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4 · 13총선과 낙선운동
2000/2000년 05월 :
2000/05/01 00:00
"16대 국회는 정치개혁부터"
정태인 : 정치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의 토론 주제입니다. 일단, 16대 총선결과에 대한 총평을 듣도록 하죠.
정대화 : 이번 선거는 유권자 참여운동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고, 그것이 앞으로 우리 정치에서 하나의 변수로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출발점이 될 거라고 봅니다. 이제는 정당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정치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정치권의 정치적 독과점구조를 깬 측면이 있고, 또 달리 말하면 부패한 정치카르텔을 해체시켰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선거와 관련해서는 일단 강하게 지역에 기반한 양당구도로 간 게 걱정이지만, 자민련의 참패는 우리 정치사에서 갖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몇몇 개인이 바뀐 것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의미 있다고 봅니다.
정범구 : 전체 선거운동기간 40∼50일 정도 중에 여러 아젠다들이 나왔지만, 결국 막판에 투표를 결정한 건 철저히 지역주의구도였거든요. 저는 민주당 소속인데, 막판에 영남 표 결집 등에 대한 투표분석을 해봐도 한나라당의 응집력이 높아지는데, 그게 정책적인 아이덴티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지역주의적 성향에 의해서라는 것에 혐의를 강하게 받습니다. 외국의 경우엔 양당제가 정책을 기반으로 채택되지만 우리는 철저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한 양당제입니다. 이번이 완전히 영남의 폐쇄성이 각인된 계기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김부겸 : 엄존하는 지역구도의 위력은 정말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정상회담 같은 민족사의 큰 아젠다조차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려는 의도. 바로 그 의도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감지한 지역세력간의 처절한 싸움으로 선거판에서 변질되는 것으로 나타났구요. 그러면서도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총선연대 같은 유권자운동의 영향 탓도 있겠습니다만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욕구도 대단했다고 봅니다. 기존의 정치가 생산적인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싸움에 그쳤다는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도 굉장히 관심이 있었다고 봅니다. 두 가지 매개변수들끼리 교직을 하면서 선거판이 마감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양경규 : 이번 선거에서 무엇이 쟁점이어야 했냐는 점에서 보면 우선 IMF 2년을 거치면서 발생한 사회구조 전반의 문제가 쟁점화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한국 노동시장이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추월하고, 빈부격차가 1979년의 통계와 같아진 문제, 20년을 후퇴한 한국사회의 성 계층적 구조 문제, 이 속에서 소위 민중적 이슈가 선거전에서 주요하게 쟁점화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런 논의는 기성정치의 벽, 지역기반의 문제도 있었지만, 총선연대 활동 또한 알게 모르게 국민적 총선 이슈의 문제를 희석시키거나 왜곡시킨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정태인 : 네 분이 다 지적하신 게 지역주의 문제인데요. 왜 지역주의가 이번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쳤고, 또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 한번 짚어보도록 하죠.
정대화 : 우선 이번 선거가 철저하게 지역감정에 의존한 선거였다는 분석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적어도 민주당은 호남에서 약화되는 게 나타났어요. 충청도도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이빨 빠진 뭐가 됐어요. 영남을 제외한다면,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감정이 강하게 분출됐다고 보기 곤란하다는 거죠. 하나는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지역감정이고, 하나는 잠재화된 지역정서인데, 나는 잠재화된 지역정서는 과거보다 약화된 형태로 엄존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하나는 공개적으로 드러난 지역감정은 국민에 의해, 또는 총선시민연대에 의해서 명시적으로 제압됐다고 봅니다. 실제로 다른 분석이 필요하다고 봐요. 특히 이번 영남의 석권은 뭐냐, 난 이것은 적어도 1997년에 정권을 뺏기고, 그 다음에 나름대로 탄압을 받았다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영남 정서의 단면이라고 봅니다. 또 선거과정에서는 민주당의 안정론에 대항하는 한나라당의 견제론으로 나타난 것이고, 지난 2~3년간의 정치적 성향과 한나라당 선거전략이 먹혀든 측면이 있다고 봐요. 이런 걸 다 뭉뚱그려 가지고 영남사람들이 모조리 지역감정으로 투표했다, 이렇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범구 : 제가 일산에서 느낀 지역주의는 거시적으로 봤을 때 역시 우리 정치를 지배하는 건 지역구도고, 그러나 자세한 내용을 보면 계급적, 계층적 분화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를테면, 일산에 사는 모든 호남사람들이 민주당을 찍은 것도 아니고, 일산에 사는 모든 영남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찍은 건 아니에요. 일산에 사는 호남인구 중에도 고급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한나라당 지지가 많이 나와요. 그건 분명히 교차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지역감정, 영남지역의 위기감이 영남 표를 결집시켰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영남지역정서라는 게 뭐냐, 두 층이 있겠죠. 지금까지 기득권을 계속 누려왔던 층, 또 우리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지역구도가 경제적 기득권층 소외층과 아직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저는 김대중정권이 갖고 있는 딜레마가 이거라고 봅니다. IMF 위기극복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자기 지지층은 오히려 철저하게 피해를 봤고, 역설적으로 많은 혜택을 본 것은 DJ를 지지하지 않았던 기득권층에 있는 건대 투표과정에서도 그들의 호감을 끌어내지 못한 거예요. 그러면 이 정서는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반DJ정서가 있다는 거죠.
김부겸 : 저는 김대중정부가 국민들에게 두 가지 실수를 했다고 보는데요. 그건 중산층 이상의 모든 국민들이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해 지키지 않는 부분은 대단히 싫어하더라구요. 개혁을 하든, 또 다른 사회적인, 남북관계라든가 뭔가 진보적인 것을 하려고 하면 우선 대통령이 조금은 더 솔직하고, 자신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국민에게 호소했다면, 아마 중산층에게 설득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거 막판에 터진 남북정상회담 카드가 그 내용의 엄청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일부 중산층이나 일부 영남지역 유권자에게 또 다른 사술이 아니냐는 이미지를 비친 것같아요.
양경규 : 이번 선거는 과거에 비해서는 지역감정을 상대적으로 허물고 있는 선거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로 창원과 울산지역에 있었습니다. 노동자 밀집지역이기도 한 그 지역에서 실제 노동자가 아닌 그룹의 투표행태는 어떠한가 조사를 해봤어요. 그랬더니 지역감정의 벽은 많이 무너져 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꼈습니다. 대안이 있는 정당·세력에게 표를 주겠다는 준비가 돼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별로 차별성을 느낄 수 없는 양당구조 속에서 ‘같은 값이면 한나라당’이라는 판단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안 있는 정당과 새로운 정당의 구조를 갖고 얘기할 때 저는 지역감정의 문제가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과 창원에서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상이 어려운 조건에서는 현실적으로 한나라당을 선택하고, 민주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민주노동당 선거운동을 하면서 일반유권자를 만났을 때 지역주의가 뚫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런 점입니다.
정태인 : 처음엔 지역주의에서 시작됐던 토론이 마지막에선 지역주의가 약화됐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총선에서 또 하나의 특색은 총선연대의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평가를 해보죠.
정대화 : 이번 낙천낙선운동은 뒤집어진 정치를 바로세우는 계기가 됐다, 전도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했다는 것이죠. 제가 이번 낙천낙선운동을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써먹었던 말이 헌법 제1조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근대적 의미에서 시민혁명이 담보해줬던 참정권, 주권에 관한 관점이 있는데, 우리 선거에선 그동안 이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요. 오로지 대상화돼 있던 유권자들이 이제 정치의 주인은 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선거였다, 우리에게 힘이 있구나를 느끼게 했던 근대시민혁명적 의미가 있는 선거였다고 봅니다.
정범구 : 그런데 저는 이번 낙천낙선운동을 보면서 우리 시민운동이 아직까지 상층부에 머무르고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시민운동이 보다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낙천낙선운동은 명단발표 후에 바로 다음 단계로 이전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뛰는 사람으로서 절실했던 것은 새로운 유권자운동, 새 선거문화 창출 두 가지였는데, 시민단체가 낙천낙선운동 하나만 가지고 50∼60일간 시민운동의 총력을 쏟아부은 것은 선거판의 현실을 감안할 때 너무 한쪽으로 매몰됐던 운동이었다는 거예요.
정대화 : 우리 사회에서 유권자, 정당, 정치인 다 문제가 있죠. 그러나 그것을 90일 동안의 총선연대가 다 해결하라, 그건 무리라고 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보기보다는 정말로 몹쓸 정치인 절반을 날려버리는 걸로 의무를 다하자, 이거였거든요. 위 치고,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요구하자 이런 거였다구요.
정범구 : 충분히 이해하죠. 총선연대 주 타깃이 무엇이었는가는 너무나 분명해요. 그리고 성과도 있었어요. 그러나 제 입장에서 얘기해보면 시도별로 몇 개의 지역구만 샘플링해서 집중적으로 선거감시를 했다면 정말 깨끗한 선거의 표본을 만들었을 거라는 거죠. 저는 정치개혁의 출발점이 선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거든요? 아무리 내가 원칙을 가지고 깨끗한 선거를 하겠다고 해도 이 인프라가 그렇게 안돼 있어요. 그러나 유권자들은 옛날보다 조금은 나아졌거든요? 여기에 적당한 충격을 가하면… 그러나 거기서 총선연대운동이 상층에 머물렀다는 것은 결국 바닥을 바꾸는 것, 다는 못 하더라도 몇 개의 지역을 선거감시했더라면 선거문화에서 난 대단한 혁명을 이뤘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에요.
정태인 : 유권자를 향한 시민운동도 필요하다는 거죠.
김부겸 : 저희 당은 그동안 대상화되어 있던 주민들이 낙천낙선운동으로 주인의 몫을 찾겠다고 나왔을 때 오랜 관습에 젖어 있던 터라 상당히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충격이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고, 한국 정당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앞으로 불합리한 선거관계법을 개정하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으로까지는 이 운동이 발전돼야 한다고 봅니다. 선거관련해서 보면 엉터리 게임규칙들이 너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운동, 또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선거가 가능한 구조, 그래야 진보정당도 가능할 거고, 혹은 특성화된 환경운동이라든가 이런 분야들이 정치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양경규 : 저는 총선연대 운동의 철학이 무엇이냐고 우선 묻고 싶습니다. 한국정치를 개혁하고 올바른 정치문화를 만들고,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기 위한 것이다, 라고 한다면 그건 틀린 것이었다고 봅니다. 첫 번째로 우선 부정부패나 파렴치범으로 선정된 낙선대상자들이 국회의원 299명 중 그들만 해당되냐? 현재 정치구조 속에서 의정활동, 1인 보스체제, 정경유착 등으로 견줄 때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겁니다. 반환경, 반노동, 반인권, 반교육 등의 관점에서 낙선대상자를 선정한 게 있냐, 없다는 겁니다. 그럼 이건 정치개혁과 무관한 그림이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총선연대가 몇 사람을 낙선시킨 것에 대해 너무 자신만만해 할 이유는 없습니다. 차라리 대안정당과 대안세력을 얘기하거나 또는 총선의 중요한 기조·이슈를 제기하는 것이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거죠. 이를테면 총선연대가 원하든 원치 않든, 1인 2표제는 물 건너갔습니다. 이때 총선연대가 챙긴 성과는 선거구를 줄였다, 그러나 한국의 선거구는 외국과 비교할 때 많은 게 아닙니다. 그것은 IMF위기 속에서 놀고 먹는 국회와 상업적으로 딱 맞아떨어진 겁니다. 그건 정치개혁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소위 총선연대의 활동이 진보정당 후보의 표에 도움이 된 건 사실입니다. 가끔 총선연대는 이것도 받아먹지 못하는 진보진영 역량의 미숙을 말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받아먹을 만한 역량이 충분히 있다, 이렇게 볼 수 없습니다.
정대화 : 양 위원장 지적이 다 맞아요. 그러나 그건 뭐랑 똑같냐면, 결국 이번에 민노당이 실패했는데, 왜 민노당이 정권을 못 잡냐? 하는 얘기랑 똑같아요. 왜 원내교섭단체 못 만드냐, 노동자가 천만인데.
양경규 : 저는 총선연대가 잘했다, 잘못했다 이게 아니라 관점을 명확히 했어야 했다, 이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정대화 : 우리 사회에서 부패정치, 지역감정에 의존하는 정치, 군사독재를 저지른 정치권이 나쁘다 그건 국민들이 다 압니다. 낡은 패러다임이 사실상 머릿속에서는 국민적 정당성을 상실했어요. 김종필이가 사라져도 벌써 사라져야 할 위인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런데, 그걸 밀어낼 만한 새 힘이 없어요. 그건 사실 노동자·진보진영·개혁진영의 몫인데, 그게 현실정치에 안 다가가는 거예요. 그 현실적 갭이 있고, 그 갭에 시민운동이 끼어 들었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진보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 일정한 병목지점이 있다고 봐요. 그게 보수정치의 벽, 지역감정의 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벽을 넘어야 한다는 당위는 있지만, 아무도 이 벽을 못 넘어요. 난 그 못 넘은 지점을 시민단체가 공공성을 가장해 깨버리자고 나섰고,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했어요. 우리가 반노동자 후보로 이강의를 지목했고, 반교육 후보로 함종한을 지목해서 떨어뜨렸어요. 적어도 국회를 저렇게 나둬서는 아무것도 불가능하다, 왜 악취가 나니까. 그리고, 10∼20년밖에 안 된 시민단체들이 모여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했어요. 이게 무리였어요. 그리고 합법성 논쟁을 겪고, 신문에서 보도도 안 되고 고민 고민하다 명동성당에 캠프치고 있으면서 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국민운동으로 가라(모두 웃음), 그런데 시민운동이 무슨 국민운동으로 가요. 그래서 국민적 대중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를 찾자, 그래서 학생·노동자·농민을 찾았는데, 청년과 학생은 상징적으로 찾았는데, 노동자와 농민은 결국 민중대열에 묻혀서 못 했어요. 그럼 어떻게 할 거냐. 이 상태라도 가자. 이건 실력의 한계예요.
정범구 : 고양시에도 총선연대가 있었어요. 낙선후보가 없어서 그런지 눈에 띄게 하는 일이 별로 없더라구요. 후보들 모아놓고 정책토론 하는 정도인데… 사실상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많은 정치개혁 과제 중 정당의 폐쇄적 공천구조를 시민에게 돌려주자, 여기에 집중한 거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바람이 있었다면, 공천반대 리스트야 그건 리스트를 발표하는 순간 파괴력을 갖고 오는 거고, 그 다음에는 바로 선거문화를 바꾸는 걸로 갔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태인 : 총선연대운동에 대한 기록이 남는다면 총선연대에 대한 평가는 이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벌써 10분밖에 남았는데 진보정치의 실험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십니까?
양경규 : 낙선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선거를 치렀던 당원들이 상당히 고무돼 있는 게 현실입니다. 21개 선거구에서 1.2%의 득표는 권영길 대표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의 전국 1.2%에 비하면 13.2%를 득표했습니다. 산술적이기 때문에 딱 맞는 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진보정치가 드디어 궤도에 오를 수 있는 최소한의 전초기지를 만든 선거가 아니었냐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확대발전시킬 거냐의 문제이죠. 그래서 총선연대의 이후 활동에 있어서 새로운 진보정치의 대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구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구요. 다만, 선거법에 근거 민주노동당은 당을 취소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래서 국민의 단결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선거법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할 계획입니다.
정대화 :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실험은 형식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시사하는 바 크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진보당도 서울에만 집중적으로 후보를 냈는데, 돈 없이 선거를 해도 1,000표에서 5,500표까지 득표를 했어요. 아주 열심히 또 맹렬히 선거운동하는 걸 보면서 민노당은 아니지만, 이 부분도 충분히 평가돼야만 합니다. 사실 민노당은 최용규 후보가 출마했던 울산 북구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투표율이 높지 않았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보수정치의 벽만 얘기할 게 아니고, 내실을 다지는 문제도 충분히 있는 겁니다. 실제 민주노동당이 알짜배기 노동자 정당으로 출발했지만, 적어도 한 사회에서 진보스펙트럼을 짜는 데서 외연을 확장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 경험을 다시 출발할 때 깊이 좀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정범구 : 80년대말 민중당의 과오에 대한 원고를 쓸 때 ‘진보정당조차도 지극히 중앙집권적 사고에 젖어 있다’고 말했어요. 일거에 중앙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설정 자체가 잘못돼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처럼 노동자 집중지역에서부터 시작한 실험은 아주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민노당 역시 의식화된 상층부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일산 갑의 경우, 기자 등 언노련 노동자, 사무노련, 지하철노조 등의 노동자가 많이 사는데 그들도 저 같은 사람이 출마하면 고민해요. 민주당이 보수당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중도좌파로 잡고, 한나라당을 중도우파+일부 파시즘 세력까지 계산할 때, 파시즘세력에게 의석을 내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저 같은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면에서 볼 때 민노당도 아직은 의식화된 상층부에 있지, 기층세력으로 내려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태인 : 지난 선거가 보수경쟁이었다면, 이번 선거는 진보경쟁, 개혁경쟁 이렇게 된 건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16대 국회에서 어떻게 정치개혁을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부겸 : 개정선거법에 의하면 정치지망생이나 신인은 선거개시 때까지 할 게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명함 하나 돌리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니까요. 그런데 현역의원들은 선거 전날까지 의정활동보고서, 홍보물을 무제한으로 돌릴 수 있어요. 이건 게임의 규칙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가 현역의원으로서 피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이처럼 불합리한 선거법에 대해서는 고칠 거예요.
정범구 : 왜 돈 쓰는 선거구조가 되나 살펴보니까 선거가 늘 주민동원 체제라 그렇더라구요. 주민들이 4년간 전혀 정치적으로 조직돼 있지 않다가 2주 동안 동원되는 체제로 가는 거거든요. 평소 정치불신, 아니 거의 무지 수준에 가까운 주민들이 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주체가 되니까 돈이 엄청 많이 들어요. 이런 시민들을 어떻게 정치조직화할 건가,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100인시민위원회, 전문가포럼 등과 같은 시민참여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부겸 : 이를테면, 당원등록제 같은 게 획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지구당 조직을 인수받을 때 당원이 1만 명이었어요. 확인절차를 거치면서 2,000명이 떨어져나가 8,000명이 당원으로 등록돼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거 딱 임박해 보니까 그 중 반 이상이 아무런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동원체제는 전망이 없어요. 그러나 저희가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을 해보니까 들어와 의견을 개진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현실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요. 더 이상 유권자를 대상으로 놔두지 않으려면 현실가능한 대안을 두고 이런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대화 : 그런 것도 다 밀실공천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거예요. 선거법 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돈에 관한 한 다 통제하고, 나머지는 다 풀어줘라’라고 주장합니다. 돈과 관련해 손톱만큼이라도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구속하고, 당선무효다 그러면 아마 깨끗한 선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통제형 선거법에서 참여형 선거법으로 바꾸라는 얘기입니다. 정치자금도 뒷주머니로 10원이라도 받으면 선관위가 즉시 조사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걸 중앙선관위와 당에 제시했는데, 아무도 안 받았어요. 이게 뭐냐면 선거부정 하겠다는 겁니다. ‘검은돈’ 받겠다는 거예요. 이게 되면, 선거법 87조 문제는 다 풀린다고 봅니다. 비민주적 정당구조의 핵심이 지구당을 죽여버리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당에 권한을 주고,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지구당 문제가 해소되면서 비민주적인 정당구조도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범구 :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당원도 동원체제예요. 문화적으로 이게 안 돼 있어요. 제가 이제 새로운 선거문화를 편다고 하니까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단히 좋다, 우리가 당원모집 공고를 내자, 그랬더니 그게 선거법 위반이더라구요.
양경규 : 공천이 당원들의 손에 있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치개혁의 출발은 공천제도와 지구당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기성정당이라는 게 낙선된 지구당 같은 경우는 4년간 노는 거예요. 특히 의석이 없는 진보정당은 뭘 해야 하는가, 다만 당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할 정당운동을 고민할 수 있어서 다행이구요. 그러나 한국정치의 큰 문제 중 하나가 1인 보스정치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계보화, 보스화돼 있는 구조라는 겁니다. 이건 척결됐으면 좋겠습니다. 당내에 좌·우파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대개는 중간 보스에 의한 권력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정범구 :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참여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은 프로그램 정당입니다. 또 소위 지구당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위원장 선거사무실이죠. 선거 때 잠깐 작동하고, 사실 4년간 휴지기죠. 따라서 선거사무실을 정치조직화해야 하구요. 정치학자, 정치평론가들이 금과옥조로 외우는 상향식 공천제도가 말은 맞지만, 그에 상응하는 인프라가 바뀌지 않는 한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시민권이 있는 사람의 정당활동은 보장돼야 하고, 시민운동도 정치활동이 보장돼야 하죠. 이런 기본이 확대된 후에 프로그램이나 노선에 동의하는 당원들이 움직이는 상향식 공천이라는 게 의미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금과옥조처럼 상향식 공천을 얘기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김부겸 : 지금 제기된 정당법, 선거법 전반의 문제가 16대 국회 초반에 이슈화돼서 시간 있을 때 합의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거 임박해서 얘기되면 왜곡되고 잘 안 될 수 있고, 또 이걸 정치하는 당사자들에게 맡겨둬서 잘 되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거예요.
정태인 : 46.2%의 정치신인들의 등장, 이 정도면 국회소집이 가능하거든요. 따라서 중요한 이슈들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에 임박하면 또 늦으니까….
정범구 : 저는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세력이 여야를 초월해 국민참여구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우리조차 패거리 싸움의 전위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언론의 무책임한 가십성 보도태도, 대안을 내놓는 보도가 아니라 싸움만 붙이는 보도가 문제라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정치개혁과 언론개혁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정대화 : 국민소환제를 하자고 총선연대가 제안하고 있습니다. 부적절한 의원이 생길 때, 공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비위를 저지르거나 비리를 저지를 때 지역구에서 국민소환제를 벌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될 것 같은데, 그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16대 국회 초반부는 정치개혁의 국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관계법 문제를 다루는 국회로 갔으면 좋겠고, 그걸 약속을 했으면 해요. 또 새롭게 당선된 정치인이 역시 모범적으로 의정활동 하더라, 이런… 모범의 확산 효과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양경규 : 저는 16대 국회로 들어가시는 분들이 민생·민중생존권 문제를 고민했으면 합니다. 현실적으로 국회에 들어가면 물들어갈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에서 초심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정범구 : 선거 끝나고 패거리주의가 약화된 지금 시점에서 우리 초선들이 여야를 넘어서 소신을 갖고 합리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각당의 상층부보다는 초선들이 대립보다는 화해, 토론을 하면서 합리적인 국회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이걸 김부겸 당선자께 제의하는 바입니다.
김부겸 : 전적으로 동감하고요. 시급하게 국가전략에 대한 바람직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남북정상회담 같은 중요한 아젠다가 정당별 당리당략에 의해 해석이 달리 되는 게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이런 수준에서는 진짜 위기의 한국사회라고 봅니다. 또 실제로 민중생존권이 절박하죠. 이런 부분들 전체에 대해 사회적 합의 등의 몇 가지 아젠다를 만들어 활동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구태여 멱살잡이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정태인 : 오늘의 토론을 지켜보니 왜 475세대들을 많이 공천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모두 475세대들인 것 같은데요.(모두 웃음) 앞으로도 두 분이 중심이 돼서 많은 개혁정치를 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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