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시민후보로 간다
2001/2001년 09월 :
2001/09/01 00:00
기존 정당후보에 도전장 낸 시민정치 네트워크
“메이지유신과 같은 헤이세이(平成)유신의 물결이 고오치현에서 미야기현으로, 그리고 미에현, 나가노현, 도츠기현으로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시대의 조용한 유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치바현의 차례입니다. 치바현에서 유신이 일어난다면, 그 기세는 더욱 더 힘을 얻어, 일본 전국에서 유신이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이익집단도, 노동조합도, 그 어떤 정당도 지원해주지 않지만, 저에게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치바현 지사인 도오모토 아키코 씨의 말이다.
지난 3월 25일 치바현의 지사 선거에서 무당파층을 대표하는 입후보자였던 도오모토 씨가 기성정당 후보들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NGO가 중심이 된 시민들의 네트워크로부터 입후보 요청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참의원 직을 버리고 출마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갓테련(제멋대로 선거운동을 하는 소모임)만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랜 지기이자 시민참가형 선거운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야기현의 아사노 지사에게 상담을 구했다. 아사노 씨는 그녀에게 “정치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이번 선거의 의의에 관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라는 조언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입후보할 마음이 있다면, 중요한 것은 정당이나 이익집단으로부터 추천이나 지지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시민의 입장에 서십시오. 왜냐하면, 선거운동 방식이 바로 지사가 된 후의 정치스타일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당파로 출마를 결심한 것은, 자유롭고 대담하게 자치단체 정치를 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사노 씨의 말은 도오모토 씨가 입후보를 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시민네트워크, 시민참가형 운동의 동력
일본 시민사회에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시민참가형 선거운동이란 어떤 것일까. 일본 시민참가형 선거운동의 첫 번째 특징은, 정당들이 일방적으로 선거의 틀을 짜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즉, 정당에서 내세우고 싶은 사람이 입후보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사람을 입후보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운동도 정당 중심의 선거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권자들은 입후보자로부터 돈을 받기는커녕 자신이 지지하는 입후보자에게 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입후보자에게 요구한다. 따라서 시민들의 선거운동 참가는 지역사회의 정치적 일거리를 누군가에게 맡겨버리는 식의 청부형 참가가 아니라, 정치인의 행동양식을 시민들이 만들어내고 조정한다는 ‘시민들의 자기통치능력 향상’이란 관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시민참가형 선거운동의 두 번째 특징은, 시민 각자가 정당과 소속집단의 일원이라는 한계를 넘어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선거운동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떤 집단이나 NGO에 소속되어 있는지 밝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러한 원칙은 NGO활동의 행동원리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NGO활동을 ‘시민활동’이라고 부른다. 시민은 “자신의 소속집단으로부터 탈피하여 개인으로서의 자유의지를 갖고 발언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또 시민활동은 “시민의 자발적인 참가와 지원에 의해 이루어지는 활동으로서, 사회적 과제의 해결을 향해서 자주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직적이고 계속적인 활동”이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시민참가형 선거운동은 NGO활동의 행동원리가 선거라는 정치의 장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결과적으로 시민참가형 선거운동은 NGO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의 연대 원리 또한 NGO활동의 연대원리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로 네트워크형 연대원리가 그것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자율성, 개인과 조직 사이의 자율성, 조직과 조직 사이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 연대의 형성, 즉 시민 각자의 자발적인 의사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시민참가형 운동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시민참가형 운동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나가노현 지사선거에서 다양한 NGO들이 모여 이룬 나가노현 시민 네트워크는 현직 부지사의 출마에 대항해 작가이자 고베 지역 주민투표운동에서 활동했던 다나카 야스오를 후보로 내세웠다. 그는 비교적 이름 있는 인사여서 선거는 일찍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부지사의 선거 사무장은 자신만만한 말투로 이렇게 얘기한다. “다나카 씨가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저희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3400개의 단체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투표함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다나카 후보의 대승리였다.
나가노현과 치바현 선거의 공통점은 승리한 시민 후보들이 모두 그 지역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과 선거운동원의 과반수가 그 지역 출신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였다는 점이다.
시민 대 정당의 싸움
최근 선거에서 이처럼 기성 정당 중심의 선거질서를 파괴하는 시민후보의 승리가 잇따른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지역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시민참가형 운동의 승리는 ‘생활가치관의 변용’이라는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회사 혹은 집단이라는 것을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국민이 아니라 글로벌한 가치를 구현하는 것에서 찾고자 하는 유권자층의 생활가치관의 변화가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시민의 변화된 생활가치관을 사회적 행동으로 드러내는 제도적 거점 노릇을 하는 것이 NGO이다. NGO는 시민들에게 각자가 갖고 있는 자원과 의사가 사회적인 힘이 되어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유효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정치적으로 무력감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시민참가형 선거운동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는 것이 아닐까. NGO활동의 경험을 통해 시민들은 각자의 의사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는 한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힘으로 모아질 때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시민참가형 운동의 승리 배경에는 조직과 집단에 의한 수직적 정치 동원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반면, 자발적인 의사를 갖고 정치활동에 참가하는 시민이 늘어나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치바현의 선거는 개인 대 집단의 싸움, 시민 대 기성정당과의 싸움이었다”고 한 도오모토씨의 평가가 치바현에만, 그리고 일시적으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시민참가형 선거운동은 정치인과 관료와 업자들이 독점해온 공공영역에 공과 사의 새로운 만남과 협동 원리를 만들어내는 NGO활동의 하나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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