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하사탕 이창동 감독
2000/2000년 02월 :
2000/02/01 00:00
그가 박하사탕이라는 '순수의 독'을 고통스럽게 찾아나선 이유
유전인자에 그늘이 낀 사람. 그의 아내가 그더러 그렇게 얘기했단다. 세상을 비딱이 보는 반골. 나도 그런 면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유전인자에 그늘이 낀 사람일 터. 두 사내가 겨울비마저 추적추적 내려 정말 온 세상에 그늘이 낀 날, 여의도에서 만났다. 그는 54년 생, 나는 56년 생. 나이가 동년배라는 사실에 사뭇 놀라는 눈치다. 하긴 내 유전인자의 그늘은 다행히도 얼굴에는 나타나지 않는 편이니 날 10 년쯤 젊게 봤다며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때가 때이니만큼 영화얘기부터 시작했다.
영화 만드는 거 힘들지요?
“나도 영화하기 전엔 동안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영화하면서 늙었지. 우선 영화는 만들기 전에 사기부터 쳐야 해요. 돈이 필요하니까… 제작자들 만나서 돈을 대게 하려면 설득도 하고 사기도 치고 그래야 하는데 대개들 잘 안 넘어가잖아요. 그리고 사실 제일 힘든 건 바로 지금이지요. 영화 끝내놓고 흥행 스코어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니까. 대범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잘 안돼요.”
흥행에 그렇게 신경 쓰면서 만들진 않지 않습니까?
“흥행 목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해도 흥행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할 감독은 없지요. 일본의 예술영화 감독인 오구리 고헤이도 흥행이 제일 신경 쓰인다고 말합디다. 예술영화만 만들면서도 말이지요. 저는 감독이 몇몇 사람들과 마스터베이션 하는 영화에는 반댑니다. 진심을 담고 있되 어떤 식으로든 대중을 건드리는 힘이 큰 영화를 찍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감독들은 대중에 대한 짝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지금은 고백을 해놓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의 고백은 어느 정도의 화답을 받고 있을까? 개봉된 지 12일째 되는 날 서울 관객만 6만 명. 개봉 닷새째였던 「거짓말」은 서울에서만 4만 명. 추세로 봐서 「거짓말」을 당할 수는 없다. 하긴 나도 「박하사탕」이 상영중인 피카디리 극장과 「거짓말」이 올라 있는 바로 맞은편 단성사 사이에 서면 「거짓말」의 간판으로 눈이 먼저 가니까…. 그냥 얘기가 나오다 보니 ‘적군’에 대한 시각도 묻게 됐다.
「거짓말」이란 영화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는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사실 「박하사탕」이 피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30개 극장에서 상영됐다가 지금은 「거짓말」이라는 핵폭탄에 맞아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으니까…. 그런데 그런 걸 탓할 수는 없어요. 영화 흥행이란 건 어차피 경쟁하는 거니까, 그냥 경쟁으로 받아들여야지요.”
하긴 날 더러 두 영화 중에 꼭 하나만 보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거짓말」로 갔을 게다. 엄살인지는 모르지만, 「박하사탕」은 보기도 전부터 왠지 두렵다. 그의 아내도 시나리오를 읽어본 다음 “이건 독이다”라고 했다지 않은가? 관객들의 반응도 대개 그런 모양이다. 누구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운다 하고 누구는 영화보기가 왜 그렇게 괴로운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평은 예외없이 좋던데…. 어느 누구도 이 영화 가지고는 시비 거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글쎄요. 영화가 뭐랄까… 욕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 잖아요?” (웃음)
유전인자에 그늘이 낀 사람은 남의 칭찬을 잘 받을 줄 모른다. 겸연쩍고 남사스러우니까… 슬쩍 비껴가며 웃음으로 넘어갈 뿐이다. 그런가 하면 나처럼 그늘이 낀 사람은 온통 호평 일색인 영화는 부담스러워 피하는데… 그래서 무슨 상받은 영화나 시청률 높은 드라마는 나도 꼭 감동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안 보는데… 그래서 「모래시계」 도 한 번도 안 봤는데…. 그래서 아마도 관객이 폭발적이질 않은 모양이지요? 했더니 색다른 분석이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뻔한 질문 한 가지 더.
왜 소설 그만두고 영화로 옮겼지요?
“그 질문은 백 번쯤 받아봤을 겁니다. (인터뷰어로서는 가장 수치스런 순간이다) 저 같은 80년대 작가들은 대개 글쓰기에 있어서 도덕적 책무감에 시달렸지요. 작가가 사회모순을 극복하고 변혁에 복무해야 한다는 고민 말입니다. 그런데 80년대 말부터 분위기가 바뀌고 개인적으로는 아주 황당해졌어요. 껍데기만 바뀌었는데 고민의 유효기간은 끝난 것처럼 돼버렸다 이겁니다. 도덕적 족쇄가 풀리면서 허무의식에 빠졌지요. 글쓰기가 막막해졌습니다. 그래서 노가다라도 해서 자신을 학대하고 싶었는데 무조건 노가다를 한다는 건 불가능했고, 가만 보니 문화적 노가다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게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93년에 순간적으로 결심한 겁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조감독과 시나리오로 참여했는데 그 때 그야말로 바닥에서 기는 쾌감을 느꼈습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했지요. 자기 수련처럼 했습니다. 그 때 주위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모양입니다. 결국 그 팀이 함께 「초록 물고기」를 만들었지요.”
그래서인가? 사석에서 만난 영화배우 심혜진도 그를 아주 대단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딴 얘기로 돌리려다가 또 다시 영화얘기로 돌아온 셈이 되었다. 이 양반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머릿속은 온통 영화다.
또 우문이겠지만, 어떤 게 더 재미있지요?
“영화가 재밌지요. 소설은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옮겨 다니는 작업이지만, 영화는 다이내믹하고 긴장감도 더합니다. 물론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요. 비인간적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 비인간적입니까?
“남의 희생을 착취해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게 되구요. 잘 안되고 막힐 때는 자신에게 먼저 상처를 주고 결국 남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소설은 혼자 고민하면 되잖아요.”
주로 배우들하고의 관계에서 그렇겠지요? 이번에 설경구씨는 어땠나요? 광기어린 연기였다고 극찬을 받던데….
“애초에 유명배우를 안 쓴 이유는 섭외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0대에서 20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는 몇 안됩니다. 그래서 아예 신인으로 가자고 생각했지요. 신인은 나름대로 강점이 있습니다. 우선 관객이 배우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으니까…. 그런데 설경구를 만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생 살면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늘 나만 왜 이래! 하고 지냈지요. 저는 이번에 이렇게 좋은 운을 가질 수 있었던 제가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옳다꾸나, 걸렸다. 이제 딴 얘기로 가자.
그런데 뭐가 그리도 운이 없으셨는지요? 왜 ‘나만 왜 이래!’ 했다는 겁니까?
“저는 이미 대여섯 살 때부터 사는 게 지옥이라고 느꼈던 사람입니다. 행복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좌익이셨습니다. 사회주의 조직의 핵심이었죠. 뭐랄까…. 이 사회가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성실성을 거부하고 사상의 강철성만이 남아 자기 파괴적 삶을 사셨습니다. 어머니가 6남매를 삯바느질로 키우셨습니다. (그는 그 가운데 다섯째다. 막내도 아니고 다섯째이니 그 가난함 속에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랴.) 난 아버지와는 무조건 반대로만 갔습니다. 아버지는 두주불사였지만 나는 반대로만 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알코올 알레르기가 생깁디다. 아버지는 성격이 격정적이셨는데 나는 자기억제에 강합니다. 어찌보면 아주 무신경하다 싶을 정도지요. 그런데 요즘 아들놈을 보면 제 속에 격정적인 부분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가 봐요. 그 놈은 아주 다혈질입니다. 유전인자가 절 거쳐서 그 놈에게 전이된 것이지요. 집안에 반면교사가 없으니 타고난 대로 놉니다.(웃음) 아무튼 그래서 제 영화나 소설도 자꾸 어둡게 되는 모양입니다. 속으로부터의 반영이지요.”
이번에는 내가 맞장구를 칠 차례다. 내 아버지는 이 감독의 아버지와는 달리 자본주의적 성실성에 투철했지만 운때가 맞지 않아, 또는 소질이 없어서 실패한 분이었다. 그래서 식구들 모두 지지리도 고생했지. 이사만 서른 번 가까이 해서 짐싸는 데엔 도가 텄으니까… 등등… 그의 맞장구도 계속된다.
“젊을 때부터 나는 내가 굉장히 왜곡돼 있는 게 아닌가 했어요. 예를 들면 사회적으로 아주 안 좋은 사건이나 사고가 나면 속으로 반기는 심리마저 있었지요. 에이, 그것 좀 더 크게 나버리지… 뭐랄까… 사회변화를 갈망한 것이 지나쳐 심리적 왜곡까지 가져온 겁니다. 좌절이 너무 심했으니까.”
요즘도 그런가요? 저는 사회변화에 대해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한데… 우리에게 넘쳐나는 후진적 문화를 바꾸기 전에는 힘들 것 같다는 얘기지요.
“궁극적으로는 절망감이 있어요. 본질은 변한 게 없으니까… 특히나 절망적인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이건 문화 이전의 문제예요. 아까 문학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90년대 문학에서 절망한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생물학적으로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삶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입니다. 저는 소위 386세대라는 사람들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세상을 이성의 틀 속에 맞추려 진지하게 실천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만큼 몸살을 앓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사회의 중추인데 왜 고민하지 않는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외양적이긴 하지만 일정 부분의 민주화라든가, 자본주의 팽창, 네트 세대의 급성장 등등….
“그게 위험해요. 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을 얘기해 봅시다. 프로그래밍된 컴퓨터 게임에 지배받는 애들은 세상에 대한 냉소주의가 생깁니다. 내가 작성한 지도를 따라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프로그래밍을 맞춰가는 것은 그야말로 뻔한 세상의 이치만을 배우는 것과 같단 말입니다. 거기에 남는 것은 속도의 문제일 뿐이지요. 누가 더 빨리 가느냐. 지금의 사회적 흐름도 그렇잖아요.”
아, 이쯤 되니까 좀 알 만하다. 그가 왜 「박하사탕」이란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좀더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문화를 대하는 태도도 그래서 냉담합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고, 허무주의와 냉소주의가 추세를 이루고, 이런 추세를 주도하는 것이 결국 인간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자꾸 객체화해서 자본주의적 소비의 대상으로 삼지요. 지금은 인간이 주체의식을 가지고 이런 추세에 대한 문명사적 비판을 해야 할 때라고 봐요.”
말이 좀 어려워진다. 에라 모르겠다. 다시 영화얘기로 가서 마무리하자.
앞으로도 영화는 계속 만들거지요?
“그건 몰라요. 감독이란 건 허용이 돼야 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상업적 요소를 충분히 고려한 「초록 물고기」 가지고도 3억 원 손해 봤습니다. 이번엔 5억 원 이내로 손해볼 거라고 설득했습니다. 손해 안 보려면 전국적으로 50만명은 들어야 됩니다. 영화도 산업적 기반 위에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손해만 계속 본다면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없지요.”
제가 보기엔 불가능해 보이진 않구요. 다만, 다음 작품에 대한 노파심이랄까 하는 게 있는데… 대개 예술적 영감은 한 번의 정점을 지나면 그만한 작품을 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혹시 「박하사탕」이 정점이었다면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박하사탕」은 제가 영화계 들어왔을 때부터 구상했던 겁니다. 시간을 거꾸로 가는 아이디어나 주요 이미지들은 그 때 이미 생각해 두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영화가 내게 그토록 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내 안의 것을 다 빼낸 것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물론 「박하사탕」은 내가 꼭 만들고 싶은 영화였고, 영화를 통해서 한국사회에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지요. 앞으로도 그런 욕망이 있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럼 어떤 류의 작품을 기대해 볼까요?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지 않고 편안하게 하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현상에 대한 부정은 있되 본질에 대한 긍정은 지키는, 그러니까 결국 삶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겁니다. 고통 속에서도 긍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 내 캐릭터로는 어려워 보이지만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겨울비가 질겼다. 벌써 이틀째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유전자에 그늘이 낀 사내는 또 다른 그늘 낀 사내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더 질문할 게 있으면 연락을 달라 했다. 물론 나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두시간 반이나 괴롭혔으면 됐지.
인터뷰를 마친 다음 두 가지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거짓말」의 음란성에 대한 검찰수사 소식, 또 하나는 청와대에서 「박하사탕」이 특별 상영된다는 소식. 재미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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