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금지 가처분 유감
2001/2001년 09월 :
2001/09/01 00:00
방영금지 가처분 유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아가동산 그후 5년’이 법원으로부터 방영금지가처분 결정을 받고 불방돼 논란이 드세다. 서울지법 남부지원은 가처분 결정의 이유를, 아가동산에서의 살인 의혹에 대해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으며, 후속 취재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방영금지가처분 신청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기각되거나 방송 내용이 일부 수정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프로그램 전편에 대한 방영금지 결정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혐의가 씌워질 개연성이 많지만(?) 이번 일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판결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초래될 역기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방영금지 가처분 제도에 관해서 제일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사전검열 시비다.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인류가 오랜 투쟁 끝에 확보한 권리다. 비록 방송 후 있을 수 있는 현저한 피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취지라 해도 방송에 앞서 판사가 프로그램의 내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단속’과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 이는 사실상의 사전검열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는 주로 방송 현업자와 방송학계에서 진지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반해 법조계나 법학계의 입장은 자못 다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행정부에서 하는 검열이고 이 방영금지가처분 신청제도에서의 그것은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사전검열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방영 전에 기자나 PD의 전문성과 양심의 자유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내용이 수정되거나 이번처럼 아예 방송이 불허되는 일은 법률적으로는 뭐라고 말하든지간에 실질적으로는 ‘검열’의 효과를 가지게 되고 나아가 현업자들에게 심리적인 위축까지 가져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행한 모든 보도가 항상 정의롭고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안전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미디어의 잘못된 보도는 작금 명예훼손이나 초상권 침해와 같은 천문학적 숫자의 법정 소송 사태에서 보듯 엄정한 검증과정이 충분히 작동되고 있다. 필자도 두 차례의 경험이 있다. 다행히 무혐의 또는 재판에서의 승소로 끝났지만 재판과정에서의 노심초사나 그 이후의 심리적 위축은 착잡한 것이었다.
이미 여러 언론사에서는 자문변호사, 당직 변호사, 기사 실명제 등을 통해서 전문성과 책임성을 드높이려 애를 쓰고 있다. 이런 것도 사실은 날로 늘어가는 각종 소송에 나름대로 대응하기 위해 언론사들이 스스로 만든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견제와 균형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방영금지 가처분제도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그 동안 이 제도가 운용된 사례를 보면 미디어의 보도에 의한 피해 예방이라는 취지와 달리 주로 힘있는 세력이 언론사의 보도를 회피하거나 방해하는 데에 동원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돈과 조직이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보도가 나가지 않도록 이 제도를 활용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남부 지원은 이번 결정에서 ‘언론매체들의 상업주의에 대한 역기능의 우려도 또한 커지고 있다’며, ‘(이번 프로그램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선정적인 의도로 이런 프로그램을 또 하는 것이 아니냐는 힐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지나친 예단으로 사법부가 말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는 마땅히 견제돼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다하면 언론의 ‘감시견’ 역할이 약화된다. 잘못된 보도의 피해자는 눈에 보이지만 언론의 고발기능이 약화됨으로 인한 피해자는 특정하게 적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피해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 삼간 태울 수 없고 쇠뿔 바로잡겠다고 소를 죽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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