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평을 못 미치는 공간에는 호흡들이 떠돈다. 정지된 동작, 고요한 공간 안에는 규칙적인 그리고 때로는 격렬한 숨소리만이 있을 뿐이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숨소리. 당신은 대체로 어느 쪽 코로 숨을 쉬는가? 아니면 당신이 숨쉬고 있다는 것조차 가끔은 느끼고 사는가?

그 곳에 앉자마자 호흡에 대한 몇 가지의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조차 느낄 틈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다시 하루를 정신없이 시작한다. 그러나 한번쯤 자신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호흡에도 방법이 있고, 나름의 심오한 의미가 있다? 호흡은 정신과 육체 그리고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것이 요가에서 부여하는 호흡에 대한 신비로운 의미이다.

요가라니? 몸을 비틀고, 꼬고, 처박고, 구부린 채 동작을 정지하는 그 요가?

“비틀고, 꼰다구요? 체위를 의미하는 거군요. 개인의 체질이나 목적에 따라 적당한 체위로 수행을 하는 겁니다. 수행은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매일 조금이라도 반복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숨소리가 그렇게 큰 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배를 빠르게 움직이면서 숨을 쉬기도 하구요.

“정뇌호흡입니다.”

어떤 분들은 코에 손을 대고 왼쪽 코와 오른 쪽 코를 번갈아가면서 숨을 쉬더라구요.

“교호호흡입니다. 호흡은 생명활동의 근원이지요. 호흡을 통하지 않고는 요가에 성공할 수 없죠.”

어떤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슬슬 궁금해지는가?

요가 수련원. 요즘 부쩍 사람들이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나 동양철학에 대한 재해석이나 정신․육체의 수련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고들 얘기한다. 얼마전 김용옥의 노자사상에 대한 현대적 음미가 큰 화제를 불러왔던 것도 현재의 시간적, 공간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그리로 몰려들고 있는 걸까? 봉천동에 있는 한국요가연수원에서 막 요가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거나 조금 아프면 병원에 가기보다 요가를 하러 옵니다.”

96년부터 했다면 오랫동안 하셨는데 요가가 어떤 도움을 줍니까?

“명상을 하게 되면 신경이 안정되고, 마음이 평화로와집니다. 소위 명상이나 요가하는 사람들을 현실도피적이고 피안의 세계에만 머무르고자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서강대 신방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 몸담았다는 최아룡(30세)씨. 얼핏 생각해보면 사회과학과 요가는 그리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듯하다. 현실관찰을 통한 검증과 여러 사회 관계에 대한 조사에 바탕을 두는 사회과학도가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오히려 명상을 함으로써 소신과 주관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마 명상을 통해 자아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고, 그것이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상황을 통찰하고 행위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자신을 포함한 인간 탐구를 통해서 더 깊은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전 당뇨병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병을 스스로 고치고 싶은 마음에서 요가를 하려고 마음먹었죠.”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한 40대 후반쯤 보이는 여성이었다. 이렇게 지병을 앓는 이들이 요가를 통해 효과를 보기도 한다. 실제로 그도 완치를 바라는 것은 아닐지라도 스스로 몸의 병을 조절하고자 요가를 시작했다. 그들 중엔 젊은 학생도 끼여 있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명상을? 궁금해 말을 걸어보았다.

“원장님에게서 인도철학 강좌를 수강했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가의 궁극적 목적은 해탈에 있다. 참선을 통해 자아를 깊이 들여다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욕심과 번뇌, 고통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젊든, 나이가 들든 자신의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마찬가지이다.

이쯤 되면 이 요가수련원을 운영하는 전문가에게서 요가의 참뜻에 대해 알고 싶지 않는가? 원장 이태영 씨를 만나 봤다. 그는 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하고 요가로 학위를 수여했다. 요가에 대해선 우리나라에서 전문가이다.

“요가는 심리적, 생리적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나 철학과 관계없이 요가수행을 할 수 있죠.”

우리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운동을 하듯이 요가도 체육 또는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엄밀히 종교적으로 얘기하면, 의식세계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운동부족이나 협소한 공간에 오래 머물게 됨으로써 초래되는 사고의 편협함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도를 높일 수 있죠.”

이태영 씨는 17살에 출가를 하여 요가를 책으로만 보다가 대학 졸업 후 요가를 다시 전공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요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은 라즈니쉬라든가, 인도의 신비주의가 소개되면서였죠. 요가는 5천년 전부터 인도의 경험철학과 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있자니 불쑥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동양철학은 역사의 굴곡이 많은 탓인지 왜곡되어온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오한 철학과 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 재해석된 바도 미약하고, 민족주의나 점술 혹은 주술적으로만 이용한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봐야합니까?

“물론 신비주의적인 경향으로 왜곡되게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로병사를 무시하고 살 순 없는 겁니다.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저만큼의 고뇌를 해결하는 것이 철학의 깊이만큼 가장 중요한 거죠.”

과연 그렇다. 때로는 머나먼 이상을 추구하다 현실의 문제를 간과하기도 한다.

“현실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겁니다. 동양철학이 실제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즉 실제적인 현실의 고뇌를 해소하고 그 후 해탈을 구하는 것입니다. 속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현실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죠.”

얘기를 마치고 그가 차려온 점심을 나눠 먹었다. 수련한 사람들도 보태져 밥상머리는 곧 대식구가 되었다. 그의 도시락은 3, 4인분이 될 듯한 큰그릇이었고, 항상 이렇게 수련을 마치고 서로가 싸온 도시락을 두고 머리를 맞댄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2000/04/01 00:00 2000/04/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480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