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돈이 아까웠다. 적어도 극장 문에 들어설 때나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쁜영화」 이후 장선우 감독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관이 있던 터여서 영화 「거짓말」이 사회적으로 그 난리법석을 떠는데도 정작 나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거짓말」이 상영되기도 전에 여러 파문을 일으키는 걸보고 그건 또 하나의 ‘「나쁜영화」式 마케팅전략’일 뿐,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를 부풀리는 절차쯤으로나 치부했었다. 연출된 다큐, 사회물로 포장된 상업주의, 이런 것들은 적어도 「00부인」보다도 못한 불쾌감과 모욕감을 내게 수반하였기 때문이었다. 심하게 말해서 ‘사회의식 팔아 배 채운다’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봐야 한다’는 강박이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치게 놔두질 않았다. 적어도 영화 「거짓말」 속에 ‘표현된 폭력의 유해성’보다 ‘사전검열과 표현물에 대한 사법조치가 몇백 배 더 심각한 폭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영화를 보러 간 게 아니라 ‘검열’을 보러 갔고, ‘표현의 자유’를 보고 싶었던 셈이었다. 내가 보기엔 영화 「거짓말」은 차라리 폭력물이었다. 오히려 음란의 요소들은 정작 이 영화에서 하나도 중요하게 자리잡지 않아 보였다. 주인공 Y와 J는 ‘통상적 포르노물’이라 치기엔 주연 남녀배우로서 너무나 당치 않게 몰沒섹시했다. Y와 J(여기서 Y는 오빠의 폭력에 규정된 자아이며, J는 아버지의 폭력에 규정된 자아이다. 이들의 아버지와 오빠는 권력, 또는 폭력화된 가부장사회를 암시한다)가 엮어 가는 영화 속 현실은 폭력과 이중규범에 둘러싸인 우리사회이다. 성 성품화 사회에서 ‘섹시함’이란 권력의 가공품이다. 그 사회의 한가운데 Y와 J가 있고, 그들은 권력과 자본 앞에 무기력하게 놓여진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들을 한없이 더 왜소화시키는 기제들은 영화 곳곳에서 장치되는 데 이를테면, 이들은 멀쩡한 집을 나두고도 여관을 전전하며 Y는 늘상 오빠로 암시되는 일상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Y의 언니조차도 강간당한 것도 모자라 그 강간범과 결혼을 해 “잘살고 있”는 등 Y의 주변은 온통 폭력구조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영화 속의 현실은, 차마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 우리의 실제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3으로 설정된 Y는 고3 여학생의 실제 현실을 담고 있다. 비록 변태적인 성행위로 묘사된 영화 속 현실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입시지옥, 성폭력의 위험, 성 상품화의 사회, 이중규범과 잣대의 한 가운데서 그들은 무차별하게 노출되어 있으며, 그런만큼 그들의 일탈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빼앗긴 시민적 일상에 대한 이들(=우리들)의 항변은 고작해야 “한사람의 의견이라도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한다거나 하거나, 불요불급한 예산소비로 지탄받는 지방자치단체의 보도 블록 교체작업을 배경으로 “사람은 일 좀 안하고 살수 없나?”라며 소시민적으로 뇌까리는 데 그친다. 반면 곡괭이 자루가 동원되는 가학적인 섹스에선 군대식 명령형 대화가 튀어나온다. “일어나!”, “엎드려!”, “똑바로 대!” 어쩌면 우리 둘레가 이젠 온통 폭력으로 휩싸이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 교양 있다고 하는 언어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상대조차 소유하고 독점하며, 이용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쓰며, 종속시키려는 게 오늘날 우리 관계의 속살은 아닐까? 끝내 J는 오빠의 죽음(일상폭력의 부분적 해소)을 계기로 일탈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Y를 향해 절규한다. “이제 간다구? 이제와서 간다구? 난 어떻게 하라구?” 그 항변이란, 폭력구조로 환원(강간범 남편과 “잘살고 있”는 언니를 향해 브라질로 간다는 것)되고마는 Y를 향해 외치는 고립된 J의 왜소한 절규이자 신음소리에 다름 아니다. 얼마나 왜소하기 그지없고 나약하기만 한 군상인가? 「거짓말」은 요컨대 일탈된 섹스를 소재로 삼아, 감추어져 있는 인간관계의 일상적 폭력을 드러내기 위해 콤플렉스라는 코드로 얽혀진 영화라는 게 이 영화를 보고 난 나의 소감이었다. 성적 흥분은커녕 감흥도 없었고, 오히려 지루하고 따분할 지경이었다. “영화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있어야지…, 도대체!” 나도 모르게 뱉은 반계몽주의인 푸념이었다. 극장 문을 나설 땐 머리가 무거웠다. 마치 대단히 현학적이길 한껏 뽐낸 관념적인 논문 한편을 억지로 읽고 난 듯한 느낌, 다만 그저 그뿐이었다. 끝.
김형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2000/03/01 00:00 200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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