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주민회와 바른자치21
2000/2000년 02월 :
2000/02/01 00:00
'시민자치'모델 만든 남해 지역운동 쌍두마차
한반도 남쪽의 그리 작지 않은 섬, 남해.
이곳 남해의 지역운동은 다른 지역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행정기관이나 지역 출신 정치인들과 상당한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남해에서는 이들 시민단체가 행정기관의 수반인 군수와 긴밀한 공조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해군은 지난 1995년 6월 지방자치선거에서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전국의 지역활동가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생운동, 농민운동가, 마을이장 출신인 젊은 정치지망생인 김두관씨가 전국 최연소 지방자치단체장에 당선된 것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진보개혁진영의 큰 성과라는 평을 받았다.
당시 남해지역엔 남해신문, 남해사랑청년회, 거의 유명무실한 농민회 외엔 변변한 진보적 시민운동 단체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보면 김두관씨의 군수 당선은 순수한 개인 능력과 주위에 포진했던 열렬한 지지자, 지역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낙하산식 공천을 받은 상대후보의 약점, ‘이제는 한번 바꿔보자’는 지역의 정서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취약한 토대 위에서 진보진영의 대표격으로 자리매김한 김두관 군수가 군청으로 들어간 이후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한 진보세력의 지각변동이 있었다.
95년 말쯤 조직된 ‘바른자치 실현을 위한 남해주민회의’(상임의장 김영식 신부·이하 주민회의)는 바른 자치 실현과 지역발전이란 명제를 내걸고 의욕적으로 조직됐다. 처음 2백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읍면 지회 창립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던 이 단체는 곧 50여명의 회비를 내는 회원과 집행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조직으로 모습을 바꿨다. 힘든 조건에서 그나마 각종 축제행사에 이벤트를 여는 문화사업, 군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관광정책에 대한 토론회 개최 등의 사업을 주로 벌이고 있다.
류경완 사무국장은 “처음 조직의 성격을 규정하는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김군수를 중심으로 한 조직을 만들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담당하는 시민단체로 성격규정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바른자치21’ 정치조직으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
두 번째 지방자치선거를 거치면서 지역사회에서 진보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묶어줄 단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강력히 제기됐다. 그것은 남해지역의 정치·행정 등 각 분야의 개혁을 요구하고 비판·견제기능과 동시에 개혁적 인물을 정치·행정 각 분야에 진출시킨다는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진보진영의 목소리와 궤를 같이 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단체가 ‘바른자치21’이다. 10개 읍면에 대부분 지회를 둔 회원수 4백여명의 대규모 조직이다. 임준택 의장을 비롯해 김두관 명예의장, 임채욱 기획위원장, 류경완씨 등 13명의 기획위원, 각 읍면 지회장이 포진돼 남해 전체에 고루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998년 11월 창립총회를 가진 이래 ‘한려대교(전남 여수와 남해를 잇는 대교) 유치 운동’을 중심사업으로 벌이면서 인지도를 높여나갔다.
겉으론 일반 시민단체와 별다른 점이 없지만 이 단체를 핵심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바른자치21’을 시민단체로만 한정짓지 않고 정치조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토대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시민단체들이 행정기관과 적대적 또는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는 반면 ‘바른자치21’은 오히려 공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조직이나 자금력에서 기반이 취약한 김군수가 이 조직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이들이 가진 조직력과 기본입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치지형도 민주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지방자치제도의 발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 참모들은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창당과 활동에 기본적으로 동조하지만 지역여건상 이에 참여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독자적 형태의 정치활동을 벌임으로써 진보진영에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최대한 조직력을 가동해 선거에 참여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를 위해 각 읍면 지회 회의를 거쳐 총선 참여 결의를 이끌어낸 상태다. 최근 전국 6백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2000년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키로 결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내린 결정이다.
진보진영 대변하는 정치조직으로
시민단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상당한 정치색도 가지고 있는 이 단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김두관 군수가 ‘바른자치21’이란 조직을 통해 정치적 성장을 하기 위한 발판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그것이다. 그러나 바른자치21 회원들은 “이런 문제제기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평가한다. “그동안 남해의 정치구도에서 소외돼 왔던 서민들이 조직화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한 기존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이 상당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정치에 입문한 김두관 군수와 진보진영이라고 평할 수 있는 이들 단체와의 관계설정은 매우 신중한 토론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단체가 아래로부터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하고 이 정책을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조직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한 사람의 의지와 결정에 따라 정당의 정책이 맘대로 바뀌는 ‘보스 중심’의 기존 정치체제를 답습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다지 큰 조직적 기반없이 정치에 입문한 김군수는 바른자치21과 같은 단체의 결성에 적극적이었으며, 명예의장이란 직함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김군수 자신은 “지역의 단체를 내 자신이 출세하는 데 이용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아직 ‘시민단체의 행정·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와 협조’의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 단체의 회원들을 토대로 이런 바람직한 관계를 설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바른자치21 내부에는 김군수라는 인물이 좋아서 가입한 회원들의 수도 만만치 않고 개혁 진보진영의 노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회원들도 많기 때문이다.
집행간부들은 이같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회원교육과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직접 참여를 통해 조직력을 점검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단체 운영노선을 확정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자치21이 그들의 바람처럼 다수의 회원이 이탈하지 않고 하나의 정치노선으로 통일돼 나갈 수 있을지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진영을 대변하는 정치조직으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바른자치21, 시민의 편에서 자치행정과 정치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담당하겠다는 주민회의.
이들 단체가 남해지역의 진보운동을 이끌 양대 축으로 자리잡고 이들이 바라는 대로 지역의 정치구도를 바꿔 젊고 개혁적인 인물을 지역의 정치지도자로 진출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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