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P 8% 기부하는 미국 시민의 힘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1999년 3월 17일∼5월 23일까지 두 달 남짓 나는 미국 Eisenhower Exchage Fellowship의 초청으로 미국의 여러 도시, 여러 시민운동관련 단체·기관을 방문했다. 따져보니 12개 도시, 130여 개에 이르는 기관, 150여 명에 이르는 인사들을 방문했다. 놀러가는 줄 알았더니 강행군에 코피가 터질 지경이었다. 진짜 코피는 터지지 않았지만 피곤 때문에 지병이라 할 요산통풍이 도져 고생하였다. 그러나 고생은 그만큼 보람을 수반하였다.

시민운동이랍시고 하게 된 지난 5년동안 여러 가지 궁금한 점도 많았고 고민도 적지 않았다. 다른 나라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했다. 많은 기관·사람을 방문하면서 부러운 것도 많았고 배울 것도 많았다. 그러나 인간세상이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도 적지 않았다. 많은 미국 운동가들이 우리와 같이 절망하고 고민하는 것도 보았다. 어쩌면 이미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또아리를 튼 사회에서 변화란 더 어려운 법이다. 역설적으로 그 사람들의 절망과 고민의 모습이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어쩌면 긴, 그러나 이 짧은 기간동안 내가 무엇을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그런 장님이라도 자신이 만진 것을 자꾸 이렇게 남에게 이야기하다보면 코끼리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1999년 3월 17일

베링해 날짜변경선을 지나며

얼마만인가. 가끔 외국으로 나갈 기회는 있었지만 회의만 참석하고 허겁지겁 돌아오곤 했다. 이렇게 두 달간이나 그것도 아내와 함께 외국에서 지낼 수 있게 되다니! 1993년 영국 런던, 미국 보스턴을 거쳐 2년만에 되돌아와 그동안 ‘일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댄 것이 벌써 7년. 1996년 1월부터는 아주 상근을 했으니 만 3년하고도 2개월을 참여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밤낮을 지샌 것이다. 그동안 참여연대가 한국사회에서 제법 영향력 있는 단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게 노심초사하였으나 그것보다 나 자신이 세상과 부닥치면서 느끼고 보고 배운 것이 또 얼마만한 것인가를 생각하면 반드시 밑진 장사는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다. 세상은 언제나 공짜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를 하는 동안 아내는 어떠했을까.

미국 공보원의 선미라 씨가 Eisenhower Fellowship을 제안했을 때 1분1초를 다투는 바쁜 스케줄에 2개월을 빼낸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거니와 아이젠하워 전 미국대통령에 대해 별로 탐탐치 않은 생각도 있어 마음 내켜하지 않았다. 집필을 거의 끝낸 『세기의 재판』의 한 장(章)에 원폭기밀 스파이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로젠베르크사건이 등장하는데 그의 마지막 간절한 재심청구와 사형면제 요청을 거절한 아이젠하워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참으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 시민운동 할 줄 알았더라면 여러 나라의 그것을 좀더 자세히 더 보아 둘 걸 하는 때가 있었다. 더구나 지난 몇년간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다른 나라의 경험과 사례가 마치 마른 스펀지처럼 눈에 쏙쏙 들어오리라. 희망사항이지만.

1999년 3월 17일

드디어 뉴욕의 JFK공항에 도착했다. 활주로 곳곳에는 며칠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쌓여 있다. 날씨는 이미 따뜻해져 그 잔설이 하루 이틀을 버티기 어려울 듯 보였다. 기다리고 있던 보스턴 코치(Boston Coach) 기사를 만나 곧바로 목적지인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필라델피아 시내로 들어서자 해골처럼 골조가 드러나 있는 거대한 공장 건물잔해들이 가끔 눈 안으로 들어왔다. 영고성쇄는 한 인간, 한 회사, 한 사회, 한 국가 그 어느 곳에서나 있게 마련이다. 부시 행정부 때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에서 패배하고 있었고 심각한 무역 적자와 고실업사태 때문에 거의 몰락 지경에 이르렀건만 지금 다시 호황과 성장을 누리고 있으니 IMF위기를 아직 채 벗어나지 못한 우리가 제대로 배워야 할 일이다.

1999년 3월 18일 목요일

Eisenhower Exchange Fellowships(EEF)

EEF를 방문하니 내게 금빛 열쇠를 하나 주었다. 언제든지 EEF건물에 들어올 수 있는 EEF 가족이 된 상징이라고 했다. 재정담당자가 앞으로 두 달 동안 내가 쓰게 될 경비 총 11,000달러(약 1,300만 원) 가량을 지급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아무런 조건없이 대주고 여행시키고 많은 기관·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 그냥 신기할 뿐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세계 각국의 장래성 있는 중견 인사들을 데려다가 두 달간 교육시키고 이들이 돌아간 다음에도 계속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는 것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보람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참석자들 가운데는 이들이 자랑하듯이 정부수반이 6명이나 되고 장관급 이상으로 승진한 사람이 96명이나 된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점을 증명한다. EEF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한 직후 그 주변인사들이 아이젠하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지금과 같은 일을 하는 재단을 만들기로 결의함으로써 창립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모인 돈을 기초로 하여 기부금이 만들어지고 이 돈은 1994년 19,900만 달러, 1996년 26,700만 달러, 1998년 29,900만 달러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8년 한해 모금액이 395만 2,046달러에, 사용액이 277만 1,037달러다. 흑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엄청난 거액을 지원해 주는 것에 대한 도덕적 부채감을 솔직히 느꼈다. 그것이 그쪽에서 바라는 결과일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쪽을 도와줄 일이 있을 리 만무다. 선의로 받아들이고 내 목적에 충실할 뿐이다.

3월 19일 금요일

America Friends Service Committee(AFSC)

당일 일정을 알려주는 블루시트(blue sheet)에 따라 약속장소인 America Friends Service Committee(AFSC)를 방문했다. 건물안 1층에는 안내원이 어떤 일로 찾아왔는가 물었다. 만날 사람을 얘기하고, 아직 10시밖에 되지 않아 주변의 자료를 챙기고 읽은 다음에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주변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어 이것 저것 주섬주섬 챙겨 의자에 앉아 퀘이커교의 역사와 전설적 지도자 윌리엄 펜, 그리고 AFSC의 활동상에 대해 밑줄을 그어가며 부지런히 읽었다. 한 브로슈어는 먼저 ‘퀘이커’라는 말을 설명하고 있다.

“퀘이커는 전세계 21만 5,000명의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회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 1650년 영국 조지 폭스 지도하에서 이들은 구도자, 진실을 찾는 구도자 등(Seekers, Seekers of the Truth, Friends of Truth or Children of Light)으로 불렸다. 크롬웰 왕정하에서 수없는 핍박에도 이들은 초기 기독교정신을 사로잡은 이 종교의 단어를 널리 퍼뜨렸다. 폭스가 법정에 끌려가 그의 ‘비정통(?) 신앙’에 대해 대답하는 과정에서 용감하게 자신이 그 종교를 신봉한다고 시인해 오히려 판사를 떨게했다 하여 퀘이커(Quakers)라 불리게 됐다.”(Quakerism-a religion meaningful for today?s world라는 브로슈어에서)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길을 찾는다.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방황하고 혼란에 빠지고 고민한다. 그것이 종교이기도 하다. 퀘이커 교도가 구도자라고 불렸다는 얘기도 바로 그러한 길을 찾는 사람들이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무런 의식도, 격식도 없이 단지 ‘내부의 빛’(Inward Light)을 찾기 위해 단순하고 겸허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호감이 간다. 함석헌 옹도 이러한 점에 매혹되어 퀘이커 교도가 되지 않았을까.

안내원은 나의 몇가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변해 주었다. AFSC는 퀘이커교의 배경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였다. 100명이 넘게 상근자로 일하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퀘이커 교도는 20%밖에 되지 않으며 형사사법정의, 경제정의, 이민자와 난민의 권리, 레즈비언·게이의 권리, 인디언의 지위, 소수민족 또는 원주민의 권리,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는 인권문제, 여성인권, 탈군사화 문제 등이 여기서 벌이고 있는 사업들이었다. 특히 빈곤퇴치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정의운동, 평화
1999/07/01 00:00 1999/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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