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백의 기백으로 평택을 가꾸는 사람들
“참여연대가 매일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하는 걸 보면 참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 싶다가도 막상 우리가 평택시청에 가서 정보공개청구를 해보면 이건 전혀 아니에요. 공무원들은 달라진 게 없고 시민들은 아직 조직화되지 않았고… 지역단체가 할 일이 참 많은데….”

지자체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평택의 유일한 시민단체 “평택사랑시민연합”(대표 황재순)의 유일한 상근간사 이은우 사무국장의 말이다. 지난 97년 7월 13일에 문을 연 후 올해로 2년째 ‘주민자치가 실현되는 지역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회원 100명. 37만 평택시민의 권익을 대변하고 시정을 감시하기에는 아직도 힘이 부친다. 지난 3월에는 늘어가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시내에 있던 사무실마저 변두리로 옮기고 말았다.

“올 봄부터 ‘덕동산 지키기 운동’의 열기가 높아지면서 사무실을 비우고 현장에 매달리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덕분에 시민연합 재정이 부실해졌어요. 다시 조직정비를 서두르고 있으니까 8월에는 시내로 다시 진출할 수 있을 겁니다.”

회원들이 오가다 들르기에는 사무실이 좀 외진 데 있는 게 아닌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더니, 이은우 사무국장이 표정으로 읽고는 묻지도 않은 말을 대답한다. 학생시절부터 10년 넘게, 오로지 지역운동에만 매달려 온 그에게는 시내 한복판에서 조금 외진 곳으로 사무실을 옮겨야 했던 게 못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10년 넘게 평택에서 일했는데 아직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을 하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해요. 그래도 의정감시를 하고,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시민단체는 우리밖에 없는데 우리가 포기하면 정말 지역사회는 상황이 심각해지거든요.”

몇년 사이에 평택은 엄청나게 도시규모가 확대됐지만 시민들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후퇴했다는 게 이 국장의 설명이다.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구 시가지를 포위하듯 빽빽이 들어서며 도시규모가 몰라보게 팽창했지만, 녹지공간 등 시민들의 삶의 질을 고려한 시설은 전혀 도시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평택시는 경기도에서 부채 많기로 2, 3위를 오르내릴 정도로 지자체 운영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곳이다. 선거를 염두에 두고 택지와 공단개발 계획을 남발하다보니 분양률이 낮아 적자가 쌓이고, 이것이 고스란히 시의 재정을 압박하면서 결국 그 부담을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힘은 아직 미약하다. 이 때문인지 단체장과 공무원들도 여전히 시민들 위에 군림하던 시대의 사고와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 5월 17일, 김선기 평택시장은 덕동산 주차빌딩 건립 문제로 시민대표들과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이은우 사무국장에게 ‘야! 넌 나가 있어’ 이렇게 막말을 했다가 지역언론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했다. 김선기 시장의 태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지역의 단체장, 관료들이 시민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토호는 끄덕없다

정권이 교체되면 상황이 좀 달라질까 생각했지만 그런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는 지방에 들어선 제 2 건국위원회의 면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조직폭력배 등이 추진위원으로 행세하는 식이다.

“서울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정보공개청구와 같은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가 지방에서 상식적으로 진행되려면 아직 멀었어요. 시청에 가서 정보공개를 요청하면 대뜸 ‘당신 말이야, 우리 고등학교 후배로 알고 있는데, 말을 그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거야’ 이런 식의 윽박지름을 당하기 일쑤에요.” 단체장, 관료 지역유지들이 모조리 특정 고등학교 동문 선후배관계로 얽혀 있는 지역사회의 특성 역시 주민자치를 가로막는 한 요인이라는 게 이 국장의 분석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하면 거의 100% 거부당하는 실정이지만, 할 수 없이 고등학교 선후배 인맥을 통해 자료요청을 하면 ‘비공식’적으로 필요한 자료를 입수할 수 있다고 한다.

“지역운동이 많은 한계를 안고 있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만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죠. 아직은 인맥, 지연, 이런 것이 이권청탁 등 부정적인 기능을 하지만 시민사회가 성숙하고 올바른 주민자치 문화가 정착되면 그만큼 튼튼한 인적 네트워크로 기능할 수도 있을 테니까. 적어도 지역에서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극복할 수 있거든요.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말이죠.”

평택사랑시민연합은 지난 2년 동안, 상근 간사 한 사람이 지탱하는 지역단체답지 않게 많은 일들을 진행했다. 여전히 미결과제로 남긴 했지만 언론에 보도돼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온 에바다 농아원 사건. 시민대책위를 결성하고 주민들의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이은우 사무국장의 숨은 노력이 큰 힘이 되었다. 도심의 구 군청터를 절반이라도 공원용지로 바꾸게 한 주민서명운동, 수돗물 불소화 추진운동, 97년 11월에 개최한 시민문화제인 ‘소사뜰 큰잔치’에는 1,000여 명의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작년 4월에 개최한 ‘살맛나는 아파트공동체학교’ 역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았던 행사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파트공동체학교를 수료한 주민들과 시의회에 대한 모니터활동을 염두에 두고 조직한 의정지기단에 대한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교육 등에 손길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참여연대로 이름 바꾸고 싶다

“참여연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예 저희도 ‘평택참여연대’라고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름을 함께 쓰는 것만으로도 공신력이 높아지고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도 도움이 되겠죠. 그런데 아예 이름만 같이 쓰는 게 아니라 서울의 풍부한 정보와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공유하고 또 전국적인 대응이 필요한 일은 기민하게 연대하고, 비슷한 지역끼리의 정보교류와 연대도 강화하면 좋겠어요. 사안별로 성명서에 이름만 거는 식으로 연대할 게 아니라 살아 숨쉬며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네트워크 말이죠.”

주민들의 참여 정도에 따라 지자체, 지방자치의 성격자체가 완전히 변모할 가능성이 크지만 처음에는 주민들이 시민운동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지금은 예전에 비해 인식은 높아졌지만 이제는 지역단체에 대해 ‘참여연대 같은 수준의 활동’을 요구하면서 정작 참여 자체는 꺼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번도 이 운동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고향이니까요. 고향을 떠나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올 하반기부터는 지금 수준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몇가지 계획들을 가지고 있는데 내심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평택에 상주하는 교수, 변호사 등을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매월 정기적인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이 국장이 계획하고 있는 하반기 사업 중 하나다. 그리고 적은 인력으로 효과적인 홍보를 하고 게시판을 통해 시민여론을 발빠르게 수렴하기 위해 지금 인터넷 홈페이지를 준비하고 있다. 홈페이지가 구축되면 시정자료, 운동경험,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보까지 총망라해 이 사이트를 평택에 대한 전문적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할 계획이다.

“정보가 풍부해지면 자연히 주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질 것이고 홈페이지를 오가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자연 지자체에서도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저희들을 예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이 국장은 잠시 들뜬 표정이 된다. 인터뷰를 처음 시작할 때의 심란한 표정과는 자못 다른 분위기다.

“참여연대의 끈질긴 실천과 구체적인 성과 획득, 이런 운동방식에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가 잘해나가면 지역단체들은 따라 배울 것이 많아지고 그 자체로 참 큰 힘이 되죠. 지역단체에 유익한 정보를 나눠줄 수 있는 방안을 좀더 고민해주셨으면 하고요. 참여연대가 앞장서고 지역단체가 함께 협력해서 정부의 시민단체에 대한 간접지원을 제도화할 수 있는 길도 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족히 너댓 시간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이은우 국장은 좀처럼 자리를 정리하고 싶어하지 않아 했다. 아직은 주민들의 열띤 호응도, 언론의 화려한 조명도 없는 곳에서 대답없는 메아리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이은우 국장의 모습이 지역단체 활동가의 어떤 전형이 아닐까.
김성희 본지 홍보실장
1999/07/01 00:00 1999/07/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4668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