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운동 구후 시민운동의 진로
2000/2000년 05월 :
2000/05/01 00:00
정치개혁 네트워크 구상중
‘외줄 타기’.
1,000여개 단체가 한몸뚱이였다. 어느 한쪽의 이탈, 이완은 곧 추락이다. 팽팽한 긴장감. 총선연대는 100일동안 이렇듯 촉각을 곧추세웠다. 낙천낙선 대상자 명단을 발표할 때는 물론, 성명서 하나를 낼 때에도 회의를 거듭했다.
“나는 더 이상 못하겠소”. 전국의 대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부 인사들은 이렇듯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당긴 팽팽한 끈을 놓지는 않았다. 아니면 추락이기에. 그 결과 낙선운동 70%의 성공. 사실 총선연대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이 느끼는 더 큰 성공은 ‘연대다운 연대’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들은 무엇을 함께 할 것인가.
낙선운동은 시민들이 이끌었다
시민운동은 현재 애써 침잠하고 있다. 전국의 시민단체 관계자 150여명이 모여 지난 4월 20일 하룻동안 계룡산에서 몸을 풀고 동학산장을 떠날 때에도 차분히 그간 활동에 대해 평가만 한 뒤 이후에 대한 기약은 남기지 않았다. 낙선운동 대상자 중 70%의 낙선율이라는 ‘기적’같은 성과를 눈앞에 두고서도 이들은 되레 흥분을 삼켰다. 낙선운동의 성공이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이 결국 낙선운동을 살린 동력이었다.
올해 초 제기됐던 전국 개혁네트워크에 대한 논의는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총선연대의 조직 역량 그 이상의 힘으로 성취한 결과만 믿고 전국적인 개혁 연대틀을 곧바로 출범시킨다는 게 다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또 다양한 스펙트럼의 단체들을 상설적으로 묶는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낙선운동과 민주노동당을 위시한 민중운동 진영의 당선운동. 이 간극을 메우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우선 낙선운동의 소용돌이 그 심장부에 위치해있었던 관계자들로부터 선거혁명을 잠시 되돌아보자.
“총선연대는 한마디로 시민운동의 종합예술이었습니다. 부문·지역운동이 총망라됐고 모든 톱니바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어요. 이 연대운동의 성과는 21세기 한국 시민운동의 결정판이 될 것입니다.”
지난 4월 17일 녹색연합의 새 사무실에서 짐정리를 하다가 만난 총선연대 장원 대변인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총선연대 운동은 우리 시민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큰 족적을 남겼다. 게다가 총선연대는 과거 동강과 새만금, 특검제 관련 연대체 등에서 보여줬던 사안별 연대라기보다는 정치개혁이라는 큰 주제에 공감하는 단체들이 뭉쳤다는 점에서도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총선연대 정책 대변인)의 말을 들어보자. “과거 운동은 조직관리 차원에서 연방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여하는 단체들이 주권을 버리고 벌이는 운동이었지요. 하지만 총선연대는 연합운동입니다. 자기 조직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겁니다.” 사실 총선연대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총선연대의 수치적 성과보다도 정 교수가 말한 것처럼 ‘연대운동의 경험’을 가장 큰 의의로 꼽고 있다. 성명서에 이름만 달아두는 게 아니라 지역과 부문으로 나뉘어져 각 단체들이 자기 영역에서의 활동을 병행했다는 것이다.
정치개혁 운동 중심의 전국 네트워크 구상
문제는 그 이후다. 일단 총선연대처럼 메가톤급 규모의 전국적 연대체가 구성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오히려 정치개혁 과제를 중심으로 한 느슨한 연대조직체가 만들어질 공산이 크다. 가령 총선연대가 당면한 문제는 낙선운동 과정에서의 탈법성 시비에 대한 대응. 총선연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선관위의 조치가 예상된다”며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시민단체간의 선거법 개정운동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낙선운동에 대한 정치권과 선관위의 대처방식에 따라 정치개혁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연대운동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또 이 조직은 공익펀드 조성 등 시민운동의 저변 확대를 위한 활동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총선연대처럼 사회의 개혁적 이슈를 전국적 이슈로 확대하는 데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번 총선연대 활동의 또다른 시사점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상시적 감시의 필요성이다. 국회의원들의 감시를 위한 소규모 상근인력으로 구성된 ‘연락사무소’ 정도의 네트워크 조직. 사실 낙선운동은 정당간 정책적 차별성을 찾아볼 수 없는 한계에 기인하기도 했지만 총선을 정책선거의 장으로 이끌었다기 보다는 부패 전력과 관련된 인물 위주의 선거로 몰고간 측면도 있다. 이는 민중운동 진영이 낙선운동을 곱지 않게 보는 이유 중의 하나다.
따라서 지난해 한시적 기구였던 국감모니터 시민연대와 비슷한 형태의 상시적 연대틀도 모색될 수 있다. 평상시에 의원들의 투표행태 등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해 선거시기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기본 척도는 개혁입법. 실제 대전 총선연대의 경우 해산하면서 지역의 선출직 공직자 후보자군 600명에 대한 자료 공개 등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또 전남정치개혁시도민연대는 해산하지 않고 상설적 연대기구로 정치감시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운동의 또 다른 고민은 민중운동과의 연대다. 올 초 100개 단체들이 공동선언문을 통해 밝혔던 ‘전국개혁네트워크 구상’에서도 이같은 문제의식의 일단을 내비쳤다. 게다가 시민운동은 민중운동을 향해 “이처럼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탓하는 분위기이고,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낙선운동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감정의 골이 이번 총선과정에서 깊게 패였다는 말이다. 따라서 시민운동 진영 일부는 민중운동과의 최대 공약수를 찾아 적극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민중운동과의 연대 모색
조희연 교수(성공회대)는 “민중운동과의 연대가 딜레마”라며 “낙선운동이 인적 청산운동이기 때문에 총선 과정에서 시민운동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경제력 집중의 심화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낙선운동이 대중운동으로 가는 시점에서 민주노총 등 민중운동 진영측의 연대 지원을 ‘정중하게 거절’한 적도 있었다”며 “이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의 연대 복원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대화 교수도 이같은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그는 “낙선운동을 평가할 때 이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총선연대의 독자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황적으로 국민적 분노에서 출발했고, 정치권의 무대응과 언론의 협조가 큰 역할을 했다”며 “진보적 대안세력을 만들려면 민중운동과의 연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은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의 괴리를 초래했지만 이와 동시에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시민운동의 화두로 던진 셈이다.
총선연대와 관련 시민운동의 향후 전망을 내다볼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선거운동의 양상이다. 낙선운동은 공명선거운동과 정책선거 캠페인 등 1991년부터 줄곧 시민운동 진영에서 벌여온 운동 형태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선거개입인 셈이다. 이보다 한발짝 더 나아가 시민운동은 향후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후보자로 나서거나 또는 당선운동을 벌일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 진보정당과의 적극적 연대와 녹색당 등 창당에 나설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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