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크린 밖으로 나온 이유
2001/2001년 09월 :
2001/09/01 00:00
영화배우 안성기
맨발에 반바지를 입은 그가 문을 열었다. 이런 차림의 ‘국민배우 안성기’를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는 미리 마련해놓은 주스를 권하고 때마침 밖에서 조금 더 놀다오겠다고 전화를 걸어온 둘째아이에게 치과에 가야 하니 1시간 후에는 들어오라고 특유의 조용한 말투로 다정하게 말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걸면 용건을 남겨달라는 자동응답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매니저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최근 MBC와 연예제작자협회의 갈등에서 드러나듯이 갈수록 복합산업이 되어 가는 대중문화계에서 그와 같은 호흡을 지닌 연기인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베트남어과 출신이 바라보는 베트남문제
그를 만나면 제일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는 베트남어를 전공했다. 그후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인 <하얀 전쟁>에 출연했다. 그리고 얼마 뒤 본격화된 ‘베트남전 바로 보기’와 베트남에 대한 사죄를 위한 모금운동, ‘우리는 용병이었다’는 고백과 그에 대한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거센 저항.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는 영화얘기로 에둘러 말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런 저런 시각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제까지 너무 한쪽 시각만 강요당해온 것이 사실이잖아요.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역시 베트콩 잡는 반공적 관점의 영화들이 주된 흐름이었는데, 다른 시각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현재 베트남에는 ‘장동건 붐’으로 대표되는, 한류(韓流)라는 새로운 흐름이 대중문화를 휩쓸고 있다. 그렇게 기묘한 화해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같은 대중문화 종사자로서 그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 사람들, 겉으로는 한국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지 몰라도 아마 상처는 계속 남아 있겠죠. 표출이 안 되고 있을 뿐이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우리가 노근리 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요. 지금의 베트남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고 노인이 되어서야 조금 풀릴 수 있는 문제일 겁니다.”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왔고, 누구보다 먼저 ‘국민배우’로 불리는 영예를 거머쥐기도 했던 그. 유니세프(국제아동기금) 명예 홍보대사 활동을 제외하고는 영화 밖으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깔끔한 자기관리와 가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지극히 평탄한 길을 걸어온 듯 보였다. 그런데 그의 영화이력을 가만 살펴보니 적지않게 ‘시대’가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를 다시 시작한 뒤(아역배우 출신인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빈부 격차와 같은 산업화의 그늘을 보여주는 <바람불어 좋은 날>이나 <꼬방동네 사람들>같이 사회성 있는 작품들을 했죠.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주된 시각과 다른 것을 보여주는 영화를 가능하면 택하려고 했어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찍을 때에는 검열에 의해 시나리오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내용이 뜯어고쳐져 처음 기획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돼 가는 걸 보면서 젊은 혈기에 “이렇게 영화를 해야 하나” 하는 울분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영화의 주된 소비자들인 젊은층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더 큰 걱정이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너무 가벼워졌어요.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되짚어보기보다는 그냥 영화 한 편 보면서 재미나게 웃고 기분 전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말은 내가 했어야 하는 건데 문성근 씨한테 (선수를) 뺏겼지만, ‘아무튼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이 만듭니다’라는 말이 맞는 거예요.”
그의 우려대로 최근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영화들은 그저 마음껏 웃게 하는 코믹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이전부터 영화계 일각에는 ‘언제까지 한국 영화는 스크린쿼터(의무상영제)라는 우산 아래 있을 것인가’라고 비판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인 그는, 이 제도는 유지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올해 한국영화 성적이 좋았다고 해도 내년이나 내후년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지금 상황만 보고 흔들린다면 결국 정책이 왔다갔다할 수밖에 없어요. 어느 국가나 할리우드 영화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지면 직배사들이 싸구려 영화까지 끼워팔아 전체 극장의 상영일정을 손아귀에 넣어버리거든요. 멕시코 같은 남미 국가들이 다 그런 수법에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스크린쿼터제가 있기 때문에 국내 영화 제작자들이 제작의욕을 가질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쿼터제는 단순한 (한국영화상영) 일수만이 아니라 영화인들에게는 버팀목이에요.”
스크린쿼터 지키기, 선배인 나의 몫
동강을 지키기 위한 밤샘농성장을 방문했다기에, 또 최근 여야 개혁파 의원들과 각계 인사들이 참여한 ‘화해전진포럼’ 에 참여했다기에 그 동기를 물었다. “스크린쿼터 문제로 농성할 때 힘이 돼줬던 사람들이 요청해서”였고, “영화 정책에 대한 의견을 얘기할 수 있겠다 싶어서” 참여했을 뿐이란다. 더 나은 영화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밀고 다니는 것이라고. 그런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후배들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려다 슬쩍 말머리를 돌린다.
“그건 저 같은 선배들의 몫이죠. 거기에 시간을 뺏기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기보다는 그저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9월 8일 개봉되는 영화 <무사>에서 그는 오랜 세월 전장을 누비며 특유의 지혜와 생존방식을 터득해 무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 인물로 나온다고 한다. 현실의 그도 동료들에게는 이미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가 있어 한국영화가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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