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세상-생명공동체운동가 이병철의 똥철학
1997/1997년 01월 :
1997/01/01 00:00
밥과 똥은 한 생명이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사는 사람은 우선 세상을 살아가는 진지한 자세를 인정받을 만하다. 아울러 요즘 같은 세상에선 그 순수함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도 한다.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세상을 고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맑게 한다. 방송광고의 문구를 빌릴 것도 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가치는 깨끗함과 순수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깨끗함과 순수함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생명공동체운동가’ 이병철 씨(48)이다.
이병철 씨가 관여하고 있는 운동단체는 무척 많다.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 우리밀 살리기 운동 경남·부산 지역본부장, 생활협동조합 부회장, 우리농촌 살리기운동본부 기획실장, 환경운동연합 전국감사 등 도합 9∼10개 단체에 이른다. 더구나 이병철 씨는 단순히 이름만 올리는 명망가가 아니다. 그의 왕성한 활동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병철 씨가 관여하고 있는 운동에는 하나의 줄기가 있다. 그것은 농촌을 살리는 운동이며 생명공동체운동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 사회 미래를 위해 제시하는 이병철 씨의 실천적 대안인 것이다.
“생명공동체운동의 실천적 대안은 가치중심을 물질에서 생명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업문명에서 농업중심의 문명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이병철 씨는 현대문명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과 자연이 차단되는 사회구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농업적인 문명양식이란 생명으로 생명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본연의 형태인데 현대문명은 그것을 차단시키면서 발전해왔습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활양식은 농업적인 문명양식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병철 씨의 농민과 농업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이병철 씨는 농민이란 생명으로 생명을 키우는 생명일꾼이며 농업은 현대문명의 위기를 구제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내포하고 있는 철학이 있다고 믿고 있다.
농민은 생명을 키우는 ‘생명일꾼’
이병철 씨의 농민과 농업에 대한 애정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떠나는 농촌에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농업적인 문명양식이 현대문명을 구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이병철 씨는 1949년 고성에서 태어났다. 부산대에 재학중이었던 74년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나온 후 이병철 씨는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겨울공화국이었던 70년대와 광기의 80년대를 이병철 씨가 살아온 방법은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었다. 이병철 씨는 6월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조직국장을 역임했다. 6월항쟁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80년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투쟁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80년대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이 완전한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은 운동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됐지요.”
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은 시대적 과제를 모두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병철 씨는 그것은 국민의 잘못이 아니라 운동을 이끌었던 세력들에게 잘못이 있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구조적인 운동도 필요하지만 더 근원적인 운동이 요구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새로운 운동의 형태를 농민과 농촌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이병철 씨가 찾고자 했던 근원적인 운동은 ‘밥의 문제’였고 ‘생명의 문제’였다. 이병철 씨가 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상은 이병철 씨가 펼치는 운동의 근본적인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밥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양식입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의 혜택을 입고 자라난 생명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명이 생명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밥이 건강성을 잃었을 때 그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도 건강성을 잃고 맙니다.”
현대사회는 분명 산업사회이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자본주의사회다. 그렇기에 농촌은 도시의 부속적인 지위로 전락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농촌사회의 해체를 촉진하는 듯하다. 이병철 씨는 그러므로 농촌을 살리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농업을 올바르게 세우고 농촌을 살리는 게 바로 생명공동체운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현대문명의 생산양식 아래에서 농업도 오염돼가고 있습니다. 생명으로 생명을 키운다는 생명일꾼의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현대문명은 인간을 편리하게 했다. 그러나 극단적인 편리함은 극단적인 절망도 동반하고야 만다. 생각해보자. 인간은 총을 만들어 능률적인 살상이 가능해지자 동시에 효과적으로 살상당할 수 있게 됐다. 고도 3만 피트의 상공에서 엔진이 꺼져버린 여객기의 탑승자 심정을 상상해보자. 인간의 편리를 추구한 현대문명이 인간을 역습하는 현실은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중에 하나 심각한 게 먹거리의 오염이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밥의 문제’는 곧 생명의 문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현대사회는 농산물조차 상품화하고 말았습니다. 대량생산을 위해 농업은 생명을 키운다는 본연의 모습을 잃고 말았습니다. 화학비료와 방부제 등을 사용하는 농업은 생명을 키운다기보다는 오염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는 살생농업이라고 부릅니다. 오염된 음식을 섭취한 사람은 역시 오염됩니다. 병이 든다는 얘기죠. 오염된 생명은 결국 또다른 생명을 오염시키고 맙니다.”
“산업사회의 문명양식은 생산-소비-폐기의 단선적인 문명양식입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인간을 행복케 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농업은 근본적으로 순환적인 문명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환적인 문명양식은 생명에 대한 외경이 있습니다.”
순환적인 문명양식은 이중적인 사고를 배격한다고 이병철 씨는 말한다. 즉 한 생명의 다른 모습을 배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병철 씨는 똥에 대한 생각도 각별하다.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다시 밥이 되고”
“순환적인 문명양식의 농업공동체 속에서는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다시 밥이 됩니다. 밥을 먹은 인간이 똥을 배설하고, 똥은 논과 밭에서 거름이 되어 다시 밥을 기릅니다. 밥과 똥은 한 생명의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문명은 그것을 차단하기에 똥은 새 생명을 키우지 못하고 맙니다. 수세식 화장실의 정화조에 모인 똥은 거름이 되지 못하고 처리해야 할 오염물이 되고 맙니다. 결국 소비 이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소비에는 탁월하지만 폐기의 문제에는 젬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적인 순환문명은 자연스럽게 생명농법으로 해결해낸다는 것이다. 저비용 고생산을 추구하는 ‘살생농업’은 우선 소비자의 생명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아울러 농민의 심성조차도 파괴한다고 이병철 씨는 가슴아파했다.
“농심이란 생명을 기르는 심성입니다. 자연에 외경심을 갖고 살아가는 농민의 마음이 현대문명에 의해 파괴되고 있습니다. 농민이 병들면 땅이 병들고 땅이 병들면 밥이 병듭니다. 그리고 생태계가 파괴돼 인간 자체를 파괴시키게 될 지도 모릅니다.”
모두 병들고, 끝내는 파멸하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병철 씨는 바로 생명공동체의 건설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생명공동체란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생명공동체 건설의 시작은 농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병철 씨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먼저 갈고 닦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업문명에서 새로운 대안문명을 창출하기 위해선 농촌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살생농업은 생명농업·공생농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공동체를 건설하는 시작인 것입니다.”
병든 농촌을 살리는 길이 생명공동체를 건설하는 길이기에 이병철 씨는 요즘 귀농운동에 거의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농촌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은 과거 정부 주도의 농촌 살리기운동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이병철 씨가 ‘필생의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귀농운동은 과거 정부 주도의 운동과는 어떻게 다르며 왜 귀농운동이 농촌을 살리기 위한 주요한 방안이 되는 것일까?
“정부 주도의 농촌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은 농업을 산업의 한 부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농운동은 물질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인간과 자연이 유기적으로 얽혀 공생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농촌살리기운동입니다.”
96년 4월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가톨릭농민회, 생활협동조합중앙회 등 200여 개의 농촌관련 단체들은 반자연.반생명의 메마른 산업사회로부터 우리 삶의 뿌리인 농촌을 지켜내자는 뜻을 모아 귀농운동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병철 씨는 위원장을 맡았다. 귀농운동추진위원회는 7월초에 귀농운동본부로 발전됐다.
삶과 사상을 노래하는 귀농운동가
“농촌을 살려야 새로운 문화와 이념이 창조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이념과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농촌의 가치를 새롭게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농촌에서 대안적 삶을 창조하자는 운동입니다.”
이병철 씨의 생명공동체운동은 농촌을 살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농촌이 살기 위해선 도시도 함께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병철 씨가 추구하는 것은 도.농 공동체이다.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기 위해선 농촌의 생산공동체와 함께 소비공동체가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귀농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펼쳐지고 있다. 귀농운동을 사회화하기 위한 캠페인, 귀농 희망자의 조직 및 귀농 희망자 간의 상호협력 지원, 귀농후원회 구성, 간담회 및 세미나를 실시하고 있다.
농업의 위기는 절박하다. 그 절박한 위기 중 하나가 농촌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가 없다. 그렇기에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농촌으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한 번 떠난 땅을 돌아가기란 매우 어렵다. 이미 모든 게 그곳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귀농운동의 구체적 목표는 농촌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한다.
“농촌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지혜를 심어주기 위해 귀농운동본부에서는 6개월에서 1년 과정의 귀농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농촌으로 돌아가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교육문제, 건강의 문제, 주거문제와 농사 짓는 법을 모른다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귀농학교를 통해서 첫째로 생명중심·가치중심의 새로운 농업관을 가르치고 농촌에서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며 생명일꾼으로의 농삿법을 습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 소비자와 연계될 수 있도록 주선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자신의 생산물로 생활을 해결할 재원을 얻고 도시인들은 생명농업으로 지어진 먹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귀농학교는 예비농사꾼에게 터잡을 곳을 찾아주고 농업기술과 재정을 지원하는 한편, 도시지역 소비자들과 협조해 도.농 직거래, 농산물 장터 마련 등으로 생산물의 판매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귀농학교는 지난 9월 9일에 1기 강좌를 시작했다. 생태적 각성과 귀농의 의의, 올바른 귀농 위 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1단계 기초과정과 주체적으로 농촌생활을 시작하는 필요한 내용들을 배우는 2단계 과정을 마쳤다. 2기 강좌는 올 1월초에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생명공동체운동가 이병철 씨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병철 씨는 시인으로 불리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병철 씨는 시인은 별도로 존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한 방편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모든 인간은 이미 삶이라는 시를 쓰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는 그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밥과 꽃」, 「한톨 쌀알에 대한 명상」, 「한줌의 흙」등 제목만으로도 이병철 씨의 삶과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아내는 밥이다”
이병철 씨의 집은 마산에 있다. 이병철 씨는 생기는 것 없는 귀농운동을 이해하고 말없이 뒤에서 도와주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마산과 서울을 오르내리며 귀농운동으로 바쁜 와중에서도 주말만큼은 가족과 함께 지내려고 노력한다. 또한 자신의 시에서 아내를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밥(「아내는 밥이다」)이라고도 하고, 도인(「아내는 도인이다」)이라고도 한다.
“저는 귀농운동을 제 자신의 마지막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농운동은 건강한 농민으로 뿌리박기 위한 나 자신과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병철 씨는 한때 스스로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지금은 귀농운동본부 일이 너무도 바빠서 농사를 잠시 쉬고 있다고 한다. 이병철 씨가 다시 씨앗을 뿌릴 날은 귀농운동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현대문명을 극복한 공동체가 나타나는 때와 일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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