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혁명 이제 시작일 뿐이다


총선시민연대가 벌이기 시작한 낙천낙선운동은 그간 한국정치를 멍들게 해온 부패와 비리의 척결에 대한 강렬한 사회적 욕구와 시대적 과제를 정확하게 겨냥하였다. 하여, 정치일선에 나서면 안될 것으로 판단되는 부적격한 인물들을 배제시키지 않고서는 새로운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회적, 시대적 합의가 되고 있다. 이로써 한국정치는 새로운 단계로 성숙해갈 수 있는 전환적 계기를 획득한 셈이라고 하겠다.

제2단계 포지티브 캠페인으로 옮겨가야

하지만, 이 운동에도 함정은 존재한다. 첫째는 불복종운동을 강조한 나머지 공명선거를 포함한 합법적 공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상실해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실정법의 부당성을 과도하게 의식함으로써 실정법의 내용 가운데에는 그간의 투쟁 성과물도 들어 있음을 간과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선거과정의 불법행위를 가로막는 것은 제대로 된 정치를 세우는 기초의 하나이다.

둘째, 본질적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을 속성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정치문화의 고질적인 병폐를 극복하는 일에는 기본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비방과 음해, 모략이라는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한국정치가 멍들고 있는 판국에 자칫 그러한 분위기를 강화할 수 있는 의도치 않은 위험요소를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총선시민연대의 운동이 신속하게 제2단계의 포지티브 캠페인으로 옮아가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셋째, 낙선운동 자체가 현재의 역량상 너무도 광범위하고 정치적으로 미묘한 운동방식이 되어 힘을 집중시켜야 할 바에 대한 분산과 함께, 잘못하면 반민주적 세력의 강화라는 역설적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낙천자 명단 작성과정에서 다소 드러난 ‘기준과 선정대상의 불합리성’을 놓고 보면 어렵지 않게 판단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 우려되는 함정을 최대한 피하는 가운데, 이제 총선시민연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기본적으로 유권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후보자에 대한 공세가 전면에 부각됨으로써 정파적 이해관계의 소용돌이, 지역주의적 반발, 불법성 등의 논란에 휘말렸던 전략을 바꾸자는 것이다. 현재 총선시민연대의 정치개혁운동이 직면한 근본적인 고민은 명단발표로 폭발적 긴장을 보였던 여론의 힘에 어떻게 지구력과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실어내는가에 있다. 이것에 실패하면, 총선시민연대의 정치개혁 운동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음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번 선거를 단순히 인적 청산의 과정으로 접근하지 말고, 이 나라가 직면한 현안들을 제대로 풀어내기 위한 뜨거운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정치적 판단과 결정의 능력을 높이고, 후보자들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진로를 어떻게 잡아나가야 하는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토대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한국정치의 가십성 담론의 분위기를 정책지향적으로 변모시키고, 혹 후보자의 자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바로 이러한 정책적 현안에 대한 대응을 정치적 생존의 기초로 삼게 함으로써 정치인을 훈련시키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전체 분위기의 물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정치란 무릇 무엇인가? 사회의 난제들을 가장 높은 차원에서 공익적 관점으로 풀어내는, 따라서 정치개혁은 그 난제들을 확인하고 그 해법에 대한 검증과 함께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들에게 정치적 역할을 부여하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제대로 진행시켜 나갈 유권자들의 역량을 길러내고 강화하는 것이 이번 총선시민연대가 맡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역주의·불법선거운동에 대한 대안은?

그래서 이러한 방안을 구체화해보는 것이다. 첫째,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게 질문해야 할 내용들과 그 답변에 대한 판단기준을 리스트로 만든다. 가령, 지역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언론개혁을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현재의 세제(稅制)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무엇이며 개선방안은 있는가? 저소득자들을 위한 정책은 가지고 있는지? 등등.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일반유권자들의 정치의식 수준을 높이고, 후보자들을 정치개혁적으로 압박해 들어가는 것이다.

둘째, 불법적 선거운동의 종류에 대한 인지능력을 높이고, 이를 저지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소책자를 만들어 유권자들의 공명선거 포위망을 형성한다. 이렇게 되면 공명선거감시단이 따로 필요 없이 유권자 전체가 공명선거체제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금권정치의 토양을 소멸시키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셋째, 지역주의의 실체는 보다 근원적으로 지역토호세력들과 지역언론들의 유착이다. 이들이 유지하고 있는 기득권 질서를 타파함 없이 지방자치제를 실시함으로써 그 결과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역설적인 현실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 힘이 오늘날 한국정치를 낙후시키는 매우 중대한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바로 이 반민주적인 지역정치의 기득권 질서의 실태를 폭로하고 이를 근간으로 한 지역정치사회의 새로운 주체가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언론의 총선보도에 대한 기준과 관련해 언론사들이 공개토의를 하고 이를 보도에 반영할 것을 요구한다.

이상의 방안들이 본질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한마디로 한국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우선 배려하는 정치의 확보이다. 바로 그러한 심성을 가진 정치가 있게 된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훨씬 덜 고단해질 것이며 희망의 출구가 보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 시민운동은 자기헌신의 용기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할 것이다.

김민웅 목사 · 재미언론인
2000/03/01 00:00 200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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