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결정난 비례대표제 대안찾기
지난 7월 19일 헌법재판소는 정치권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불러올 판결을 내렸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하 선거법)’에 따라 1인1표 투표에 의해 구성되던 비례대표 의석배분 조항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한 한 표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분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직접선거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며, 지역구 선거에서 여러 정당과 무소속이 경쟁하고 있는 실정에서 정당에만 한정해 배분한 것은 ‘평등선거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을 경우 정당명부에 투표하는 1인 2표제를 도입하거나 비례대표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한정위헌결정을 내렸다.

현행 비례대표 의석배분은 위헌

헌재의 판결에 따라 선거제도의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란 무엇인가. 선거제도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다수대표제(多數代表制)와 비례대표제(比例代表制)로 나눌 수 있다. 다수대표제는 한 선거구에서 상대적으로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제도이다. 1선거구 1인 선출의 현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는 득표율에 비례하여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다. 다수대표제 선거에서 1등 당선자를 제외한 다른 후보 지지표 모두가 사표(死票)가 되어버리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탄생한 선거제도다. 예를 들면, 각 정당의 전국적 지지도를 종합했을 때 득표 비율이 30%라고 한다면 의석 비율도 30%가 되게 하는 선거제도다. 역사적으로 1855년 덴마크에 처음 도입된 뒤 유럽에서 발전되어 현재 유럽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유럽은 비례대표제에 따라 다당제가 정착되고, 진보와 보수정당들이 공존하는 체제를 이뤘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구성을 정당 단위로 하여 비례대표의 명부(명단)를 제시하고 유권자는 정당에게 투표하는 방식을 말한다. 비례대표 명부를 구성하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세분할 수 있다. 정당 명부에 등재된 순서를 유권자 투표로 수정할 수 없는 고정식·구속식 명부(이스라엘, 덴마크, 독일 등)가 있고, 유권자가 개별 명부에 직접 투표하는 개방식·자유식 명부(오스트리아, 스웨덴, 북유럽 등) 가 있다. 명부를 작성하는 방식은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나, 선거구와 배분방식 등에 따라 나눈다면 대체로 이스라엘(네덜란드)식, 독일식, 스웨덴식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지난해 2월 선거법 개정때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99년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자 집권당 총재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실무를 담당하는 국회의원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추진했다.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독일식’에서 ‘일본식’, ‘일본식’에서 ‘유럽식’으로 춤을 추다가 결국은 ‘일본식’에 가까운 안이 최종안으로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거법 개혁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특히, 어떤 지역 출신 의원인가, 지금 몇 선 의원인가, 현역인가, 아니면 지구당위원장인가에 따라 선호하는 선거제도가 달랐다. 그러나 이렇게 춤추던 선거법이 자민련의 당리당략에 따라 결정되고 말았던 것이다.

헌법재판소 판결 뒤에도 정치권은 아직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위헌판결이 난 현 선거법을 개정하기 위한 회의를 열기보다 자기 당에 유리한 것만을 취하며 당리당략에 따른 임시방편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헌재판결에 따라 새로 만들어질 선거법은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짜깁기된 누더기법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일정과 내용을 추론해 보면 첫째, 10월 재·보궐선거 전에 개정한다면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 기탁금 2000만 원을 1000만 원 정도로 낮출 가능성이 있다. 둘째,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전체의석의 10%선을 배정하기로 되어 있는 비례대표제를 오히려 폐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올 10월 또는 내년 상반기 중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관철하거나 광범한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2004년까지 선거법 개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 취지가 퇴색되고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또다시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은 왜곡될 위험이 매우 크다.

시민사회단체, ‘정치개혁국민위원회 만들자’요구

시민사회단체는 몇 년 전부터 투표에 참여한 전체 유권자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많은 사표를 양산하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1인 2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촉구해 왔다. 대다수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비례대표제도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소선거구의 대표성을 강조하는 “독일식 1인 2표의 정당명부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민교협 등의 단체들은 ‘독일식 정당명부제 관철을 위한 연대기구’ 구성을 공식 제안하고 정기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을 추진할 태세다. 당리당략과 정파적 이해를 뛰어넘는 개혁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장 직속으로 정치인, 선거관리위원회,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정치개혁국민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 위원회가 만들어질 경우 이 기구에서 마련한 정치관련법은 국회에서 수정 없이 찬·반 표결하여 처리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가 모처럼 마련한 개혁법안을 훼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1년 전에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획정한 선거구 안을 마음대로 고쳐버린 우리 국회가 아닌가. 3당 대표, 원내총무, 국회의장은 이러한 점을 헤아려 정치개혁국민위원회를,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입법이 가능한 준입법권을 가진 기구로 만드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에 버금가는,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수십년 앞당길 주춧돌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정치권의 이해다툼에서 벗어나 있는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정치권이 하자는 대로 둬서는 정치개혁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정치개혁국민위원회란 무엇인가

(가칭)정치개혁국민위원회는 참여연대가 정치개혁을 위해 제안한 기구로 국회의원만으로 구성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별도로 국회의장 직속으로 정당, 선거관리위원회, 시민사회단체 3자가 동수로 참가해 초당적으로 구성하는, 준입법권을 가진 기구를 말한다.

이 기구는 15대 박준규 국회의장 당시에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정치개혁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한 선례가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동의한다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정치개혁국민위원회는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국회법 등의 개정안을 마련하고 제정법안과 그 이유, 기타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보고서를 함께 작성하여 2002년 2월 말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게 될 것이다.

위원회 구성안

① 위원회는 3인의 공동위원장과 30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② 위원은 다음의 사람으로 구성한다.

ㄱ.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하여 선임하는 국회의원 10명

ㄴ. 선거관리위원장이 선임하는 선거관리위원 10명

ㄷ. 현재 시민단체의 임원의 직책을 가진 사람으로서 정치개혁에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 5개 이상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전문가 10명. 단, 국회의장과 선거관리위원장이 동의하는 사람

③ 위원회는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김두수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2001/09/01 00:00 2001/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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