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대해부4
1997/1997년 01월 :
1997/01/01 00:00
한국에서 녹색당은 가능한가?
진보운동진영의 정치세력화’ 도전은 다양한 방법으로 꾸준하게 시도돼왔다. 결과는 실험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었나, 그것은 한편으로 진보운동을 살찌우는 밑거름이었다. 진보운동은 그 경험을 토대로 발전과 확장을 거듭했고, 국내외 사회의 제반 변화와 맞물려 시민운동의 등장으로 대변되는 운동의 분화를 겪었다.
이 속에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선거국면에 돌입해 대통령선거와 9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를 맞는 진보진영은 우리 사회 진보를 향한 일전을 준비하면서 여전히 대안 부재라는 곤혹스러움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정치세력화 실험은 판도라 상자 속의 ‘희망’이 되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때 과거와 비교하면 달라진 것은 많다. 무엇보다 정치세력화를 추동해낼 시민사회 성숙과 운동의 확장에 주목할 수 있다. 이를 놓고 여전히 불가론 또는 시기상조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음이 사실이나, 조심스러우나마 한 편에선 현실화를 고민하고 있다. 기자는 환경운동의 전망을 취재하면서 한국사회 녹색당 건설은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맞닥뜨렸다. 이에 대해 과연 우리 시민사회운동진영은 어떤 답들을 가지고 있는 걸까?
녹색당의 가능성 진단은 우리 시민사회운동진영에서 환경운동이 처한 수준과 조건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요 몇 년 사이 환경은 우리 사회 주요 이슈로 자리잡았다. 더불어 환경운동은 양적·질적으로 팽창해, 개발에 반대하는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운동들이 활성화하고, 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련)이나 녹색연합 등 전국적 조직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확산된 환경 이슈는 국가와 자본(언론을 포함)이 주도하는 환경보호까지 등장시켰고, 현재 다양한 형태의 환경운동이 무차별적으로 혼재돼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시민사회 환경운동은 차별성과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대개 국가와 자본 주도로 이루어지는 환경보호는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그 속성상 환경보호가 성장과 개발의 논리에 우선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과 개발이 지속되는 한 환경문제 해결은 요원할 뿐이다. 성장과 개발은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할 것이다. 이때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
녹색의 이념으로 사회를 바꾼다
새로운 가치관이란 성장과 개발에 우선하는 보전이다. 시민사회 환경운동은 그런 이념으로 차별성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환경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들과 함께 구조화돼 있어 개인적 차원의 실천과 기술개발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 구조적 접근을 통한 환경문제 해결에 그 목표를 두어야 한다. 따라서 환경운동은 장기적으로는 사회변혁운동일 수밖에 없고, 이런 점에서 우리는 환경운동을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녹색연합 장원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동안 환경운동이 수질과 대기 개선,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근본적인 대안 제시에 주력해야 할 때다. 바로 새로운 생활 패러다임의 구현이다. 녹색연합은 ‘그린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에코토피아 건설에 힘쓸 것이다. 환경문제 해결은 기존 서구의 이원론적 방식으론 불가능하다고 보며 전일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힌다.
좀더 부연하자면 녹색연합은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환경문제 해결에 나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녹색’ 이념을 ‘삶의 질’과 관련해 환경은 물론 여성, 인권, 교통, 농촌, 장애인 등에 확장시키는 쪽으로 운동의 방향을 잡아갈 것임을 시사했다. ‘녹색’의 이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보전과 평등, 억압의 철폐, 공동체의 지향이다. 장 총장은 이를 위해 지금의 시민운동(NGO) 방식에 더하여 경제구조로서 기존 생산자와 소비자 중심의 협동조합 형태를 확장해 분해자까지를 포함시키는 녹색협동조합과 정치구조를 바꿔나가는 녹색당, 이런 삼발이 구조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럴 때에만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이 사회 변혁운동으로 돼야 한다는 데는 환경련 이치범 사무처장도 동일한 생각이다. 그리고 그 역시 이런 운동의 확산 과정에서 녹색당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녹색당 논의의 핵심을 당장의 정치세력화로 모아내기보다 운동의 확장을 통한 정치적인 영향력 강화 과정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경련 이치범 사무처장은, “환경운동은 사회운동이다. 환경보호가 주가 아니라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속에서 녹색당의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 행사와 정치세력화를 같은 범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즉 녹색당은 환경운동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좀더 효과적이고 직접적 문제 해결을 반영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 시점이 지금 당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금은 정치세력화보다는 정치적 영향력 강화, 즉 운동의 강화를 중심에 두어야 할 때다”고 말한다.
이렇듯 환경운동 내에서조차 녹색당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현실화를 놓고는 어느 정도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녹색당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진 상태도 아니고, 더군다나 개인의 생각 차원을 넘어 구체적 교감들이 있어왔던 것도 아닐 것이므로 이는 당연한지 모르겠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녹색당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지방자치제 활성화가 그 판단에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지방자치 활성화와 녹색당 현실화
환경문제는 전지구적 문제이지만 그 행동은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지역사회가 처한 조건에 따라 환경운동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 담론은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행동하라”는 표어가 잘 집약하고도 있다. 다시 말해 환경운동은 지역운동을 지향하고, 그 발전 전망은 지방자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이와 관련 일본 혁신자치체 운동 사례에 많은 활동가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방자치가 본격화하면서 지역환경운동이 한층 활성화됐다. 지난 95년 6·27 지방선거로 지방자치시대가 열렸고, 지역환경운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당시 지방선거에서는 그동안 지역 내 환경운동 경험을 갖고 있거나 환경문제 해결을 내세운 후보들이 출마해,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과천시장을 비롯해 대구 남구청장 등 기초단체장에 친환경 후보들이 당선되고, 지역 대책위 출신 후보들이 기초의회에 진출했던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후 활동은 조직적 뒷받침이 없어 일회용에 그쳐버렸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평가를 내리는 쪽에서는 지난 6·27선거시 지역정치에서는 ‘환경’ 이슈가 먹혀들었음에 의미 부여를 하면서 친환경세력의 조직화를 논의하게 됐고, 특히 98년 지방선거에서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진전시켜야 한다는 견해들이 대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녹색당 현실화를 추동해내는 것들이다.
현재 환경련은 27개의 독자적인 지역조직들이, 녹색연합은 12개의 지역조직들이 활동중이다. 이들은 원전 반대 등에서 지역개발 반대 및 피해 보상, 환경 감시 등 나름대로 지역 특성에 맞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앙과 지방정부에 맞서고 의회에 압력을 가하는 데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중앙집권적 한국 정치풍토에서 밑으로부터 정치 참여가 개발됐다는 것은 이후 녹색당 현실화를 포함해 우리 사회 시민사회운동진영의 정치세력화에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즉 지역정치 활성화로 녹색당을 모색해본다는 것은 훨씬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서구의 경험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서구 녹색당 득표율이 중앙정치무대보다는 지역선거에서 높다는 것은 하나의 반증이다.
반면 지난 6·27선거에서 여전히 정치논리가 개입된 광역단체장 등 중앙정치에서 ‘환경’ 이슈는 정치구도 속에 휘말린다는 한계도 드러났다. 96년 4·11 총선 등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이른바 친환경 후보임을 자임(?)하는 주자들이 나서긴 했으나 그 면면을 보면 주로 환경이 사회 주요 이슈로 부각되는 것을 노린 사이비적 친환경주의자들이거나 이름만 환경후보인 주자들이 많았다. 또한 보수정당의 친환경 후보 공천도 정치논리에 따른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았다.
국회는 환경관련 입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며, 환경정책에 대한 감사와 규제를 하는 곳이다. 따라서 국회 내 친환경세력이 구축된다는 것은 환경문제 해결에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환경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려는 국회의원들이 늘어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보수정당에 기반한 정치권과 국가관료들은 결국 개발주의자 편에 설 수밖에 없고, 이에 압력을 가하고 환경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강제하는 게 환경운동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환경운동의 영향력은 환경문제가 심화·확장되는 속도에 비해 아주 미미한 상태다. 예를 들어 원전 건설 등 국가정책사업에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렇듯 기존 보수정당들이나 국가가 환경문제 해결에 원초적 한계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고, 그에 근거해 정치적 영향력 확대, 더 나아가 정치세력화 논의가 또다른 차원에서 문제의식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녹색연합 장 총장은 녹색당 현실화를 아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장 총장의 녹색당 구상을 좀더 좇아가보면 모습은 반(半) 정당, 반(半) 국민단체 형식을 지향한다. 정강은 앞으로 창당과정을 통해 구체화될 것이지만, 정권 획득이 목적이라기보다 운동성을 담보한 합법적이면서 느슨하고 확대된 구조의 정당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재정도 지금의 전국적 시민운동단체들이 쓰는 규모면 정당 운영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경문제를 기존 시민운동만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동안 운동이란 틀에 갇혀 대중적 저변을 확대하는 데 부족하지는 않았나, 프로그램도 너무 획일화되고 단순해 오히려 대중의 흡입력을 떨어뜨리지 않았는가 하는 점들이다. 여기서 녹색당이 왜 필요한지 설명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녹색당을 기존 정당 틀에 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어찌보면 이는 서구 녹색당 초기 건설 과정과 같은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구 녹색당은 이미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환경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반핵운동을 거치면서 80년대 초에 제도화했다. 서구 녹색당은 지역의 환경운동의 자발적 모임들과 평화운동·여성운동, 그리고 사회운동세력이 합쳐져 등장한다. 이런 서구 녹색당 경험을 토대로 환경운동의 발전단계를 분석해온 연구자들은 전국적인 환경운동 조직의 일부가 녹색당으로 정치세력화했음에 주목하고, 우리 상황과 의미있는 비교를 하기도 한다.
현재 서구 녹색당은 운동성을 잃고 환경개량주의로 전락했다는 문제를 노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만약 우리 사회 녹색당이 등장한다고 했을 때 이런 점들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서구 경험의 반성적 검토를 객관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이다.
꿈틀거리는 녹색당 건설 움직임
이런 검토 아래 ‘한국적 녹색당’ 전형을 만들겠다는 녹색연합 장 총장은 97년부터 계획을 갖고 그 준비단계에 들어갈 것임을 밝힌다. 그리고 거기에는 환경운동을 포함한 모든 시민운동세력이 참여해야 할 것이고, 이를 모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녹색당 현실화 움직임이 어떻게 가시화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하겠으나, 장 총장은 거기에 대해 많은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각기 지향이 다른 시민운동진영에서 여기에 얼마나 무게를 실을지는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이 글의 시작에서도 지적했듯이 정치세력화 논의는 팽팽한 논쟁을 낳고 있고,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가 한 번도 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환경련 이치범 사무처장도 대체로 조심스러운 입장에 서 있어 보였다. 그는, “녹색당이 운동의 한계로 거론돼서는 안 되며, 정치구조와 정치논리 확산 속에서 논의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못박고, “녹색당 건설은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제반 조건이 형성됐느냐 하는 것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당장 녹색당 하자고 단체들끼리 모여 간판 내거는 것으로는 안 된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반 조건들을 다져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힌다.
그는, 98년 지방의회를 겨냥해 지역운동 차원에서 녹색당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하지만,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제반조건을 다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 제반조건이란 환경후보들의 지방정치, 나아가 중앙정치무대로의 활발한 진출이고, 물론 보수정당 구조에서의 환경후보가 갖는 제한적 의미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치세력화 문제는 이런 현실적인 세가 형성됐을 때 보다 확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현실, 꿈을 꺾지는 말자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녹색당 현실화에 대해 몇 가지들을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운동이 성장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과는 다른 각도에서의 판단이다.
우선은 녹색당이 현실화됐을 때 지지층의 실수효를 얼마나 모아낼 수 있는가이다. 흔히들 녹색당의 잠재적 지지기반으로 현재 우리 사회 다수로 자리잡고 있는 신중간계급(경제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성장한 중간계급)을 꼽는다. 하지만 그것은 허수일 수 있다.
환경 이슈와 환경운동에 대한 관심 고조로 다른 시민운동단체에 비해 환경운동단체 회원 수가 많은 것도 사실이나, 여전히 대중적 기반은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한 편의 판단에 있어서는, 이런 대중적 기반의 취약성이 운동의 틀로 인한 제약 때문이고, 녹색당은 다를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 역시 검증되지는 않은 것이다.
더하여 이런 현재의 환경운동 내지는 시민운동 지지층들이 아직까지는 우리 시민사회 성숙 정도로 볼 때 낮은 수준에서 결합되어 있고, 그렇다고 할 때 ‘녹색’의 이념으로 이들이 얼마나 묶일 수 있는지는 회의적이며, 다양한 지향의 환경운동단체들과 시민운동단체들이 내부적으로 통합되기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이 측면만 보면 우리사회 진보운동의 정치세력화는 녹색당보다는 노동자정당이 더 현실성에 근접해 있을 수 있다. 민주노총 등은 탄탄한 조직력을 갖고 있으며, 산별체제가 정착되면 이를 통한 결속력도 더 높아질 전망이다. 더욱이, 아직 정치관계법 등 제약이 있긴 하지만 노동법 개정 이후 노조의 정치활동이 합법화되면 그 영향력이 커질 것이고, 앞으로 정치세력화가 힘을 얻어갈 것이다).
우리는 지난 90년 민중당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민중당은 80년대 성장한 민중운동진영의 정치세력화 시도였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그 참패의 원인으로 드는 게 지지 기반과 지역 기반이 없었다는 것이다. 민중당은 자신이 지지 기반으로 설정한 대다수 민중으로부터 외면당했다. 그 경험은 앞서 말한 실수효와 허수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고 본다.
한편 또 하나 짚어보아야 할 문제가 우리 현실 정치의 조건이다. 녹색당 등 진보정당 앞길에는 현재 왜곡된 한국적 정치풍토와 정치문화라는 큰 벽이 가로막혀 있다. 우리 사회는 정치권에 대해서만큼은 이중적 잣대를 갖고 있는 듯하다. 대다수 사람들이 정치권에 대해 불신과 냉소를 보내면서도 여전히 선거에만 돌입하면 구태의연한 지역주의적 파벌 정당에 얽매여 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새로운 정치이념과 정치세력의 목소리는 빛좋은 개살구가 되기 십상이다.
실제 지난 4·11총선 때도 시민운동진영의 명망가들이 개혁신당을 창당, 구 민주당과 통합을 통한 제도권 정당으로 진입해 정치개혁 실험을 한 바 있다. 당시 참여했던 대표적 시민운동가였던 한 인사(현재도 활발하게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석에서 “자신이 아주 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선거에 임해보니 자신의 인지도가 별반 높지 않다는 데 놀랐고, 우리 정치 현실의 벽이 높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연과 금권이 맹위를 떨치는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한 한탄이었다.
물론 4·11 정치개혁 실험이 운동 논리를 결여한 채 방식과 행동에서 구태의연한 정치권을 답습했기에 실패의 수순을 밟았다는 비판은 주효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이런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진보정당이 태동했을 때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는 역시 의문이다.
녹색당 현실화는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검증하고 숙고해야 한다. 이는 여전히 머릿속에서 계산할 수밖에 없어, 될 것이다, 안 될 것이다 라는 속단을 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과거와는 또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이 정치세력화의 필요성과 맞물린 가운데 녹색당을 추동해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제는 보다 장기적인 전망 속에 녹색당 논의를 진행시켜야 한다. 그리고 한 편의 주장인 시민사회운동의 섣부른 정치세력화나 정치권으로의 진출이 기성 정당의 틀에 갇혀 운동성만 상실하고 운동의 역량을 손실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주장이 정답인 양 호도된 채 녹색당의 꿈을 외면하거나 꺾어버리는 것 또한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앞서 살펴본 바 대로 우리 사회 녹색당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고, 다만 시기와 방법, 그리고 조건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현실과 부딪치는 게 바로 활동가들에게 주어진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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