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
784-2182.

인터뷰를 위해 제일 먼저 전화를 건 곳은 정형근 의원 사무실이었다. 그는 총선연대가 집중낙선운동 대상으로 선정한 22인 중 한 사람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정 의원은 선거기간 대부분을 인접 지역구의 타후보 지원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 있었다는 말일 게다. 어쨌든 그가 인터뷰를 하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부산행 비행기를 타겠다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막상 그의 측근의 목소리는 뜨악하다는 투다.

“지역구 주민들이 참여사회와의 인터뷰 사실을 알면 자신들의 선택에 오류를 범했다고 할 것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본지가 ‘적’이라도 된단 말인가. 소위 적과 내통한 사실이 알려지기를 꺼린다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는 또 “전국 최고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는 데 우리로선 아쉽다”며 “선거기간에 제대로 만나지 못한 주민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783-9811.

곧바로 한나라당 중앙당 사무실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한나라당 대변인 이사철 의원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그의 지역구는 이번 총선에서 낙선운동과 낙선운동 대상 인사와의 최대 격전지이기도 했다. 이사철 의원의 낙선운동 전담 마크맨이었던 환경운동연합 최열 총장은 여러차례 운동원들로부터 수모를 당하기도 했고, 한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끝내고 거리로 진출하려다가 운동원들에게 포위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적도 있다.

“이사철 의원은 대변인직을 그만뒀는데요.”

지역구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이사철 의원의 한 측근은 “지금은 쉬고 있는 중이라 연결해줄 수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488-0231.

다음은 김중위 의원 지구당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민주당 후보와 접전 끝에 낙마한 김중위 의원. 한 보좌관은 “불법 운동인데 무슨 평가할 게 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인터뷰냐”며 “적어도 『조선일보』, 『동아일보』라면 몰라도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잡지에 인터뷰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총선연대의 활동에 대해 “불법을 따져물을 것”이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0371-761-6954.

“가장 큰 패인은 낙선운동입니다. 낙선운동 때문에 떨어져서 마음이 상해 있는데 실례 아닙니까. 떨어뜨리고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함종한 의원의 수행비서의 말이다. “부패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전을 받은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입법활동하라고 뽑아준 것인데, 그 입법활동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은 월권 아닙니까.”

이 밖에도 박범진, 서정화 의원 등 여러 의원과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물을 먹고 말았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정대철 의원 쪽과 연결이 됐다. 그는 박범진 의원과 함께 중구지역에 출마했으며, 동시에 한 지역구에서 두 명이 낙선운동 대상자가 된 경우다. 그는 바쁘다는 이유로 직접 대면하는 것을 거절했다. 따라서 서면으로 인터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비상시국도 아닌데 시민단체가 법을 어겨서야”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에 대해 평가해 주십시오.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뜻을 모아 바람직한 정치문화를 조성하고자 노고가 컸던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 당사자들에게 충분히 해명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고, 또한 그 해명자료에 대해서 시민단체들이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에 선정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총선참여 시민연대의 구성원 선정에도 객관성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이번 총선에서 총선연대의 낙선자 명단에 들어간 인사들이 대거 탈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총선연대의 낙선자 명단에 들어간 인사들이 낙선한 것은 물론,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영향이 있겠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민의와 반대로 움직이는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세대교체에 대한 바람을 이번 선거를 통해서 표출한 것으로 봅니다.”

시민단체가 정 위원장님을 낙선 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부패 사건에 연루됐던 인사가 민의의 대변자로 국회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정 위원장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위원장님 개인이 낙선 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서, 그리고 부패 사건 연루자들이 국회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는 시민단체의 판단에 대해서 두 가지로 답해주십시오.

“우선 저는 (주)경성으로부터는 단 한 푼의 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부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표현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으로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낙선 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반론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검찰의 강압수사와 무리한 공소유지 등의 문제로 현재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져 심리중에 있으며, 1심 재판에 계류중인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저만이 공천반대와 낙선인사로 지목된 형평성 위배 문제 등을 지적하고 싶습니다.(*하지만 낙선자 명단에는 사법부로부터 무죄판결된 인사도 끼어 있고, 사면 복권받은 인사들도 포함돼 있음을 밝힌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고 법원의 판결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의 순수한 동기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시민단체가 초헌법적인 기관도 아니고 현 정국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시민운동을 해야할 비상시국도 아닌데 시민단체 스스로가 법을 어기면서 남에게만 법을 지키라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운동의 영향력은 어떠했다고 보십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영향력은 예상보다 컸다고 봅니다. 다만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대철 위원장님이 당선된 것은 어떤 이유였다고 보십니까.

“이번 선거는 지난 4년간 현역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심판이고, 아울러 4년간 원외에 머물었던 정대철이가 이제 일할 자세가 되었다고 구민들께서 믿어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른바 ‘경성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저의 억울한 사정을 중구민 여러분께서 이해하시고 면죄부를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중구민들의 높은 정치수준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향후 시민단체의 선거 관련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앞으로도 현역의원 및 국회의원 출마자들에 대한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권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최종적인 선택은 유권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2000/05/01 00:00 2000/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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