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정치를 꿈꾸는 갓테련 사람들
2001/2001년 09월 :
2001/09/01 00:00
일본 가와사키시장선거에 출사표 던진 가나가와네트
최근 시민단체의 지방선거 참여를 놓고 논쟁 중이다. 일본 가나가와네트에서는 올 가을 가와사키 시장선거에 '시민후보'를 내기로 했다. 지난 8월 4일 현지에서 직접 본 일본 시민운동진영의 지방선거 참여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1시간쯤… 속성열차 SKY LINE을 타고, 도쿄에서 내려 다시 두어 번 전차를 갈아타고 내린 곳은 가와사키(川崎)역이다. 인구 120만의 세계 최첨단 기술개발도시로 알려진 가와사키시(川崎市). 비교적 젊은층이 많이 살고, 소득수준과 학력수준이 높다는 지역. 메이지(明治)시대 때 아시오 동광산에서 흘러나온 폐광물질 때문에 대기오염 피해가 심각했고 그에 따른 천식환자도 많았다는 곳. 그러나 지금은 혁신자치체운동의 성과 때문인지 서울보다는 훨씬 공기가 맑은 듯했다.
가나가와네트(대표 마타키 교우코, 又木京子)를 비롯한 일본 시민운동진영에서는 꾸준히 지방선거에 도전해왔다. 최근에는 동경도의회 선거에 6명이 입후보해 전원 당선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40대 여성들이 95% 이상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는 지역네트워크운동은 말 그대로 아래로부터의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장이다. 특히 그들은 “정치는 생활의 도구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지방정치에 진출하기 때문에 기성정당이 가진 당파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시민의 정부’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8월 4일 오후 2시 가와사키 시내의 한 건물. 20년 간 정보공개운동을 하다 ‘시민 후보’로 가와사키 시장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오쿠츠 시게키(奧津 しげき, 41세) 씨의 시정정책을 듣기 위해 500~60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시민후보’ 추대 행렬
“저는 동경출신이에요. 하지만 가와사키시에 복지시설과 탁아시설이 많아 여기에 살기로 결정했죠. 20년 간 낡은 병원에서 진료하면서 또 중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건 정치는 고이즈미처럼 인기몰이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저는 이번 가와사키 시장이 시민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닌, 우리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뽑았으면 합니다.” 아베 토모코 씨(의사, 중의원)의 말이다.
티셔츠에 샌들, 청바지 차림의 한 40대 남자가 연단에 섰다. 그는 시민들이 왜 지방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 설파했다. 20대 젊은 여성은 “오쿠츠 씨가 20년 간 줄곧 정보공개운동을 해온 것,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전화모임’에서 활동한 것” 등의 약력을 열거하며 그가 시장으로 추대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올해 74세를 맞이했다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아오야마대 명예교수)은 자기가 쓴 정보공개 관련 책을 읽고 20년 간 정보공개운동을 해오던 오쿠츠 씨가 이번 선거에까지 나오게 됐다며 혹시 그의 인생을 자기가 망친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터뜨렸다.
10여 명이 격의없이 찬조연설을 했다. 옆 동네사람에서부터 옛 은사까지, 정장차림에서 청바지 운동화까지…. 그후 갓테련(제멋대로 선거운동을 하는 소모임) 행렬이 이어졌다. 환경을 생각하는 모임, 20대모임, 교토지방사람들의 모임, 정보공개포럼, 가와사키를 달리는 모임, 참가형복지를 만드는 모임, 남과 여의 자립을 생각하는 모임, 자주보육의 모임 등등. 이들은 모두 연단에 피켓을 들고 나와 오쿠츠 씨의 입후보를 환영했다.
관성에 빠진 시를 개혁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
“대부분 시장선거 입후보는 기자클럽에서 공포하는 게 관행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여러분 앞에서 시장선거 출마를 공식선언합니다. 그동안 가와사키시에서는 시당국과 시민들이 서로 짝을 잘못 찾는 정책이 남발된 것 같습니다. 저는 시민이 배제되는 수동적 선거는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나눠드린 정책만들기 팸플릿을 보시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서로 아이디어를 모아나갔으면 합니다. 모든 경계를 허물고 시의 발전을 위한 정책이 도출되는 선거가 되도록 합시다.” 오쿠츠 씨의 출마연설이다.
그 자리에서 ‘오쿠츠 씨의 선거를 위한 모임’(공동대표 오리하라 사치코)은 선거과정에서 일할 시티즌 캐비넷(Citizen Cabinet)을 임명했다. 오리하라 대표는 “오쿠츠 씨의 공표를 통해 드디어 시민이 주체가 되는 선거운동이 시작됐다”며 “그동안 관성에 빠지고 경직화된 시를 개혁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고 호소했다.
10월 21일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들은 가와사키 시민들이 느끼고 있는 문제점들을 찾아 선거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시 예산의 1/4이 공무원 인건비로 지출되는 점, 5260억 엔이 투자되는 중간고속도로 사업계획의 현실화 문제, 지하철과 마을을 잇는 커뮤니티 버스(Community bus) 설치 등을 골자로 시민 위주의 정책들을 시민과 함께 마련해갈 방침이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피켓들 사이로 고개를 내민 100여 명의 사람들과 가와사키 시장 선거에 나선 ‘시민후보’ 오쿠츠 씨.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사이에 그들은 환히 웃으며 ‘시민의 정부’ 건설을 다짐했다. 올 10월 본격적인 선거레이스가 시작돼야 당락을 알 수 있겠지만 시민과 손잡고 출발하는 ‘시민후보’ 선거운동은 정감 있고 따뜻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라 내심 우리도 저런 선거운동을 경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일었다.
20년 간 정보공개운동하다 가와사키 시장선거에 출마한
오쿠츠 시게키
시민의 감각 잊지 않는 시장 되겠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동기는 무엇인가.
“일본에서 시장선출의 가장 큰 기준은 행정능력 여부다. 그러나 21세기형 시장은 행정능력뿐 아니라 지역 내 수많은 자원(시민운동가, 주민, 기업, 관료 등)을 잘 조직해 비전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의 시대엔 특정정파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경계를 넘어’ 상보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직접적 계기가 된 건 전국 80개 자치체에 정보공개운동에 관해 강연하러 다녔는데 해당 자치체의 리더에 따라 자치체의 질이 결정된다는 걸 알고 상당히 놀랐다. 어떤 자치체는 웹사이트에 시장, 지사의 교제비가 어디에 쓰이는지 공개돼 있었고, 기후현의 경우는 사업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웹사이트에 게시해놓고 시민들의 의견을 받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가와사키시는 문제점이 많다고 느껴 출마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시민운동가의 정치진출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이 있다. 20년 간 정보공개운동을 해온 시민운동가로서 시민단체의 선거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시민운동진영도 정치진출에 대해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치를 시민운동의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훨씬 쉽게 풀릴 수 있다. 정치가 도구로서 충분한지 아닌지 따져본 후에 시민운동의 지혜나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판단되면 적극 활용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주요 공약은 무엇인가?
“가와사키시에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 따라서 자녀양육 문제가 심각하다. 그들에게 도움될 만한 정책을 고민중이고, 시의 심각한 재정적자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도 당면한 과제다. 그밖에 시민들과 함께 쾌적한 도시만들기 사업 등을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는 일 등이 있다.”
정책발표회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반응을 보였는가?
“시장에 대한 기존 관념을 깨부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내려고 했고, 정책발표 프리젠테이션이 기존출마자들과 달라 몇몇 보수언론을 제외하고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앞으로의 포부를 밝힌다면.
“운동가로서 언제나 시민의 감각을 지닌 정치를 하기 위해 프로 정치인들과는 일정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보공개와 시민참가를 제도화하고 의회의 기능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NPO와 NGO가 큰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시장당선이 된다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으로서의 소임이 끝나면 다시 NPO활동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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