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면 만 열 살이 되는 나의 딸아이는 채식주의자이다. 가족 중 아무도 특별히 음식을 가리는 편이 아닌데도 아이는 슬슬 고기를 피하더니 급기야 채식주의를 선언하고는 2년 전부터 아예 육류는 입에도 대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 달에는 맥도널드에서 하는 사촌의 생일파티를 두고 가야할 지 말아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다. 햄버거를 보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고기 안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니멀 러버(animal lover)! 사랑하는 동물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세 살 때 영국으로 가서 7 년 가까이 살다가 지난 겨울 한국으로 돌아온 애를 가장 경악하게 만든 것은 수많은 보신탕 가게와 수많은 모피 코트였다. 길가에 늘어선 보신탕 가게 간판의 뜻을 알고 난 뒤부터는 주위 어른들에게 질문을 퍼부어 댔다.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느냐? 보신탕을 좋아하느냐?’ 대답에 따라 인격의 등급이 매겨진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털 코트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면 등 뒤에서 거의 증오의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러는 게 아니라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개고기를 먹거나 모피 코트를 입는 사람의 입장도 존중해야 한다고 타이르느라 한번은 네 시간의 기차여행을 모두 써버린 적도 있었다. 아무리 타일러 봐도 아이의 대답은 언제나 그 자리다. “난 그래도 동물을 죽여서 고기를 먹고 가죽을 입는 사람이 싫어요.” 얼마 전만 하더라도 어린 것이 하는 소리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나도 차츰 정신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로서 자식의 영양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인간은 원래 초식동물이라는 생각도 조금씩 들긴 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문제가 생겼다. 고기 반찬 위주로 나오는 학교 급식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급식제도! 발전한 고국의 교육환경에 환호작약하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로 아주 고민이 되었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내가 고기를 안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한대. 난 먹을 수 없단 말이야.” 학교에 간 지 이틀만에 아이가 울상이 되어 하소연하였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사태는 아니었다. 첫날 담임을 만나 아이의 식성에 대해 의논했었다. “고기반찬을 남기는 것은 우리 급식교육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편식을 하게 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혼자만 고기반찬을 안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교육상 좋지 않지요. 한 애만 특별히 봐준다고 오해를 살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상한 평등을 주장하는 논리였다. 특별한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단순한 편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스님은 모두 대단한 편식을 하고 계시는 건가? 그리고 개인의 특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특별한 대우로 여겨져야 하나? 한 교사의 말로 대변되는 우리 교육의 요지는 이렇다. ‘남들 하는 대로 그냥 따라 해, 별스럽게 굴지 말고!’ 우리는 어쩌면 이토록 획일적이란 말인가? 아이의 점심 문제로 고민하면서 나는 비주류에 대해 재미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히 잡식에 비해 채식은 비주류로 밀려나 있다. 그러나 비주류가 약한 대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자신의 식성 때문에 외톨이 취급을 받긴 하지만 아이에게 오히려 참신한 관점이 주어진 것이다.

비주류에 속해보는 경험이 커나갈 아이에게 시각의 지평을 넓히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리라는 희망까지 생겼다. 아, 이 참에 아이에게 ‘학교에서 채식주의자 권리 찾기’ 운동을 시작하라고 하면 ‘비주류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도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
권은정 전 『한겨레』런던통신원
2000/03/01 00:00 200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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