가 136개, 조합원이 170만 명이나 되고 조합원들이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조합은 부양자가 없는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위해 질좋은 의료장비와 재활시설을 갖춘 시설을 만들어 조합원들이 자원봉사를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곳에서는 개호 보험(40세 이상의 물리치료나 방문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보험)을 적용해 진료비를 받는다. 자원봉사자들은 약간의 급료를 받지만 일부를 다시 조합에 출자한다.
안산의료생협의 모델은 바로 일본의 의료생협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이런 시설이 많이 필요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의료소비자인 지역민들에게 이처럼 가까운 병원, 지역민과 의료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병원은 모두가 원하는 병원의 모델일 것이다. 진료비 수입에 매달리는 기존 병원들과 달리 병원 수입을 지역사회에 환원해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지역 주민들의 믿음직스런 주치의가 되겠다는 것이 안산의료생협이 지역 주민들에게 내놓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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