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후일담 ㅣ 서상록 · 김형곤 · 권기균 · 임삼진 4인이 말하는 천태만상 공천괴담
2000/2000년 04월 :
2000/04/01 00:00
즈그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떡볶이 먹고 시작합시다.”
지난 14일 오후 4시경 롯데호텔 35층 쉔브룬 음식점. 서울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의 고급스런 분위기를 깨는 외마디 소리. 미소 띤 얼굴로 떡볶이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치켜들고 들어오는 웨이터 복장의 한 사람이 있었다. 서상록 전 삼미그룹 부회장. 롯데호텔에 들어설 때만 해도 번듯한 개인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상상했던 기자는 순간 당황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삼미그룹을 그만둔 뒤 그는 구직을 위해 전전긍긍했었나 보다. 처음 생각했던 직장은 아파트 경비원. 2∼3년동안 아파트 복도며 화단을 내 집처럼 가꾸면 그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경비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그의 전직을 알고선 부담스럽다고 뿌리치고, 그래서 그가 택한 직업이 웨이터다.
“정식 웨이터가 되려면 적어도 7년의 경력을 쌓아야만 돼. 웨이터는 칵테일도 만들 수 있고, 손님 테이블 옆에서 조리도 할 수 있어야 되거든.”
3월 26일은 그가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시험대에 서는 날이다. 그는 상의 주머니에 고이 간직했던 바텐더 수험표를 자랑스레 내보이며 “나는 국회의원보다 우리 식당에 오는 손님 기분좋게 하는 것이 제격”이라며 “벌써 6개월 과정의 칵테일 스쿨을 졸업했다”고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웨이터 준비수업을 쌓아왔다.
도대체 그가 얼마 전까지 민주당 강남을 공천에 오르내렸던 서상록 씨일까 의심이 갈 정도로 그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공천을 신청한 적도 없어요. 그런데 그냥 나보고 공천장 받으러 오라대요. 이미 내정됐다나. 하지만 벌써부터 여러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아무것도 안한 나한테 그러는 게 어딨어! 지네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대한민국 정당 공천의 현주소다.
그를 내천한 인사는 당내 기반이 취약한 이인제 선대위원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평소 안면이 있던 이인제씨가 당내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충청도에 뛰어든 이인제씨가 그래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호평했다. 생각 같아선 도움을 주고 싶다는 투다. 실제 그는 사비를 들여 이 지역구의 여론조사까지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국회의원) 돼도 망하고 안돼도 망한다.”
“(국회의원이 되면) 한달에 500만 원 받는데 실제 나가는 돈은 3천만원이예요. 무엇으로 메꿉니까.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끌어모으지 않는다면 집 한 채 있는 것마저 날리는 수밖에…. 무지막지한 선거비용을 쳐발랐는데 (국회의원) 안돼도 망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나 혼자 들어가서 국회가 달라지겠어요.”
그는 현실 정치판에 대해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며 전직 대통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은 도둑질해서 번 돈으로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면서 골프채 들고 돌아다니고 있어요. 범법 사실이 드러나 국가에서 돈을 일부 토해내라고 하는데도 배 째라 아닙니까. 또 민주투사라는 사람은 금융실명제니 뭐니 좋은 일은 했지만 지금은 뭐합니까. 정신적 지주로 있으면 되지 현직 대통령 욕이나 하고 있고. 국민들에게 공갈치지 말고, 자기 아버지 멸치 잡는 일이나 도우면 얼마나 추앙받겠어요. 또 그런 사람 한 마디 해주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뭡니까. 도대체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 없다는 게 비참합니다. 정치는 사양할랍니다.”
그는 막 일어서려는 기자를 붙잡고 한마디를 던졌다. “제발 정치인 욕하지 말고 삽시다. 아니면 손가락을 끊던지.” 유권자에게 던지는 쓴소리다.
자기들이 코미디하면서 코미디언 출마가 문제라니
“혹시…인터뷰 끝내고 정기구독 요청하는 것 아닙니까.” 서울 성동에서 출마하는 김형곤 위원장의 비서실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뒤 그쪽에서 보인 첫 반응이었다. 전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기자는 순간 터무니없어 웃었고, 전화를 끊고 난 뒤 얼마나 시달렸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쨌든 김 위원장과의 인터뷰 시작은 씁쓸한 웃음. 왕십리역 근방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간판도 ‘웃음의 날 제정 국민운동본부’였다.
살이 빠진 것 아닙니까.
“20일만에 16kg이나 빠졌어요. 하루에 8시간씩 자전거 타고 주민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다가 전봇대 같은 데 부딪쳐 넘어진 게 한두번이 아니예요. 앞으로 10kg 더 살을 빼는 게 목표입니다.”
아니! 전쟁터에 나온 사람이 다이어트가 목표라니…. 우선 얘기가 옆길로 새기 전에 화제를 정치로 되돌려보자. 그는 왜 자민련의 공천장을 집어던지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을까.
“우리나라 정당 공천 과정을 처음으로 지켜봤는데 개판도 이런 개판을 본 적이 없습니다. 원칙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정의도 없고. 한마디로 초등학교 반장선거만도 못하더라고요. 어쨌든 정치인들은 연일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와중에 내가 충청도 대표선수로 뛰게 생겼지 뭡니까. 제가 20년 동안 비아냥거리고 개탄했던 장본인이 되는 거지요. 이럴 바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의롭게 지역주의와 싸우다가 낙선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사풍자를 하면서 본업을 바꿔 그간 스스로 비판해왔던 정치판을 갈아보겠다는 게 그의 출마의 변. 하지만 그는 실전에 뛰어들면서 코미디보다 못한 정치판에 다시 한번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지구당 위원장이 바뀌면 그 위원장만 떠나는 것이 상식 아닌가요. 우리 지역은 전 위원장이 서류 한장 남기지 않고 이세기씨한테 가버렸어요. 당조직뿐만 아니라 집기, 비품, 하다못해 쓰다 남은 입당원서 용지까지 다 가지고 갔어요.”
이쯤 되면 정치코미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인 그도 정치인들로부터 한 수 배웠을 법하다. 아니 정치가 부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터득한 바가 있을 터이다.
“선거 때만 돈이 몇십억 들어갑니다. 이 돈을 투자해서 배지 달면 4년 동안 무얼 하겠어요. 이자에다가 다음 선거비용까지 합치면 거의 1백억원대를 벌어야 한다는 말이죠. 도대체 이 돈이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긁어모으는 수밖에. 저는 혁명적으로 돈을 안쓸랍니다.”
그는 정치가 나아지지 않는 것은 순전히 돈이 많이 드는 정치구조라며 정당은 이념이 같은 사람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돈을 둘러싼 협잡꾼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일부에선 연예인의 정치진출에 대해 부정적인데….
“연예인은 기존 정치인보다 부패감염률이 낮습니다. 그게 장점입니다. 또 국회에는 코미디언 뿐만 아니라 택시운전사, 교수,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직능대표가 많을수록 바람직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또 정치인들이 코미디언보다 나은 게 뭐가 있습니까. 개뿔! 코미디언이 정치하는 것 보기 싫으면 자기들이 코미디 안하면 되죠.”
TV에서 항상 웃는 모습만 봐왔던 그. 하지만 인터뷰 내내 웃지 않는 그가 생소했다. 정치가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는 기자와 헤어지기 직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몸부터 바꾸겠다”며 10kg 감량 목표를 재확인시켜 주면서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전두환씨와도 함께할 수 있다?
한나라당 공천자 발표가 있었던 지난 2월18일. 소위 ‘금요일의 대학살’이라고도 불리는 그날 권기균씨는 여전히 한나라당 공천을 확신하며 영등포 갑 지역구의 한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주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그가 불과 며칠만에 당을 등지고 민국당 창당에 깊숙이 개입했다. 지난 4년여간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기조국 부국장까지 지낸 권 위원장. 중앙당 실무자들로부터 ‘이사람을 추천합니다’라는 사인까지 받으며 공천을 애타게 기다렸던 그이기에 뚜껑이 열린 뒤의 배신감이란 이루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눈에 비친 이번 공천은 ‘각본공천’.
그에 따르면 한나라당내에 공천을 둘러싸고 미군에 의해 희생된 ‘윤금이가 되살아났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윤여준 전 여의도 연구소장, 금종래 비서실 차장, 이명우 보좌관 등 3인이 이 총재 밑에서 공천을 주물렀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번 공천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기자의 주문에 한 가지 예로써 대신했다.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제정구 의원 추도식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우연히 최근 당 실세로 부각되는 이아무개 의원이 탔더라고요. 그 사람은 공천심사위원이기도 했어요. 그분 왈, ‘당신 참 끈질기구만’. 공천심사위원이 공천심사 대상한테 하는 말치곤 한마디로 웃긴 거죠.”
이번에 그 대신 공천된 인사는 ‘윤금이’ 3인방 중 한 사람의 친구이자, 이 의원의 전 보좌관. 철저하게 개인적인 연고에 의한 공천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다가 그는 공천을 반납하고 나온 조순, 김광일씨와 공천탈락한 김윤환씨 등과 함께 민국당을 창당한다. YS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는 사람들. ‘영도다리에 뛰어들자’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사람들. 그리고 재야의 거목이라 할 수 있는 장기표 선생과 함께 하는 사람들. 권 위원장 역시 과거 ‘권’ 출신이다. 이들은 ‘1인 보스 정치’를 타파하자고 한몸뚱이가 됐다.
이념도 다르고, 살아온 궤적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정당을 창당한다는 것은 문제 아닙니까. 단순히 정치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냔 거지요.
“역사 발전의 자연스런 단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신약을 완성시켰어요. 역사는 그런 식으로 발전합니다. 과거 계파 보스들이 나서서 보스정치 청산을 외치는 것은 긍정적인 것 아닌가요.”
과거 잘못에 대한 진실한 뉘우침없이 그 사람들이 보스정치 타파를 외친다면 누가 믿겠어요. 사도 바울과 구시대 정치인들을 같은 선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네요.
“이들은 이회창 총재의 폭거를 밑바닥까지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분들 얘기로는 ‘우리는 지옥 갔다왔다’고도 합니다. 당이 10일 만에 만들어진 것도 이들의 열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버릴 게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걸 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역설이다. 오히려 제 한몸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어쨌든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전두환, 노태우씨가 1인 보스정치 타파를 내걸고 세규합에 나선다면 이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들이 주축은 아닙니다. 개혁적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당이 운영돼야지요.”
…….
이들은 당규에 미국식 예비선거제를 명문화했다고 한다. 다음 선거부터 이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국민소환제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헤쳐모여 할지도 모를 정치권의 이같은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다.
공천은 사기닷!
4∼5개월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만난 임삼진씨는 의기양양해 있었다. 재야시민운동 출신에다가 이소선 여사의 사위라는 개혁적인 백그라운드. 게다가 소위 청와대 출신. 이 정도면 ‘공천은 따놓은 당상’일 법도 한데…. 이것도 모자라 그는 장모님을 모시고 핵심실세들을 만나면서 ‘공천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소위 필드를 떠나 ‘밀실 공천은 사기였다’라고 외치고 있다.
“옆 지역구인 강서울의 경우 이성재, 장성민, 박홍엽씨 등이 공천을 받겠다고 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모두 떨어지고 김성호씨라는 전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공천장이 돌아갔습니다. 소도 웃을 일입니다. 당에서는 김성호씨 등에 대해 여론조사를 벌였다고 하는데 장담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는 꼴찌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도대체 지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또 연예인 인기투표도 아니고 여론조사 하나만으로 공천을 결정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당선가능성이라는 말은 고도의 사기전략일 뿐입니다.” 그가 말한 밀실공천의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그의 지역구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왜 공천에서 탈락됐다고 보십니까.
“현역의원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취약지역에 출마하라는 것이지요. 경선을 신청한 뒤 결과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쓰게 돼있는 데 저는 이 서약서에 삐딱하게 ‘단 공정한 절차를 거쳤을 때에 한함’이라고 단서조항을 달았어요.”
그럼 공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겁니까.
“일반 시민들의 정당 참여는 전혀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밀실공천’으로 공천됐다면 이를 거부할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공천받아도 경선절차를 거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밀실공천이었으면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역시 현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그 논리에 따르지 않았을까.
정치에 뜻을 품었으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전투구판에 주민들이 혼동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또 이를 돌파할 역량도 부족합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당선가능성 아니었습니까.
“물론 그런 것도 고려됐지요….”
그는 당이 정치개혁 열기를 반영하지 못한 것은 정치권의 총체적 보수, 반동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독재정권의 폭압이 정치개혁을 가로막았다면 이제는 밀실공천으로 상징되는 정당의 전근대성이라고도 역설했다.
하여튼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지 몇 해가 지났지만 본격적으로 정치 전선에 나선 것은 3∼4개월에 불과하다. “현역 국회의원들의 의정보고서에 왜 출신 중고등학교가 들어가야 합니까. 의정보고서가 아니라 현역들의 원색적인 선거홍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 저는 명함에 내 이력조차 넣지 못했어요. 신문 인터뷰 기사를 사무실에 뒀다가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정치 신인이 느껴야 하는 설움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공천을 신청하니까 선거브로커들이 수시로 연락이 오더군요. 또 식당에 사람들을 이미 다 모아놓고 저녁 식대를 내라고 하더라구요. 그 황당함이란…. 또 조직운동에 탄력이 붙으면 활동하는 사람이 최소 100명은 될 것이고 이들에게 커피값 밥값만 지불해도 3∼4억원이 되더라구요. 도대체 돈이 없으면 되지 않는 선거입니다.”
하지만 그는 다음 선거엔 꼭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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