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원구청이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중랑천 옆 노원구 공릉1동과 3동에서는 작은 싸움이 준비되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하나에 사무실까지 차려놓고 매일같이 출퇴근하며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세우는 평범하고 선량하다 못해 싸움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숨기지 못하는 이 마을 주민이 벌이는 싸움이 그것이다.

이 마을은 지난 8월 중랑천이 범람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수해지역이 되어버렸다. 8월 6일 아침 6시부터 넘치기 시작한 물은 30여 분 만에 지하실을 침수시켰고 저녁 6시쯤에는 사람 가슴까지 물이 차 올랐다. 마을 주민은 이 수해가 천재가 아닌 인재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중랑천 둑을 구청에서 없앴다는 것.

그들은 사진과 도면 등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94년 이전에 찍은 사진은 그곳에 조그만 언덕 높이로 둑이 있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동부간선도로가 완공되는 시점인 94년까지 구청에서는 둑 일부를 허물어 평탄화 작업을 했다. 그 옆을 흐르던 지천은 복개해서 현대건설과 강북크레인에 임대해주었다.

더욱 기가 찬 사실은 없어진 둑 옆쪽으로 11m 가량 둑이 또 있었는데 그 둑을 없애는 공사가 바로 수해가 나기 전날인 8월 5일 저녁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구청에서 발주한 준설토 침출수 공사라는 것. 없애버린 둑 사이로 사정없이 물이 흘러들어 이 지역 일대를 침수시키자 부랴부랴 주민과 군인들이 모여들어 임시방편으로 마대자루를 쌓아 둑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약 1m 30cm쯤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비가 가장 많이 온 8월 8일에는 기적같이 물이 넘치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땅을 칠 노릇이었다. 전에 있던 2m가 넘는 멀쩡한 자연 둑을 없애지만 않았어도 이번 수해는 안 당했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하천보다 지역이 높고 상습침수지역이 아니어서 배수펌프장이 설치되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수해안전지역'이었다. 공릉동 주민 홍봉구 씨는 “20년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구청에서는 엉뚱하게도 그곳에 처음부터 둑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그곳엔 둑이 아니라 밭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은 둑이 구청에서 제시하는 도면보다 더 길게 있었고 그 언덕 위에 조그만 밭이 하나 있었다고 말한다. 또 중랑천 건너편에는 높은 옹벽이 있어서 이번에 수해가 나지 않았는데 당시 이쪽에 옹벽을 치지 않은 이유는 높은 자연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이 주민의 설명이다. 이곳은 중랑천이 휘도는 지역이라 물이 넘치면 전부 이쪽으로 몰리기 때문에 옹벽을 치려면 정작 이쪽을 더 높게 쌓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구청에 아무리 말해봤자 공무원 특유의 타부서에 알아보라는 식으로 떠넘기기만 계속되고, 주민이 제풀에 지쳐버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피해보상 산정도 문제 많아

정부에서 제시하는 피해보상액 산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이 지역엔 지하실에 기계 몇 대 들여놓고 조그맣게 공장을 운영하는 영세사업체가 130여 곳 가량 되는데 이들은 전혀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명색이 사장이기 때문이라는데, 이들이 입은 피해액은 몇천만 원에서 몇억 원에 이른다. 지하실에 가득 쌓아놓은 원단이 침수되는 바람에 한푼도 못 건진 사람, 스키복 몇억 원 어치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사람. 원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몇백만 원씩 하는 전자식 기계가 물에 잠겨 고철로 변해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외국회사와의 신용 때문에 몇천만 원씩 빚을 내서 기계를 사다가 돌려야만 한다는 사람 등등 구구절절 사연도 많았다. 라면이니 가스버너니 수재민에게 지급되는 구호물품도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동안 열두 번이나 구청에서 구호물품이 나왔지만 이들은 소위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한 번도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에서 나오는 유일한 혜택은 연리 13.5%의 운영자금과 15.5%의 시설자금 융자뿐인데 보증인 세우기도 힘들 뿐더러 이율이 높고 절차도 까다로워서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정부는 3% 이율로 은행에 중소기업자금 명목으로 자금을 대출해주지만, 정작 은행은 업체에 높은 이율로 융자해줘 결과적으로 은행의 이익만 보장해주는 셈이 돼버렸다고 한다. 적어도 신용보증에 연리 8%의 중소기업육성자금의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게 이들의 최대 소망이다. 그런데 공장등록이 안 되어 있는 이들 영세업체들에는 이런 혜택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삿짐 업체를 운영하는 오만탁 씨 역시 이삿짐 여섯 대를 몽땅 적시는 바람에 고객들에게 피해보상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인 사정보다도 이 일이 더 급하다는 생각에 일은 동생에게 맡기고 수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아 스스로 총대를 메고 나섰다. 주민이 단합하지 않으면 머잖아 흐지부지될 것이고 피해보상도 받아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주민 힘으로 상습수해지역 불명예 벗자

8월 9일에 수해대책위원회가 첫 모임을 가졌다. 처음엔 최소한 보상이라도 해주면 협상할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구청 사람들과 접촉해보니까 그들의 무성의함과 시작과 끝이 항상 책임회피성 대답이어서 점점 오기가 생겼다. 보름 이상 구청으로 감사원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닌 결과 관과의 싸움이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면담과 서류만 갖고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주민의 단합이 없으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될 상황이었다.

그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참여연대에 도움을 청했다. 마침 참여연대는 8월 14일부터 9월 11일까지 수해지역 주민의 제보 접수 전화창구를 개설하고 있었다. 이 방면에 도가 튼 김칠준 변호사가 직접 대책위에 나와 앞으로 그들이 겪게 될 일과 싸움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 등 자세한 자문을 해주자 대책위는 무척 고무된 분위기였다. 주민의 단합된 힘만 보여준다면 사실은 그다지 어려운 싸움도 아니라는 김 변호사의 말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났다.

김 변호사의 방문 이후 대책위는 일단 주민궐기대회를 여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9월 12일 오후 5시 공릉초등학교에서 1차 주민궐기대회를 열기로 했다. 주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홍보물을 전달했고, 주민 반응을 살폈다. 주민은 오히려 왜 빨리 하지 않느냐는 분위기였다.

마침내 D-데이.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주민에게 개방되어야 하는 학교 정문은 이날 굳게 닫혀 있었다. 내년이면 정년 퇴임한다는 이 학교 교장은 자신의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정문 열쇠는 쉽게 딸 수도 있지만 400여 명이나 되는 주민은 모두 조용히 학교 뒷문으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합법투쟁을 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인 이 행사에 그는 무척 상기되었다. 이 행사의 성공 여부가 앞으로 대책위의 운명을 판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회 후 주민의 호응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하루에도 몇십 명씩 대책위 사무실을 찾아와서 앞으로 해야 할 일과 대책위가 하는 일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상습침수지역이라는 불명예를 벗어야 한다'며 끝까지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14일부터 열리는 구의회에도 대표들이 참관했다. 구의회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구의회에서 주민대표에게 발언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수해진상조사단을 파견할 때는 꼭 주민대표에게나 입회하에 하도록 할 것이다. 정 안 되면 마지막에는 소송위원회를 만들어서라도 투쟁을 하겠지만 웬만하면 법으로 하기 전에 협상단계에서 원만한 타결을 보았으면 하는 게 희망이다.

“주민의 힘을 여기서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관에서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할 것 같아요. 주민은 세금만 내는 봉이 아닙니다. 우리의 당연한 권리는 우리가 찾아야지요." 요즘처럼 바쁘고 힘들었던 적도 없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오만탁 씨는 말한다.
김라 본지 객원기자
1998/10/01 00:00 1998/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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