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개혁과 공평과세
1999/1999년 07월 :
1999/07/01 00:00
자영자 소득파악, '미션 임파서블'인가?
우리사회의 조세불평등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에 수직적 불평등, 그리고 자영자와 봉급생활자 사이의 수평적 불평등이 중첩되어 있다. 97년 12월,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보되면서 금융실명제는 껍데기로 남게 되었고, 3만 5,000여 명 고소득자들이 물어야 할 2조 원 가량의 세금부담을 결국 전국민이 대신 나눠 부담하게 되었다.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실시될 당시에는 부부합산 이자소득이 연 4,000만 원 이상인 경우 40%의 세율이 적용되었고, 그 이하는 15%였다. 그러나 이 제도가 유보되면서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이자소득세가 일률적으로 22%로 조정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세부담이 7% 이상 증가한 것이다.
또한, 납세자의 약 50%인 자영자들에 대한 소득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세금, 국민연금, 의료보험료 산정기준을 온국민이 불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갈등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영자들의 과세표준 현실화율은 52.2% 정도이다. 특히, 현금거래 비중이 높은 음식·숙박업은 단 30.4%에 불과한 실정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번 돈의 30%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고 있다는 것이다. 봉급생활자들의 소득이 100% 노출되는 것과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국민연금 확대실시과정에서 이 문제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자로 알려진 룸살롱 주인, 주유소 사장, 변호사, 한의사, 연예인의 국민연금 신고소득은 겨우 120만 원에 불과했다. 직장인들의 평균신고소득이 140만 원이라는 사실과 비교할 때 상황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자영업자들에게도 불만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소득이 훨씬 줄었는데에도 국민연금 신고 권장소득은 훨씬 높게 책정되었고, 갑작스런 지역의료보험료의 인상도 억울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엄청난 갈등과 혼란이 비단 올 한해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영자들에 대한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한 매년 똑같은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영자들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나아가 조세형평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조세제도개혁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고,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들도 조세형평 실현을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최근 참여연대와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함께 벌이고 있는 조세개혁운동의 6대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자영자 소득파악과 조세형평실현의 가능성을 타진해보자.
국민이 대신내는 부자들의 세금 2조 원
현재 자영자들의 소득은 원칙적으로 ‘신고’를 통해 파악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성실하게 자신의 소득을 신고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우선 세제상의 문제로는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및 간이과세제도’를 지적할 수 있다. 영세사업자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과세특례제도와 간이과세제도는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세금계산서 수수질서를 교란시키고 소득파악을 어렵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탈세를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셈이 되고 말았다. 이미 영세사업자를 위해서는 연 매출액 2,400만 원 이하의 경우 ‘소액부징수제도’가 있어 부가가치세를 면세시켜주고 있으며, 이들이 과세특례자의 88.9%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과세특례제도를 폐지할 경우 이에 적용되는 사람들은 지금의 약 10% 정도다. 그리고 이 10% 중 상당수가 고의로 매출액을 누락시켜 과세특례자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따라서 탈세를 제도적으로 방조하는 과세특례제도와 간이과세제도는 원칙적으로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 단, 즉각적으로 폐지할 때 발생할지도 모르는 혼란과 예기치 못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간이과세제도는 바로 폐지하고 과세특례제도는 기준액을 낮추는 방안이 함께 검토되고 있다.
탈세불감증도 뿌리뽑아야
그러나 세제상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실시라고 할 수 있다. 1997년말, 국회에서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보됨으로써 소득의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납세의 ‘빈익부(貧益富) 부익빈(富益貧)’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부합산 연평균 이자소득 4,000만 원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던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유보됨으로써 서민들은 그만큼의 세부담을 더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금융실명제는 껍데기만 남았다. 93년 이후 기존 가·차명 계좌의 99%가량이 실명전환되었지만, 다시 차명거래가 허용됨으로써 또다시 자금을 분산·은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은행 등 금융기관은 금융거래자료를 국세청에 신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소득파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렸다.
결국 금융자산의 규모와 거래동향이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영자 소득파악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이 될 때까지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유보한다”는 강봉균 신임 재정경제부 장관의 취임 일성은, 정책당국이 여전히 왜곡된 현실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잘못된 세제를 개혁하더라도 그것이 세정의 변화와 맞물려 전개되어야만 비로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세청과 국민연금관리공단, 의료보험조합이 각각 독자적인 소득파악, 세금, 연금 및 보험료 부과와 징수를 하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을 국세청에서 통합해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동일인물의 소득파악을 정부 각 기관이 저마다 각기 진행하는 것은 행정적 낭비일 뿐만 아니라 언제나 혼란과 갈등의 불씨가 된다. 납세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소득을 최소한 세번은 신고해야 하고, 그것도 조금이라도 ‘낮게’ 신고하려 애쓰게 만드는 지금의 제도는 결코 합리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세정개혁특별법 제정을 통해 소득파악을 본연의 임무로 안고 있는 국세청이 모든 과세자료를 통합관리하고 사회보험료의 부과·징수까지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국세청으로 이러한 권한을 집중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각종 세무관련 비리를 척결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부처나 시민단체에 대해 기본적인 통계자료나 문서목록조차 공개하지 않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국세청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 나아가 국세청은 자영자들의 소득파악이 쉽지 않다는 변명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타부처나 시민단체들과 현재상황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세제와 세정이 개혁되더라도 결국 성실한 소득신고와 정확한 소득파악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마무리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득을 분명하게 노출시킬 수 있는 장치, 예를 들어 신용카드사용의 확대나 영수증 주고받기 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 신용카드나 영수증 사용이 제자리를 잡지 못할 경우 탈세는 결코 근절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영자 소득파악 또한 힘들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이와 관련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인들의 의식 깊숙이 뿌리내린 ‘탈세불감증’을 스스로 이겨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자영자 소득파악과 조세형평 실현을 위해 지금까지 나열한 일들은 조세개혁의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일정이 잡혀 있다. 조세개혁의 대의와 원칙이 또다시 정치논리로 인해 왜곡되고 훼손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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