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
‘1990년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89년 동서독의 통합으로 시작된 실존 사회주의권의 연쇄 ‘붕괴’와 함께, 괴물처럼, 느닷없이 다가온, 그래서 많은 이들을 역사의 격랑에 쓸려 내려가게 했거나, 역사를 외면하게 했던 10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10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10년을 ‘단기사병’(방위)으로 시작해 ‘백수’를 거쳐, 7년 넘게 기자로 보냈다. 85년 대학에 들어갔던 이른바 ‘386세대’(난 이 개념이 싫다. 시대의 많은 비밀을 담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수많은 또래를 배제하고, 무엇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 운명을 짊어지고 ‘민중과 함께’를 목숨걸고 외쳤던 80년대의 혁명적 시대정신에 배치되기 때문에)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80년대의 ‘등대‘가 사라지자, 80년대의 무게에 억눌려 있던 많은 것들이 들고일어났다. 80년대를 한복판에서 몸으로 부대꼈던 어떤 이들은 ‘반성’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탈’했다. 80년대 내내 주변에서 서성이던 어떤 이들은 이미 힘을 잃은 ‘시대’를 물어뜯었다. 이른바 ‘포스트모던’과 ‘일상정치’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아갔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아둔했던 나는 두려운 듯 남들보다 크고 조금 앞으로 튀어나온 두 눈을 씀벅거리며 허겁지겁 그 말들을 소화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90년대가 허리춤을 접을 무렵부터 나는 이른바 ‘90년대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80년대를 잘 모르는 이들─그렇다고 내가 80년대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의 후일담 소설은 나를 지치게 했다. 글솜씨는 빼어나지만 읽고 나면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이른바 ‘신세대’ 소설가들의 작품은 ‘소설을 읽는다는 게 삶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는 의혹에 빠지게 만들었고 나를 허무하게 했다.

내게 90년대는 그렇게 ‘가까이 할 수 없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당신이었다. 90년이라야 겨우 11년 전 일이지만, 아주 먼 옛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90년대를 우리는 숨가쁜 속도로 보낸 것 같다. 아니면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거나.

절망과 한숨, 모색과 좌절이 모두 담긴 1990년대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를, 그래서 아직은 ‘유명인사’가 아닌, 류소영이라는 소설가를 알고 지낸 지는 이태쯤 됐다. 사실 나와 친분이 있었던 이는, 류소영이 등단한 뒤 각별히 고마움을 표시했던 그의 둘째언니다(이이의 삶의 편린은 류소영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한다. 때론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의 김연두 속에서, 때론 「동그라미 그리려다」의 주인공 할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 특성을 문학평론가 김형중 씨는 ‘부적응자‘라고 규정했고, 류소영 소설의 함의를 ‘부적응자들의 연대’라는 새로운 정치전략으로 확장한다. 나로선 류소영의 둘째언니가 세상에서 동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참 고요하고 평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그렇게 난 류소영이라는 소설가를 가까이서, 가끔 만났고, 소설가보다는 동시대의 한 사람으로 대했다. 만날수록 ‘참 독특한 감수성의 소유자다‘라는 생각을 했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80년대와 90년대의 감성이 적당히 버무려진, 두 시대의 접점에서나 나타날 듯한 감성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했다. 80년대처럼 무겁지 않지만, 사람들이 흔히 ‘90년대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처럼 한없이 가볍지도 않은 어떤 것. 경쾌했으나 경박하지 않았고, 진지했으나 그것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 것 같았다.

1992년 대학에 들어가 90년대의 끄트머리에 학교를 마치고 지금은 서울시내 어느 중학교의 국어교사 노릇을 하고 있는 그가, 얼마 전 첫 소설집을 냈다(『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 문학동네 펴냄). 소설집으로 묶여 나오기 전 나는 그가 띄엄띄엄 발표하는 소설들을 몇 편 읽었다. 등단작인 「동그라미 그리려다」(작가가 애초 표제작으로 염두에 뒀던 작품이란다), 표제작인「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 「민정(旻庭)과 이견(異見)」이 그것들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의 소설은, 불화의 극을 달리던 80년대와 90년대를 오갈 다리를 놓으려는 듯 했고, 어느 정도는 비밀의 문을 여는 요령을 체득해 가는 듯 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나이 스물여덟, 결코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그가, 왜 그리도 세상을 거의 다 산 듯한, 잠언풍의 말을 자주 입 밖으로 내놓는지. 그 ‘애늙은이 같은 어투’에 담긴, 삶의 속내가 궁금했다. 하긴 요즘 이런 젊은 사람들 많다.

그는 소설집 끝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이렇게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난 참 어정쩡한 작가다”라고. 그리고 이런 바람을 내비친다. “그렇다. 나는 ‘네 소설은 너무 무거워’라는 평도 듣고 싶지 않고, ‘네 소설은 참 가벼워’라는 평도 듣고 싶지 않은, 글도 제대로 못 쓰면서 욕심만 많은 글쟁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80년대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그의 삶은 90년대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긴 그는 20대의 대부분을 90년대에 살았고, 스스로도 “여러모로 21세기적 삶의 방식을 갖추기까지의 절망과 한숨과 모색과 좌절이 모두 담겨 있는 1990년대를 나는 참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92학번 ‘늦된’ 세대의 시대성찰

이번에 소설집을 읽으며 나는 그 궁금증을 풀어버리고 싶었다.

아마도, 적어도 당분간, 누군가 그의 소설집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빼먹지 않고 인용할 구절은 틀림없이 이 부분일 것 같다.

“61학번과 88학번과 92학번…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한발 늦게 우리 현대사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그것 때문에 비슷하게 괴로웠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비슷하게 덜 괴로웠을 것이다. 우리가 피해간 괴로움이 명료한 괴로움이라면, 우리가 그 괴로움을 비껴가면서 새롭게 맞닥뜨려야 했던 괴로움은 무정형의 괴로움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 괴로움의 파장이 길고도 깊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래오래 할 말이 없을 것이지만, 또 우리는 오래오래 가슴에 많은 걸 묻어야 할 터였다.”(「이문으로 들어가면 좁다」 218쪽)

61년은 4·19혁명 다음해이고, 88년은 6월항쟁 이듬해 이고, 92년은 강경대를 비롯 참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역사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바로 그 91년 5월항쟁의 뒤끝이다. 그리고 그는 92학번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가 ‘덜 괴로웠을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불혹에 이르기도 전에 자기의 고통이 남보다 ‘덜’한 것이라고 고백하다니….

이걸 두고 소설집에 “‘뒤늦은’ 세대의 출범을 고(告) 함”이란 의미심장한 이름을 단,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 씨는 “‘90년대 소설’이란 말을 90년대에 ‘씌여진’ 소설이 아니라, 90년대에 ‘관한’, 90년대를 누구보다도 실감나게 몸소 살아냈던 작가들이 쓴 소설로 재규정할 때, 그녀로부터 90년대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평가했다.

무릇 소설가라면 삶과 세상을 멀찍이 떼어놓고 들여다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할 터이지만, 사람들에게 그건 얼마나 가능한 시도일까. 평론가의 ‘뒤늦은’ 세대라는 규정을 나는 ‘늦된’ 세대로 바꿔 부르고 싶다. ‘늦되다’는 것은 필시 생각이 많다는 것을, 움직이기 전에 오래도록 생각한다는 것을 뜻할 터이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진실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세상의 격렬한 변화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그리하여 불가피하게 수많은 오류를 범하며 살아가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시지프스의 슬픈 운명. 내가 아는 한 역사는 그런 삶의 결과를, ‘진보’라고 부른 것 같다.
이제훈 『한겨레』 기자
2001/09/01 00:00 2001/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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