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에 통합돼 얼마 전 없어진 종합유선방송위원회에서 연예오락부문의 마지막 심의위원을 맡아, 석달 남짓, ‘검열관’ 노릇을 했다. 그 석달 동안, 평소 철학과 가치관이 분명하지 못했던 탓으로 인해, 종종 자기분열적인 상황에서 허둥거려야 했다.

평소 ‘검열 완전철폐’를 부르짖어왔고, 심의 자리에 가서도 주로 ‘제재 결사반대’의 편리한 일관성을 고수했지만, 포르노가 안 부럽게 야한 영화장면을 잘라내야 하나, 그대로 냅두나? 마약흡입과 총격, 폭력이 주내용인 뮤직비디오는 방송금지해야 되나, 마나? 협찬사를 노골적으로 간접광고하는 프로그램을 징계해야 하나, 마나? 하는 고민에서 마음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거마비 받는 대가로 내가 판 말품이란 주로, 방송금지나 중단조처는 그 어떤 영상물의 폭력장면보다 본질적으로 더 ‘폭력적인 행위’라는 것, 그렇다고 자기 완결성을 가진 문화창작물을 너덜너덜 잘라내는 건 더 못할 짓이라는 것, 기본적으로 컨텐츠에 대한 위생처리라는 게 국민 정신건강에 더 불결한 짓일 수도 있다는 것, 가장 저열한 의도에서 출시된 창작물이라 할지라도 소비자와의 화학반응 결과에 따라 전혀 별개의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 심의는 원칙적으로 방송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 따위의 원론적인 논리였다.

검열을 반대한다면서 검열관 노릇을 하는, 그런 주제에 ‘검열기관이 게을러야 이 나라 문화가 산다’고 떠드는 말 안되는 자가당착 속에서도 한 가지 소득이 있었다면, 심의를 하면 할수록, 영상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운동이 결국엔 세대와 세대 사이에 끊겨진 다리만 남긴 채 간판을 접게 되리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됐다는 대목이다. 현재 영상물에 대한 심의기준은 직접적인 성행위나 폭력장면, 간접광고만 거의 전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가장 유해한 메시지는, 그런 일차원적이고 직접적인 ‘화면’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전달되고 있으며, 심의는 그 구조 앞에서 극악하게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뉴스가 투영하는 이 사회의 모습을 보라. 권력을 위해서는 못할 일도 없고 안할 일도 없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청소년들에게 권력만능의 메시지를 끝없이 전달한다고 해서, 그 뉴스를 잘라야 옳은가? 개인적으로, 도대체 정치철학이 하늘만큼 땅만큼 다른 보혁 양극단의 정치인들이 새 당을 만든 것을 보면서, ‘권력의 그룹섹스’를 보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남자와 남자가 끼리끼리 패거리가 되어 밀어주고 끌어줘서 결국에는 남성천국이 된 국회의사당이라는 권력집단의 성차별 행태가 ‘권력의 집단동성애’ 같다고 느꼈는데, 그렇다면 청소년에게 가장 유해한 방송물은 뉴스이며, 나아가서는 그런 뉴스를 낳은 이 사회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해로우니 그런 뉴스를 방송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린 자녀들이 뉴스를 본다고 나무라는 부모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거지?

에로물이나 폭력물을 보고 성범죄나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십대와, 뉴스를 통해 일그러진 사회의 일그러진 처세철학을 내면화하는 십대, 비율로 따져서 어느쪽이 더 압도적일지는 우문인데 말이다.

청소년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를 준비된 문화소비자로 훈련할 수 있도록, 몇십초 화면의 독성보다 구조의 독성을 간파해낼 수 있는 시력을 갖추도록, 나부터라도 저능한 잔소리는 꾹 참아야지 싶다.
최보은 『케이블 TV가이드』편집장
2000/04/01 00:00 2000/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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